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Life Gives You Lemons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라는 말이 있다. 삶이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 즉, 시디 신 레몬 같은 시련을 새콤달콤한 레모네이드처럼 좋은 일로 바꾸라는 뜻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라는 메시지 중에서 나는 이토록 절실한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남편이 퇴사를 결정하고 나서 우리 가족은 옆 동네로 다시 이사를 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 몹시 슬프긴 했지만, 포틀랜드에서 시카고로 올 때만큼은 힘들지 않았다. 어디라도 잠시 정착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회사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원할 때 언제라도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미국에 와서 벌써 세 번째 전학이었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전보다 적응이 빨랐다. 남편은 곧 새로운 일을 찾기 시작했고, 나도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 대신 이곳에서 삶을 이어가기로 했으니 어쨌든 여기가 생활의 터전이자 일터였다.
우선, NACES(National Association of Credential Evaluation Services)에 학위 증명서와 성적 증명서를 보내 인증을 받아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받은 학위가 미국에서 어느 정도 인정되는지 알아야 취업에 필요한 과정을 더 이수할지 말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 받은 학위가 모두 인정되어 학교를 더 다닐 필요는 없었다.
전공을 살려 교육 분야의 일을 해보고 싶었던 나는 몬테소리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과정을 밟으면서 3-5세 혼합반 보조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몬테소리 교사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미국에 온 지 몇 년 안 됐던 나는 강의와 세미나에 참여하고 교재를 읽어나가는 데 동료 교육생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3년 안에 강의, 세미나, 실습 등 정해진 과정을 모두 마쳐야 했고, 교육 영역별로 각각의 앨범을 만들어 제출해야 하는 과제의 양도 만만치 않았다. 따라갈 강의와 과제도 벅찬 데다가 1년에 한 번씩 2박 3일의 수련회에 참여하고 수시로 다른 몬테소리 학교로 견학도 가야 했다.
글로벌한 교육 프로그램인 만큼, 나는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교육 영역별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사진 자료가 필요했는데, 힘든 만큼 동료애가 끈끈했던 우리는 수업시간에 찍은 사진을 공유하기도 하고 자료를 챙겨주기도 하면서 서로를 격려했다.
케냐에서 온 친구는 고향으로 돌아가 몬테소리 유치원을 여는 게 꿈이었고, 프리스쿨부터 초등학교까지 몬테소리 교육을 받고 자란 20대의 교사 지망생도 몬테소리 스쿨 디렉터가 꿈이었다. 몇 번의 세미나만 빼고 거의 모든 교육과정을 마치자, 우리는 각자 다른 몬테소리 스쿨에 자리를 배정받아 일하기 시작했다.
내가 일했던 시튼 몬테소리 학교(Seton Montessori Institute)는 Lab 스쿨로서 다른 학교들에 선행하는 학습 프로그램을 많이 시도했었다. 따라서 외부 스태프들도 참석하는 세미나나 콘퍼런스가 자주 열리곤 했다. 교사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많은 만큼 일도 많은 곳이었다.
많은 학부모와 교사들이 몬테소리 교육에 열광하고 빠져드는 걸 봤지만, 정작 내게는 현장과 이론의 차이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교육 이론은 이상적이고, 모든 교육 현장이 그에 부합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그리고 몬테소리 교실의 특징 몇 가지는 나와 맞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교실은 항상 조용하고 차분했다. 교구를 다룰 때도 조심조심 살금살금 요란한 소리가 나지 않게 다루어야 했으며, 자유선택 놀이시간에도 자칫 데시벨이 높아지면 조용히 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다른 프리스쿨 교실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역할놀이나 극놀이가 몬테소리 교실에는 거의 없었다. 동화책을 읽을 기회는 교실의 작은 코너에서 뿐이고, 소그룹이나 대그룹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사가 책을 읽어주는 경우도 드물었다. 아이들과 책 읽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좀 답답했다.
완벽한 교육 프로그램은 없으므로 연구와 토론이 끊임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프로그램의 장점을 살려 부분별로 교육 현장에 적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즐거워야 할 현장이 어느새 점점 버거워졌고, 그런 내 기분이 그대로 교실 속 아이들에게 전달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주말에도 자주 출근을 하느라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둘째와 함께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평일에도 둘째는 내가 퇴근할 때까지 집 근처 프리스쿨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프로그램에 맡겨져야 했기에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고는 차 안에서 울면서 출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남편의 취업 공백기에 불안한 마음으로 별로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뛰어든 일이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남편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나서, 나는 고민 끝에 몬테소리 스쿨을 그만두었다. 그 후 다른 프리스쿨에서 일하게 되면서 비로소 내 자리를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몬테소리 스쿨에서 일할 때의 힘들던 기억은 한동안 나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교사로서의 나 자신을 파악하고 점검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나중에 다른 일자리를 찾는 데 자신감으로 작용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