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다정한 목격자 >
요즘 나의 친애하는 지인이 구직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그녀는 쉬지 않고 일을 해왔다. 두 아이의 엄마였지만 늘 열정적으로 일을 해왔고,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해 왔다.
그런 그녀가 직장을 그만두고 일주일 쉬었을 뿐인데, 그녀는 다시 일을 하고 싶어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지루해했다.
그래서 열심히 구직활동을 하는 중이다.
다양한 경험을 살려 이력서를 여기저기 넣어보는데, 되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말고 하며
이 상황에 휘둘리지 않으며 지내고 있다.
그녀를 보며 문득, 박찬욱 감독의 가훈 ‘아니면 말고’가 생각났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 한국영화의 거장 박찬욱 감독의
가훈은 '아니면 말고'라고 한다.
딸의 어린 시절,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에 '아니면 말고'를 적어 보냈는데, 선생님은 적잖이
당황하신 모양이다. 이런 건 가훈이 될 수 없다며 다시 가훈을 받아오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은 '아니면 말고'가 가훈인 이유를 다시 적어 보냈다고 한다.
“ 현대인들은 자기 의지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매우 오만한 태도다.
세상에는 의지만 갖고 이룰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닥쳐오는 좌절감을 어쩔
것인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툭툭 털어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 경쟁만능의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건 포기의 철학, 체념의 사상 아닌가. ”
박찬욱 감독이 왜 '아니면 말고'를 가훈으로 삼았는지,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럭키비키 원영적 사고도 물론 좋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아니면 말고'
찬욱적 사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진즉에 필요했던 사고다.
예전에, 친구와 함께 야침 차게 기획했던 일이 있다.
오랜 시간 취재를 하고, 자료를 모으고, 함께 회의를 하며 공을 들여 준비했던 기획이었는데,
보기 좋게 까이고 말았다.
터무니없이 까인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조목조목 친절하게 까였다.
하지만, 모든 말들이 설득력이 있어서 할 말이 없었다. 실로 괜히 전문가가 아닌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우애를 느꼈고, 속상한 마음에 술잔을 기울였다.
'아니면 말고' 하고 툭툭 털고 일어서기엔 타격감이 컸고, 우리는 한동안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만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하며 자부했는지도..
최근, 다시 친구와 일을 시작하며, 우리는 그전에 했던 기획을 다시 살려보자
이야기를 나눴다. 그냥 버리기에 너무 아까운 아이템이기도 했지만, 이제 우리는 좀 더
단단해진 것이 아닐까? 또 까이면 어때? 아니면 말고. 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박찬욱 감독의 말대로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무수한 좌절을 겪는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인생은 예측불허이고 변수는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친구와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그것이 결과로 이어질지 아닐지는 예상할 수 없다. 이왕지사 잘되면 좋은 거지만...
일단 최선을 다해볼 것이다. 그래도 안되면 '아니면 말고' 하며 또 다른 기회를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구직활동을 하는 지인에게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우리에게도.
언젠간 좋은 기회가 오길 바란다.
진짜 인연.
'아, 이 일이었어' 하는 그런 일이 말이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 오늘도 우리는 꿈을 향한 축적의 시간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