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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치욱 Oct 03. 2021

영화마케터가 가장 선호하는 감독의 유형은?

흥행 감독도 마케팅에 적극 참여하는 감독도 아니었으니...

<메기>의 이옥섭 감독님은 홍보마케팅 과정에 정말 열심히,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메기>의 3만 관객 돌파 영상도 직접 촬영해주셨던 것으로 들어서 인상적이었다. 영상도 꽤나 귀엽고 재치있으며 이옥섭X구교환의 감성이 그대로 녹아 있어 재미있게 봤다. 나는 영화마케터가 되기 전에 이 에피소드를 통해 '와 내가 이런 감독님과 홍보마케팅을 진행하면 얼마나 일이 즐겁고 신날까'라는 생각을 했다.


<벌새>의 김보라 감독님은 홍보마케팅 과정에서 영화가 '샤방샤방한 중학생의 이야기로 귀엽게 그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배급사 측에서 주인공 '은희'의 진지한 감정적 서사를 다루고 있는 영화로 비춰지게끔 홍보물의 컨셉을 맞춰줬고, 감독님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일을 할 때 얼마나 큰 시너지가 날 수 있는지를 느꼈다고 했다. 역시 영화마케터가 되기 전의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감독님의 연출의도가 상업성에 매몰되지 않게끔 사려 깊은 홍보마케팅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이제 나는 영화마케터가 되었다. 신입인지라 아직 경험이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일을 하면서 몇몇 유형의 감독님들을 직간접적으로 뵙고 협업했다. 지금 영화마케터로서 내가 가장 선호하는 감독의 유형은 흥행성 높은 작품을 만든 감독도 아니요 홍보마케팅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감독도 아니다. 그냥 우리 쪽에서 제시해주는 홍보물을 군소리 없이 컨펌해주시는 감독, 즉 일절의 간섭이 없는 감독을 가장 선호한다(당연히 업계 전체의 의견과 무관하다)!




이렇게 말하니까 신입 주제에 벌써부터 꽤나 직업정신이 부족한 것처럼 스스로도 느껴진다. 우선 변명을 좀 하자면 먼저 감독님은 직장인이 아니어서 그런지 출퇴근과 주말의 개념이 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엄연히 퇴근 후의 개인 시간과 주말이 존재함에도 감독님에게 이것저것 업무 연락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면 솔직히 귀찮고 주말도 쉬는 느낌이 잘 안든다. 감독님, 저희는 사적인 지인이 아니랍니다. 일과 외 시간의 카톡을 멈춰주세요!


그리고 감독님께서 홍보마케팅 과정에서 여러 의견을 내시지만 일관된 의견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생각을 표출하시면 다소 난감할 때가 있다. 이미 타깃 관객에 맞게 영화를 포지셔닝하고 그에 맞는 전략들을 세워서 홍보마케팅을 진행하는데 그 방향성에 어긋난 의견을 제시해도 홍보마케팅사 입장에서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이기 때문에 최대한 들어드리려고 한다. 하지만 방향성에 많이 벗어나는 의견을 주시면 홍보마케팅이 자칫 산으로 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적절한 조율이 필요하다. 물론 나는 아주 작고 하찮은 신입이기 때문에 우리 대표님께서 그런 부분들을 컨트롤하신다.


또한 홍보마케팅 과정에서 포스터나 예고편 등의 선재물을 제작하고 공개하는 과정이 그리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감독님이나 제작사 측에서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수정을 요청하면 마음이 다급해진다. 특히 선재물 제작은 오프라인 마케팅사가 자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광고디자인사(포스터, 전단 등을 제작)나 예고편사에 요청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분들의 일정에 여유가 없으면 최대한 자세를 낮추면서 수정 제작을 요청하고 겨우겨우 완성된 선재물을 받게 된다.




그런데 입장 바꿔서 내가 감독이라면 고생고생해서 만든 영화가 이제 관객들과의 만남을 앞둔 상황에서 어떤 모습으로 보여질지를 전적으로 홍보마케팅사의 결정에만 의존하고 손을 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사소한 디테일까지 챙겨서 의견을 주시는 감독님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감독님은 홍보마케팅사가 마케팅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니 모쪼록 믿고 맡겨주시면 좋을 것 같고 또 우리 홍보마케팅사는 감독이 작품을 통해 의도한 바가 홍보마케팅 과정에서 오도되지 않도록 최대한 감독님의 의견을 경청해야 할 것이다. 결국 역지사지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다소 뻔한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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