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월 첫 주
돌치레라는 말이 있다. 돌 즈음된 아기들이 이때쯤 아프면 돌치레 한다고 말한다. 돌잔치 주인공이 제일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러니라고 할까.
23년 마지막 날, 마치 몇 년만인 것처럼 술집에 갔다.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을 읽고 탁주에 관심이 생겼다. 어쩌다 검색으로 알게 된 ‘느린마을 양조장’. 혼자 갈 수 있는 탁주집 같은 곳을 원했지만, 그런 분위기는 아니라 지인과 함께 가기로 했다. ‘느린마을막걸리’를 주문했다. 1리터의 양이 유리병에 담겨 나왔다. 도수가 6%로 맥주보다는 높고 와인보다는 한참 낮다. 그래도 1리터라는 용량은 보통 와인 750ml보다 많은 양이다. 홀짝홀짝 먹다가 취할 수 있다. 은근히 달아서 천천히 이야기하며 마시기 제격이다. 그러다 보니 취기도 없다. 문제는 숙취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 사람들이 붐빌 것을 걱정해 일찍 만나고 헤어졌다. 집에 들어오니 10시쯤이다. 집에 오면서 두통이 시작되었다. 나는 두통에 매우 취약하다. 어떤 사람은 두통 있을 때 자고 일어나면 개운해진다고 말하던데, 나에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두통이 시작되면서 겁이 났다. 내가 술을 즐겨하지 않는 이유다. 술을 아예 못 먹진 않지만, 두통이 동반되는 숙취가 싫다. 그러다 보니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날이 없다시피 한다. 어쩌다 캔맥주 하나 정도로 가볍게 마신다. 결국 이날 두통에 시달리며 잠에 들어야 했다. 잔다고 나아지지 않는 두통에 새벽에 깨기를 반복하다 결국 약을 먹었지만.
나의 23년 마지막은 두통으로 끝이 났고 24년 시작을 두통으로 맞이했다. 새해의 통증은 물러날 기미가 없다. 집에 청소년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나에게 고스란히 옮겨왔다. 수요일이던가 목요일부터 팔이 쑤시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든다. 금요일에는 기침도 심하다. 병원에 들러 주사도 맞고 약을 받아왔다. 주말 내내 소파를 벗어나지 않았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번 주 주말 서울 가려고 숙소도 예약했는데 큰일이다. 벽돌책을 읽고 가야 하는데 말이다. 코막힘이 점점 심해진다. 기침은 말할 것도 없다. 아기들이 하는 후두염 기침(컹컹 거리는)이다.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기침. 기도가 따가울 정도로 나오는 기침. 급기야 귀까지 아프다. 주말이라 갈 수 있는 병원이 마땅찮다. 금요일에 받아온 약으로 버텨보지만 무리다. 속도 뒤집어져서 위장약에 장염약에 약이란 약은 다 털어 넣은 것 같다. 속이 너무 아파서 자다가 우유도 한 컵 마셔봤다. 아침에 병원에 갔다. 중이염까지 겹쳤다. 한 움큼 받아온 약에 하루 세 번 항생제를 먹으라는 표시가 있다. 이런. 이 약을 다 먹고 싹 다 나아야 주말에 서울에 갈 수 있겠지.
1월 2일 출근하고 연필꽂이에 꽂힌 연필들을 꺼내 깎았다. 일종의 의식처럼. 어제와 오늘이 별 다를 것 없지만, 12월 31일이 마지막인 달력을 버리고 새 달력을 꺼내와 1월 첫 장을 폈다. 어제와 오늘이 다름을 알려주는 장치다. 다름을 인식하려 연필도 깎아봤지만, 내 몸은 어제와 오늘이 다름을 통증으로 새기는 듯하다. 돌치레하는 아기들처럼 새해치레를 하는 40대 중반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돌치레가 끝나면 아기들은 한층 건강해진다고 어른들은 믿는다. 나도 아픔 뒤에 좋은 날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