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에서의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갈 무렵,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회사에서 남편에게 시카고로 옮길 것을 지시한 것이다. 포틀랜드에서 산 지 일 년이 조금 넘은 때였다.
시카고는 뉴욕,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교통의 요지인 시카고의 오헤어 국제공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붐비는 공항이라고 한다. 재즈, 건축으로도 유명한 시카고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등 유명한 건축가들의 건물이 많이 있다. 시카고는 윈디 시티(windy city)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미시간 호수에서 불어오는 차고 거센 바람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지만, 허세가 심한 시카고의 정치인들을 빗댄 것이라는 말도 있다.
사계절이 다 있지만 봄과 가을은 비교적 짧은 편이며 여름에는 폭염, 겨울에는 한파와 눈이 며칠씩 계속되는 경우도 있다. 겨울이 매우 길어서, 10월 말부터 추워지기 시작해 이듬해 5월에도 종종 눈을 볼 수 있다. 가끔 심한 우박, 폭풍, 토네이도가 오기도 한다.
미국에 와 얼마 안 됐을 때, 나는 남편과 함께 시카고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내가 살고 있던 포틀랜드와는 확연히 다른 곳이었다.
사방이 끝없는 평지라 야트막한 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곳, 바람이 많고 공기가 건조해서 눈 속 콘택트렌즈마저 벗겨져 휙 날아갈 것 같은 곳, 뭐라 딱 꼬집을 순 없지만 굉장히 미국스러운 곳 ⎯ 내가 시카고에서 받은 인상이었다. 포근하고 정다운 포틀랜드를 떠나 왠지 살벌해 보이던 시카고로 가야 하다니 영 내키지가 않았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일이 많고 급하니 당장 시카고로 가라는 말 뿐이었고, 가라면 가야 하는 게 그때 우리 처지였다. 나는 정리한 지 얼마 안 된 짐을 다시 꾸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좋은 것만 생각하며 견디자 결심했다. 포틀랜드보다 큰 곳이니 아이들에게 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 거고 교육 환경도 낫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가져보기로 했다. 또 다른 낯선 곳으로 가야 한다는 두려움으로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그 두려움은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과 기껏해야 동전 앞뒷면일 거라고, 그러니 동전을 뒤집어보자고 애써 마음먹었다. 서울에서 처음 올 때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앞뜰에 새로 세 들 사람을 구한다는 푯말이 붙던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대성통곡을 했다. 그동안 친해진 친구들과 갑자기 헤어져야 했던 아이들은 마치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을 것이다. 사춘기에 들어선 첫째의 슬프고 막막했을 마음, 그리고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해 가던 아이들이 느꼈을 낭패감에,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미안했다.
조금만 있으면 서울로 돌아갈 거라 생각하던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시카고에서 남은 기간을 채우기만 하면 되는 걸까 아니면 다시 삼 년이 시작되는 걸까, 어디에 물어볼 수도 답을 들을 수도 없는 질문들이 내 안에서 빙빙 돌았다.
서로 의지하고 친하게 지냈던, 그리고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면 서울에서도 한 번쯤 만날 수 있으리라 여겼던 친구들과 헤어질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떠난다는 말을 입 밖에 내놓기가 괴로워, 할 수만 있다면 아무도 모르게 푹 꺼지듯 사라지고 싶었다.
정든 이웃들, 갑자기 떠나게 된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고 아쉽게 이별했던 집주인 부부, 클래스 친구들과 선생님, 포틀랜드의 파란 바다와 짙푸른 산을 뒤로하고 나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추억은 뒤에 남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 나와 함께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한 기억들은 계속 내 안에 살아남아 나의 일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시카고로 떠나던 날은 1월 어느 날, 겨울의 한복판이었다. 우리 가족은 포틀랜드의 따뜻한 겨울을 떠나 시카고의 혹독한 겨울을 향해 출발했다. 또다시 앞이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