죽마고우

by Anna Lee

미국에 와서 얼마 안 돼 첫째 아이는 열 번째 생일을 맞았다.

친구들을 초대하라고 했더니 세 명을 데려왔다. 그중 한 명은 길 건너 앞 집에 사는 마리아였다. 우리가 시카고로 이사하고 나서도, 그리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마리아는 오랫동안 첫째와 베프로 지냈다.

두 번째 생일파티에는 친구 열 명이 오기로 했다. 몇 시간씩 아이들끼리 알아서 놀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스케줄을 짜서 놀도록 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들었던 터라 파티 음식 먹는 시간, 규칙이 있는 게임 시간, 영화 보는 시간, 바깥놀이 시간 등 파티 스케줄을 첫째와 의논해 정했다. 게임과 놀이에 필요한 소품을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앨러지 있는 아이들이 많은 편이라 엄마들에게 혹시 음식 앨러지는 없는지 미리 물어두었고, 피자나 샌드위치도 특정한 토핑 없이 치즈만 있는 것으로 주문했다.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스케줄대로 알차게 놀았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러 온 엄마들과 친해져 그중 몇 명과는 계속 *플레이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친구들이 집에 돌아갈 때는 미리 챙겨두었던 *구디 백을 나누어 주었다. 구디 백에 넣을 아기자기한 학용품이나 앙증맞은 사탕을 사서 아이와 함께 예쁘게 포장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생일파티는 집 말고도 *레크리에이션 센터, 반려동물 용품점 안에 있는 생일파티 룸, 수영장, 아이스 링크, 롤러 스케이트장, 밥도 먹고 게임도 할 수 있는 놀이공간 등 다양한 장소에서 열렸는데, 시간이 지나 제법 친구가 늘어난 첫째와 둘째는 주말이면 생일파티에 가느라 바빠지기도 했다.


포틀랜드에서 첫째의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마리아는 아빠, 동생, 그리고 고양이와 살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진 후 주말은 동생과 함께 엄마에게 가서 지내곤 했다. 마리아는 잠깐 집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고양이 걱정을 할 정도로 사려 깊고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첫째가 처음으로 *슬립오버를 함께한 친구였고, 둘은 내내 단짝친구로 지냈다.

마리아는 여름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아빠, 동생과 고향 러시아에 가곤 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마리아는 러시아에서 포틀랜드로 돌아가던 중 아빠와 잠시 헤어져 시카고행 비행기를 타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우리 가족과 마리아가 같이 보낸 일주일, 아이들도 무척 즐거워했고 내게도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남았다. 오랜 친구와 밤낮을 함께하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와 아쉽게 헤어져 포틀랜드로 돌아가고 나서 며칠 후, 마리아는 내게 예쁜 꽃바구니를 보내왔다. 선물보다도 아이의 마음이 너무나 소중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내 마음에도 짙은 그리움으로 남은 아나는 둘째의 킨더가튼 친구였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키도 크고 동그란 눈과 부드러운 금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나는 패션모델이 꿈이었다. 둘째와는 성격도 잘 맞고 집도 가까워서 자주 같이 놀았는데, 어느 날 고향 에스토니아로 돌아간다고 했다. 시카고에서 일하던 아나의 아빠가 일터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아나가 떠나고 난 뒤 한동안 아나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둘째가 몹시 안쓰러웠다. 그런데 몇 달 후 아나의 엄마가 에스토니아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아나도 둘째를 무척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지고 나서도 서로 잊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의 우정에 아나 엄마도 나도 가슴이 뭉클했다.

아나와 둘째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통화를 하고 서로 선물도 주고받았으나, 언젠가부터 연락이 뜸해지고 말았다. 다섯 살이었던 아나는 모국어가 무섭게 늘어감과 동시에, 잘 쓰지 않게 된 영어를 역시 무서운 속도로 잊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나는 틀림없이 패션모델이 되었을 거라고, 나도 둘째도 가끔 아나 생각이 나면 이야기한다. 헤어져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멀리서나마 서로의 꿈을 응원해 주는 것 ⎯ 어린 시절 친구의 특권이다.


그 일 이후 아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친구가 있으면 영어를 잊어버리지 말라고, 꼭 다시 만나 이야기하자고 굳게 약속하곤 했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영어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던 둘째가 정작 한국에 남아있던 친구들과 만날 기회는 영영 잃어버리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 남편이 복귀할 회사 내 조직이 대표이사가 바뀌면서 전격 해산되었고, 돌아갈 곳을 잃은 남편은 결국 이곳에 남아 새로운 일을 찾아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 플레이 데이트(play date): 부모끼리 날짜를 약속해 아이들이 서로의 집에서 같이 노는 활동

* 구디 백(goody bag): 생일파티 참석자들에게 주는 조그만 가방이나 봉지로, 간식이나 작은 선물 등이 들어있다.

* 레크리에이션 센터(recreation center): 레저, 취미, 스포츠, 교육 등을 즐길 수 있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시설

* 슬립오버(sleepover): 친구 집에서 하룻밤 같이 자는 것으로, 고등학교 때까지 친한 친구들끼리 주말이나 생일에 흔하게 갖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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