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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로미의 김정훈 Aug 24. 2022

대학생에게 주어진 커리어 조언의 문제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행복하고 충만한 의미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처절한 탐구다. 따라서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의미를 느끼는지에 대해 경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내가 하는 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도 주어야 한다. 또 어떤 일과 상황 속에 담긴 의미를 발견하는 판단력을 지녀야 한다. 


현대의 커리어 기대와 커리어 전략과 조언이 가진 문제점 


현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은 중세 시대의 인간들과 달리 일을 하면서 경제적인 보상뿐만 아니라 행복감을 얻으려 한다. 과거 먹고 살기 위해 일했던 세대와 달리 이제는 대부분의 경우 먹고 살기만을 위해 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단순히 돈만을 생각하기보다 나에게 의미가 있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을 추구한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활기를 더해줄 일을 찾는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커리어 전략과 진로에 대한 조언은 사회초년생들이 직업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목표를 도와주지 못한다. 또한 커리어전략의 결과물 역시 거의 무의미하다. 따라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는 커리어 전략과 조언을 최대한 ‘참고’만 하려고 해야 한다. 


사회초년생은 그 이름에 걸맞게 사회 경험이 부족하다. 기술을 배우는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면 기술은 거의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따로 자발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감탄할만한 능력도 없다. 따라서 ‘주특기’라고 말할 만한 어떤 능력이나 시야가 부족하다. 아직 산업을 바라볼 안목이나 경험이 없다. 각각의 업계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그에 관련된 지식과 기술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 어떤 산업에 관심을 가져야 할지도 모르고 우왕좌왕한다. 따라서 회사를 정한다 하더라도 내가 이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을지 제대로 모른다.


이런 상황에 놓인 우리에게 커리어 전략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가. 각각의 커리어 전략은 약간씩 다른 특징을 보이지만 보통 자신의 특성을 살리는 일을 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거의 공통적으로 취미와 적성을 좇아가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정말 이 전략을 온전히 따를 수 있을까?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이제는 알 수 있다시피 학생들은 취미나 적성에 대해 대답할 만한 경험의 재료가 없다. 


두 번째, 만약 대답한다고 하더라도 믿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한 대학생이 ‘나는 공학 잘하는데요.’라고 대답했다고 해보자. 하지만 알고 보니 현실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일을 하라고 하니까 사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사실은 ‘겉만 번지르르한 학문적 성취의 외장일 뿐‘이었다면 어떨까? 학생은 자신이 수업을 열심히 들었고 시험 성적이 좋으므로 나름대로 실전에서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사실 현장에서 전혀 쓸모 없는 이론적 공부였다면 학생의 잘못된 믿음이 무의미하다 못해 부정적이지 않을까. 교수는 자신의 의견을 충실히 적어서 만족스러웠다는 의미로 그에게 A+라는 학점을 주었지만 그와 함께 학생에게 헛된 믿음도 주었다. 


세 번째, 취미나 적성이 없는 학생은 전략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자신에게 온전히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며 미래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크고 심한 경우 뭔가 행동하기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20대 초중반의 성인들이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이해는 대부분 주변 입김의 작품이다. 자신에 대한 이해를 갖추기 위한 자발적인 사색의 경험은 거의 없다. 이들은 살면서 수만 가지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주입받고 진로와 취미를 입력받았다.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낀 직업을 무작정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거나, 친구가 무심코 던진 나의 ‘정체성’을 그대로 믿는 것이다.


이전에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했듯이 그 정체성은 불안정하다. 친구들이 ‘너는 교사가 어울려’라는 말에 자신의 이미지를 믿어서 단순히 ‘나는 그럼 교사를 해야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뒤로 자신이 교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만 편향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사회초년생의 경우 자신이 환경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씩 점검해 본 경험이 없는 이상 거의 모든 것이 내가 아닌 ‘남’이라는 말이다. 어떤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 나를 진정으로 만족시키는 가치관이 아니었구나 싶은 경험이 없는 이상 자신의 가치관을 점검해본 경험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이유 중 하나는 아직 온전한 ‘나의 주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으며 그런 자발적인 판단의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방황하고 불안해한다. 


이런 상황에서 커리어 전략을 따르겠다는 말은 순전히 운에 내 미래를 맡기겠다는 뜻이다. 적성이나 장점에 대한 대답은 충분히 객관적인 증거에 따른 답변이 아니라면 얕은 근거에 의존하거나 일단 대답해야 하니까 아무 대답이나 내놓은 결과물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나의 대답이 형성되지 않았다. 한데 이 결과물을 토대로 도출한 전략이 과연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성격을 검사하고 커리어 전략을 세우더라도 사회초년생이 성격이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많은가! 20대의 나와 비교해 30대의 자신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른은 적지 않다. 따라서 오히려 커리어 전략이나 조언으로 인해 나의 성격이나 진로를 확정지어 버리는 순간 인간은 더 폐쇄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나는 이런 성격이라 그건 안돼’ ‘나는 이게 맞아서 그건 별로 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다. 폐쇄적인 사고방식은 잘못된 정답을 믿어버리고 확정 짓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사고방식 중 하나다. 




결과를 보는가 과정을 보는가


사회초년생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은 많다. 따라서 자신이 동경하는 사람들의 직업을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막상 그 길을 좇는 대학생은 얼마 가지 않아 포기한다. 왜냐하면 흥미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 일을 즐길 수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그들의 결과만을 동경했을 뿐이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그들은 자신이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고 잘못 태어난 게 분명하다며 다시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불안해한다. 그러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동경하는 일을 시작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헷갈린다. 결과를 좋아하는지, 과정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이 두 문제는 얼추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막상 시작해보면 실행력이나 추진력, 호기심 영역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일 수 있다. 


