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월 둘째 주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믿는 사람이다. 여러 취미가 있지만 뭐든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이며 취미가 좋은 취미가 아닐까. 무해한 취미를 떠올렸을 때 책 읽기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주입식 교육의 결과물인지 그 시절 사람으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놀이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에게 무해한 취미는 책 읽기고 20대 후반부터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학창 시절의 책 읽기는 취미라기보다 놀거리에 가까웠을 수도 있고 학습을 위한 도구였을 수도 있으니 성인이 되고도 꾸준히 하게 된 날을 떠올려보니 20대 후반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도 독서량은 줄었지만 책을 놓지는 않았던 것 같다. 육아서를 비롯해 아이 그림책을 읽으며 어른의 그림책에 눈을 뜨기도 했으니 책 읽는 시간은 확보해 두고 생활한 듯하다.
나의 책 읽기는 조금 특이한 구석이 있다. 연예인 덕질하듯 작가 덕질하며 읽는다. 그러다 보니 독서모임 외에 북토크를 열심히 다닌다. 어떤 때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좋아하는 작가의 전작을 모두 가방에 넣고 다녀오기도 했다. 여담으로 얘기하자면 2016년 tvN에서 방영한 <비밀독서단> 마지막 방송 미공개 분을 교보문고 광화문에서 촬영하는데 당첨돼서 다녀오기도 했다. 비밀독서단 회원증도 받고. 그렇게 아이처럼 책 놀이 하듯 지낸다. 그러다가 우연히 20대 때 재미있게 읽은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책 작가와 알고 지내게 되었다. 이 책이 워낙 재미있어서 작가의 책을 거의 사다 모으다시피 했다. 요가라는 공통점도 있고 해서 더 끌렸나 보다.
지난 주말 서울에 일이 있어 가야 했다. 미리 일정을 알리게 된 몇몇 사람이 있었다. 그중에 작가도 있었다. 작가는 연남동에 위치한 ‘초콜릿책방’에서 있을 책 모임에 참여한다고 말하며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망설일 이유가 있나. 책만 읽고 가면 되는 일인데. 책 표지가 예뻐서 1월 1일 연휴에 교보에 들러 책을 샀다. 이런 600쪽이 넘다니. 문제는 그 뒤로 몸이 계속 좋지 않았다. 청소년이 쏘아 올린 감기가 나를 지나 청소년 아버지까지 전달되었다. 꼬박 일주일이 아팠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 600쪽이라니 말이 되냐고. 수요일부터 책방 모임 직전까지 밀어붙이며 읽었다. 책은 <언어의 무게>. <자기 결정> 철학서와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쓴 작가의 작품이다. 철학자가 쓴 소설이니 진도가 나갈 리 없다. 언어의 무게가 아니라 문장의 무게다. 분명 읽고 있는데, 난 열심히 읽는데 어떤 부분은 30분 동안 3장을 읽다니. 서울에서 참여하는 첫 책 모임인데 완독 실패를 가지고 책방에 가다니 슬프지만 듣기만 해도 재미있을 테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을 만나는 기대감도 있으니까. 그러나 웬걸. 한마디도 못했다. 책 읽은 소감 외에 한 마디도 못했다. 아니 끼어들 틈이 없었다. 벽돌책을 완독해 오셨고, 그동안 쌓아온 독서력이 대단한지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진다. 소설을 소설 이상으로 읽으시는 분들이다. 오히려 모든 부분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고민이 생긴다.
모임이 끝나고 작가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모임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귀한 선물을 또 받고 헤어졌다. 작가가 관심을 두고 배운 전통주다. 귤 술로 탁주 위에 맑은 부분만 떠낸 것으로 화이트와인처럼 시원하게 마시면 된다고 한다. 삼해주라고 해서 쌀, 물, 누룩으로 3번 빚은 술인데 물 대신 귤즙으로 만들었단다. 이런 귀한 술을 받았다. 일요일에 일정이 있었다. 나는 책 모임을 위해 하루 일찍 올라갔고. 지인들은 대구에서 일요일에 올라왔다. 일정이 끝나고 카페에 들어갔다. 어제 와서 뭐 했냐고 묻는다. 쑥스럽다. 서울에 와서도 책 모임을 한다고 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쭈뼛거리며 말한다. “책 모임 했어요.” “뭐라고요?”
그런데 책 모임뿐만이 아니다. 일정 전 인스타 책 이웃이자 브런치메이트 연두 님까지 만났으니까. 연두 님에게 내가 읽다만 <언어의 무게>를 드렸다. 흑심에서 산 연필과 함께. 역시 책 읽는 사람들은 책 읽는 사람 마음을 안다. 연두 님께서도 연필과 직접 만든 독서링(책링, 책홀더)을 주셨다. 고생하셨을 텐데 덥석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 당연히 책과 함께. <인간의 태도>라고 연두 님이 근래에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고 했다. 읽은 책을 주는 미덕은 책 읽기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의 마음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