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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루 Mar 10. 2023

H와의 연애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 남은 것


“ 그만 만나자. “


다섯 글자에 우리의 관계는 끝이 났다. 처음엔 그가 원망스러웠다. 아무리 잡아도 잡히지 않는 그가 미웠다. 시간이 흐르고 화살은 나 자신에게로 향했다. 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아프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아리었다. 인간의 감정을 관장하는 건 뇌라지지만, 그때만큼은 심장이 난도질을 당하는 듯했다. 마음이라는 장기가 실존한다 해도 믿겠다 싶었다.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잘 수 없었다. 삶의 기본적인 부분까지 뿌리째 흔들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살고 싶었다. 양이 줄긴 했어도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여러 번 뒤척이긴 해도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때부터 헤어짐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나‘라는 사람이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할 만한 존재’로 남아 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를 사랑했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 존재했을 거라고. 그의 사랑이 그리 작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사랑과 함께 불안도 자라나는구나.”

“그 불안이 상대를 향한 집착으로 드러나는구나.”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서운함을 합리화했던 거구나.”

“나였어도 그런 연애는 지속하기 힘들었겠구나.”


그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헤어진 후 마주하는 여러 이별 글귀들 중 가장 싫었던 것은 “마음이 그 정도까지였을 뿐이다. “, ”그 문제를 극복할 만큼 사랑하지 않았던 거다.”라는 말이다. 그 말이 가장 잔인했다. 이별을 겪어내고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그 사람은 당신을 많이 사랑했을 거라고. 그러나 우리가 무의식 중 상대방을 힘들게 했던 모습 때문에 아주 지쳤을 뿐이라고. 그모습들을 하나하나 찾아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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