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족이라는 둥지 아래에 있다면 그 가족의 사이는 매우 끈끈하고 사이가 좋고 모든 지 서로 들어줄 것이라 막연한 기대를 했었습니다.
사실 그러한 가족으로 만드는 것은 제 자신으로부터였습니다.
하지만 어릴 적 아버지에게 그러한 중심 역할을 해주기를 많이 기대했습니다.
제가 노력을 하지 않고 왜 그런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불만과 원망만 가득했었습니다.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매우 수직적인 관계였습니다.
수평적인 관계로 조금씩 변하게 된 것은 제가 그나마 군대를 제대하고 경제적 독립을 했을 때부터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여러 가지 사연으로 사이가 가까워지지 못했습니다.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기에 저는 아버지께 매월 용돈을 보내드리기 시작하였고, 큰돈이 필요하셨던 아버지는 제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반지하방에서 매월 카드값에 허덕이고 있던 저는 그렇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 아버지께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돈을 빌려드리지 않으면서 보내드렸던 용돈도 못 보내드리게 되면서 거기에 따른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즉, 가족이라고 불리기엔 너무나 먼 사이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상황은 거꾸로 반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려운 환경에서 이겨내어 안정적인 생활을 하셨고
저의 삶은 큰 어려움과 시련 속에 어느 기회가 찾아와 큰돈이 필요한 상황을 마주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께 돈을 빌리려고 문의를 하였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저는 크나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가족이라면 당연히 어려울 때 돈을 어떻게 서든 빌려 드렸어야 하는데, 내가 참 경솔했다. 내가 했던 그 생각만큼, 그 한계까지가 바로 나의 가족이었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가족뿐만이 아닌 관계가 모두 정립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믿었던 가족, 친구, 동료들은 어쩌면 내가 믿는 만큼 나를 믿어주고 내가 내어주는 만큼 내게 내어주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큰 사랑으로 그들을 대하면 되려 더 큰 사랑으로 나를 대하는 것을 마주합니다.
가족의 의미와 서로의 존재에 대한 사랑은 다름 아닌 바로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따뜻한 눈빛을 보냈는가? 내가 사랑을 주었는가? 내가 경청했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과 열심히 그들을 돌보았는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게 도움을 청하는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이제는 관계의 소중함을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갑니다.
새로운 마음과 정성으로 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선물 같은 하루를 보냅니다.
그 과정 속에서 부족함이 있다면 원인을 나로부터 찾고 내가 진정한 가족이 우선적으로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힘이 납니다.
내가 이루고 성취하는 것을 나누며 물질적으로도 더 풍요롭고 기쁠 순간들이 눈앞에 그려지니 관계가 충만하고 여유가 생기면서 사랑이 더 커집니다.
2026년에는 가족들이 더 행복해할 순간들을 더 만들어 봅니다. 가족들이 행복하면 저도 행복하니깐요. 우리는 모두 이어져있습니다. 가족들과 건강하고 기쁘고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