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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새 May 25. 2022

내려 올 산을 왜 올라가나요?

우리가 캠핑을 가는 이유




아...

낮은 탄식이 나왔다. 엘리베이터가 멈춰버렸다. 하필 양손 가득 캠핑 짐을 나르려는 시작점이다.

'지금 나한테 이러지 마'라는 애원을 담아 1층 버튼을 다시 눌러보지만 반응이 없다. 하는 수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문은 얌전히 닫히더니 8층에 멈춰 선 채로 '점검 중'이라는 빨간 알림을 내건다. 영업 종료라고 내건 빨간 간판같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양손 가득 든 짐을 한번 추켜들고 계단으로 내려간다. 내려가고 또 내려간다.

1층이 이렇게 멀었구나. 빈손일 때는 운동삼아 오르락내리락했었는데, 양손 가득 든 채 내려가려니, 갑자기 훈련 시작이다. 


3층 계단참에서 그이를 만났다. 

"고장 났어?"

"어, 타고 내려가려는데 먹통이야"

짧은 대화를 주고받고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엇갈린다. 1층에 도착할 쯤에는 내 손가락은 짐가방 손잡이에 짓눌려서 요상하게 붙어있었다. 차 앞에 내려놓자마자 숨을 몰아쉬었다. 저질체력. 하지만 지금 현관 앞에 있는 짐은 20kg이 넘는 텐트 하나, 마트에서 가장 큰 사이즈로 파는 장바구니에 가득가득 물건을 넣은 짐덩어리가 두 개. 계산상 내가 한번 더 가야 한다. 

다시 올라갔다 내려오고 관리사무소의 엘리베이터의 고장을 신고한 후 우리는 출발할 수 있었다. 예상시간보다 이십 분 늦어졌다.


늦어진 시간보다 문제는 몸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편도 세 번일 뿐인데 팔이 늘어나서 땅에 끌리는 기분이고 내 팔이 아닌 거 같았다. 이십 분 만에 하루 종일 체력장을 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사가 날아온다.


"이거 봐, 이거 봐, 내가 어젯밤에 날라야 한다고 했는데, 아, 내 생각대로 할걸, 이래서 다음은 없어"


빙고, 대사 그대로 맞췄다. 이럴 때 같이 산 세월의 경력을 실감한다.

'내가 저말 할 줄 알았지'

나는 말을 삼켰다. 힘들어서 턱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이는 엘리베이터를 발명한 사람은 정말 위대하다며, 아파트의 꽃을 엘리베이터라고 엘리베이터 예찬론을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나는 당이 떨어져서 팔이 떨리는 건지 짐을 들어서 후들거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우선 셋다 뭘 좀 먹어야 했다.

지금 에너지가 바닥이니 연료를 넣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숭고한 시간이었다. 조용히 씹기만 했다.

예상치 못한 미션을 간신히 통과했다.


두 번째 미션은 캠핑장에 도착한 직후였다.

우리가 사용할 데크를 본 그이가 '허허 요놈 봐라'라는 눈빛으로 데크의 네 귀퉁이를 돌아다닌다.


"큰일이다. 텐트 못 칠 수도 있겠는데?"

"헉..."

두 번째 미션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리빙쉘 텐트가 이토록 컸다 말인가.

크긴 컸지만 데크에 올라가기 가당치 않을 정도로 컸다.

그보다 문제는 경사도였다. 이곳은 평지가 아닌 낮은 언덕에 데크를 설치해둔터라 사방팔방 높이가 달랐다.

텐트보다 작은 데크에서는 해봤어도 내 모서리가 높이가 다 다른 곳은 처음이었다.

아차차 싶었다. 처음 온 캠핑장이었고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서 내가 놓쳤다.


"그래도 뭐 해봐야지. 사람이 못할게 어디 있어! 하다 보면 다 되게 돼있어!"


그이는 스스로에게 말하듯이 크게 외치고 작전에 돌입했다.

'어떻게든 하겠구나' 싶었다. 그이가 저렇게 말하면 진짜 어떻게든 하긴 하더라.

우리의 텐트는 3미터 × 6미터 정도였고 데크는 양쪽 4미터가 안 되는 정사각형이었다.

잠을 자는 이너텐트를 데크에 올리고 양쪽 균형을 잡아 위치를 정했다.

그리고 40센티미터 정도 차이나는 높이는..!

소름돋는 싱크로율

바베큐 의자로 극복하였다!

소름 돋는 싱크로율이었다.


'이러려고 너희를 샀구나, 너희들의 존재 의미는 이거였구나, 기특하도다 의자여!'


기울어져서 쓰러져가던 집은 겨우 균형을 잡았다.

그이에게 천재를 외치며 두 번째 미션을 해결한 동지에게 엄지를 세웠다.


인간은 이렇게 살아남아 왔구나. 방법을 찾아내는구나.

순간 나는 우리가 이러려고(?) 캠핑을 다니는구나 싶었다.

해결 할수 있을 정도의 크기의 문제들이 수시로 발생하는 캠핑에서 주어진 상황 안에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로 문제들을 해결한다. 마치 맥가이버 아저씨가 불가능할 거 같은 상황을 결국에 해결해버리면 보는 사람 속이 시원해지고 흥분되는 상황.

그리고 맛보는 작지만 리얼한 성취감.

캠핑에서는 한정된 살림살이로 살아야 하니 매번 대응책들이 활발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격언이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그리고 늘 방법은 있었다.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내 탓이네 네 탓이네 안 하고 미션처럼 상황을 바라보면 즐거운 게임이 되었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쳐준다.

그것은 생각보다 즐겁다. 내가 내 삶을 주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번 캠핑도 예상한 것과 예상치 못한 것의 혼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좋았다.


고작 하룻밤 자고, 불편하게 밥을 지어먹고, 짐을 바리바리 싸서 차가 밀리는 도로를 힘겹게 통과하여 집에 도착했다. '합리적이지 않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반박할 멋진 말들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다음 캠핑을 계획한다. 이렇게 다녀오면 우리의 삶이 풍성 해진다는 걸 우리는 진심으로 깨닫고 있다.



캠핑의 다른 이름은 문제해결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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