결과를 좋아한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 생각한 그 일이 가진 특징을 말한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그 직업이 가진 사회적 지위나 평균 연봉, 직업의 안정성과 그 직업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동경하는 것이다. 


반대로 과정을 좋아한다는 말은 ‘그 일에 진심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 직업이 가진 결과물도 물론 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 일을 하는 과정 자체에 굉장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으며 남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노력하고 개선하고 결과물을 도출하려는 일이 바로 과정을 좋아하는 일이다. 


과정을 좋아하는 일과 결과를 좋아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면 앞으로의 인생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나름대로 ‘좋아한다’고 생각한 일인 줄 알고 지원했는데 그저 결과를 좋아한 일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일을 몇 개월 하고 나서야 깨달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할 때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회의감이 잔뜩 들어서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해도 이 모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공부로 예를 들어보자. 대학교라는 결과물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부가 지겹고 따분하다. 하지만 공부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은 결과물도 좋아하지만 그 과정 자체도 즐겁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수 있다. 분명 대학교라는 결과물만 보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공부하는 과정도 즐기게 됐는데, 그렇다면 이걸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또한 결과를 좋아하는 일이라도 하다보면 과정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만약 결과를 얻었다고 해보자. 그때도 과정을 즐길 수 있을까? 대학교에 와서도 공부를 할 자신이 있는가? 대학교에서도 공부하고는 있지만 항상 회의감이 든다면 그것 역시 그다음 결과를 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결과물에 대한 호기심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결과물만 보느라 과정 속에 있는 다른 소중한 행복들을 보지 못한다. 눈앞의 결승선에만 몰두하는 선수는 길에 놓여 있는 꽃들과 나를 응원하는 이들을 보지 못한다. 결과물만이 행복이라고 믿고 시야가 좁아진다. 그리고 결과만 보는 일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뒤통수를 칠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였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바로 그 순간 말이다.


물론 어떤 과정을 즐기고 몰입하는 일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왜 이 일은 분명 좋아하는데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가’하고 생각했거나 ‘도저히 실행력이 안 생긴다’라고 느낄 때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좇은 것은 아닌지 하고 돌아보자. 결과만 보고 달려가는 인생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느라 행복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학생들은 졸업하고 얻는 직업에서 행복도 함께 얻기를 바란다. 하지만 커리어전략은 오히려 그런 대학생을 교묘하게 방해한다. 마치 자신의 탓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문제를 모두 커리어전략을 사용한 사람들에게 씌운다. 커리어전략은 이미 경험을 갖추고 있는 사람에게 유효하다. 최소한의 커리어를 갖추고 있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 생각의 재료를 줄 수 있는 전략이 커리어 전략이다. 따라서 대학교에서 커리어 전략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것은 거의 무의미하다. 지금 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전략이 아니라 경험과 사색이기에. 


불같은 조언은 가끔 사람을 태워버리기도 한다


어른들의 조언 역시 대학생들에게 치명적이다. 어른들 역시 자신들이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과 사회의 분위기, 환경의 영향을 받아오면서 자랐을 것이다. 그렇게 자란 어른은 우리에게 마치 선심 쓰듯 ‘자유를 겸비한 개인주의적 조언’을 한다. 자유에 허덕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취약한 그들의 이념은 우리에게 독이 될 뿐이다. 


우리는 이미 그 조언에 지쳐있다. 왜냐하면 그 조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판단력에 대한 존재를 일깨워주지 않은 것을 보아 기성세대 역시 ‘판단력’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하지 않고 피하는 사람이 많다. 


어른들은 분명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지금 모습은 어떠한가.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해서 살지 못하고 있다. 어른들은 분명 열심히 살면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열심히 살라는 대로 살았지만 왜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가. 


이렇게 불평하는 우리에게 어른들은 다시 조언한다. ‘간절함이 부족하다. 일단 열심히 살면 다 풀린다’ 그들은 자신이 젊었을 때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열심히 살았다고 말하며 더 노력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우리가 간절한 것은 어떻게 살라는 조언이 아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긴박하고 중요한 문제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런 우리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 같은 글을 남겼다. 



“내가 진정으로 분명하게 확인하고 싶은 것은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지 내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은 ‘나에게’ 진실인 어떤 진실을 찾는 문제, 즉 ‘내가 인생을 바쳐서 기꺼이 살고 또 죽을 수 있는 어떤 사상’을 찾는 문제이다.”


어른들의 조언은 항상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짧고 명쾌한 지혜다. 조언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 물론 조건이 붙는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조언자는 지혜를 얻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물론 어른들은 이렇게 하고 있다. 그들은 종종 젊은이들을 앞에 세워놓고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회초년생에게는 그것을 받아들일 인내심이 없다. 따분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 이야기를 왜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없으니 모든 이야기가 다 한 귀로 들어가서 한 귀로 흐른다. 호기심을 버린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밥을 먹을 생각이 없는 아이에게 효과적으로 밥먹는 방법은 귀찮은 잔소리에 불과하다. 그보다 메뉴를 정하지 못한 아이에게 효과적으로 밥 먹는 방법을 설명하는 행위는 조롱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른들의 조언을 절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는 일부 젊은이들에게 치명적인 일이 발생한다. 누군가가 남의 조언을 비판적인 수용을 거치지 않는다면, 다른 말로 그 조언이 나에게 적절한지 적절하지 않은지 따지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이면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누군가의 ‘어떻게’ 살라는 조언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렇게 살지 않으면 자신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의지가 부족하거나 문제가 많은 사람으로 생각한다. 창피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믿으며 수치심을 느낀다. ‘사람 구실’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낀다. 


크면서 한번쯤 들어봤을법한 커리어 전략과 어른들의 조언은 대부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전략과 조언을 참고만 해야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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