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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수 Sep 08. 2023

자식은 부모의 크기만큼 자란다 -칭찬마저 거부하는 아이

국어 강사의 생각(feat, 출판번역가)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에서 비롯된 것으로, 읽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결코 누구를 비방하거나 어느 한쪽의 입장을 옹호하려는 의도는 없음을 먼저 밝힙니다.)


  입시학원을 경영하며 중고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어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본디 회사원이었다가 출판번역가의 길을 걸으며 최근까지 50여 권의 도서를 출간했고 번역서 인기가 시들한 요즘도 일 년에 한두 권 이상 꾸준히 책을 내고 있다. 게다가 글쟁이가 운명인지 아이들을 가르친 지도 벌써 15년이 넘었다. 아내와 함께 고향에 입시학원을 설립하여 지금껏 많은 아이들을 대학에 입학시켰고, 삼촌 숙모처럼 가르친 덕분에 대학 진학 이후에도 때가 되면 국어샘 좋아하는 원두나 간식거리를 들고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다. 굳이 이런 커리어를 언급하는 이유는, 현재 번역가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의 상당수는 안정적인 수입을 얻기 위해 이른바 '부캐'를 생각하고 있거나 이미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을 터인데 학원도 그 대안의 하나임을 실례로 알려주기 위해서다.

  각설하고, 이 글에서는 내가 최근 몇 년간 지도하며 특히 고민이 많았던 학생 A의 사례 및 부모와 학원의 관계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이 아이로 인해 스트레스도 참 많았고 내 인격도 주기적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어쩌면, 인내심의 바닥을 수없이 경험한 덕분에 스스로를 성찰할 기회가 많아졌으니 이것도 내 업보인가 싶기도 하다.  

  A는 중학교 3학년 남학생으로 2년 전에 우리 학원에 와서 지금껏 공부하고 있다. 165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100킬로그램에 육박할 만큼 살이 쪘고,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데다 그다지 노력도 하지 않고 동기 자체도 없다. 본인의 의지는 없고 그저 시키니까 학원에 올 뿐이다. 그래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젠틀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런데 A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해마다 괴롭힘을 당해 극단적인 생각(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그랬다)도 여러 차례 했으며 이 괴롭힘이 최근까지도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친구들의 괴롭힘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은 눈빛부터 다르고 수업 자체가 어려울 만큼 우울해한다. 나는 대학교에서 발달심리를 비롯한 아동심리학이나 장애인 관련 분야도 어느 정도 공부했지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런 아이들의 부적응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섣불리 재단할 수는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학생과의 상담을 통해 부모의 성향과 가정에서의 성장 환경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극단적으로 추락해 있는 자존감을 회복시켜 조금이나마 성취감과 자신감을 갖도록 돕는 것뿐이다.

  공부 시간보다 상담 시간이 긴 날도 많다. 상담이라고 해봐야 내가 처방을 할 수 없으니 그저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상황을 확인하고 위로하는 게 전부다. 이렇게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날은 아예 책에 집중하려 하지 않으며, 이런 행동양식이 이미 습관으로 굳어졌다. 어쨌든 나는 아이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높이기 위해 먼저 칭찬거리부터 찾았다. 찾고 또 찾았다. 하지만 장점을 찾기가 숨은 월리 찾기보다 어려웠다. 말투, 표정, 행동, 자세, 습관, 사고방식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부정적’이라는 단어가 인간으로 형상화한 느낌이랄까!

  넌 좋은 사람이라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신사라고, 아무리 좋은 말로 북돋워도 아이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사례를 하나하나 언급하며 넌 좋은 사람 아니냐고 파고들면 그때서야 마지못해 수긍한다.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대접을 받으며 자랐기에 어린아이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나는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궁금해졌다.

  A 학생은 (2년여를 겪으며 어느 정도 파악했는데) 단독주택에서 조부모 및 부모님과 함께 생활한다. 어른들은 이따금씩 아이 손에 먹을거리를 들려 보내며 우리에게 감사를 표하신다. 손이 많이 필요한 아이를 마땅히 맡길 학원이 없어 고민하다가, 우리 부부가 서울로 진학시킨 학생 어머니의 강력한 추천으로 우리 학원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분들은 A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조건 학원을 신뢰하고 긍정적으로 대응해 주신다. 어른들께서 그러하시니 우리도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2년 전, 상담을 하러 어머니와 함께 처음 학원에 온 A를 눈여겨보았는데, 아이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첫인상부터 남다른 점이 많이 보여 앞날이 험난할 듯했다. 어쩌면 가벼운 자폐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전문가가 아니라 언급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유심히 관찰한 바로는 아스퍼거 증후군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사실 이런 아이는 되도록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은 자녀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크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지리라고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견딘다. 그 하루하루가 자녀에게는 엄청난 고통의 반복이라는 것을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 아이의 부모님께도 IQ나 적성검사, 진로상담 같은 평범한 검사를 언급하며 전문가를 만나 보시라고 여러 차례 권했다. 그때마다 부모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여 놓고서도 결국은 다음에 상담받겠다는 말로 회피한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어차피 노력하지 않으면 상담도 소용없으니 일단 노력부터 해보자고 말한다. 뭘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아이에게 말이다. 아이는 상담받을 의지가 있다고 하는데도, 부모가 도리어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다. (A의 외가에 A와 유사한 외모와 성향을 지닌 외삼촌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A의 어머니도 남동생 및 아들과 비슷한 성향이라, A의 부모는 이미 유전적인 여러 가지 것들을 알고 있기에 정답이 없다고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 A는 충분히 변화 가능성이 있고 그동안 실제로 달라진 부분도 많다.)

  사실 내가 상담을 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 때문이다. 자녀는 부모가 뱃속에서부터 만든 작품이다. 작가가 누구냐에 따라 작품이 결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바다를 보지 못한 부모가 무슨 재주로 자녀에게 바다를 설명할 것인가? 상담이 필요한 첫 번째 대상은 바다를 본 적 없는 바로 그 부모들이며, 자식을 둔 우리 모두이다. 그런데도 늘 화살은 ADHD나 후천성 자폐, 틱 장애 등 겉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로 향하기 마련이다.

  내가 A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A의 말을 들어주고, 장점을 인정하며 칭찬해 주고, 조금이라도 잘하는 과목으로 자존감을 높여 주는 것이었다(A는 영어와 국어 점수가 많이 향상되었고(20점대에서 70-80점대로) 수학(10-20점대)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그렇게 2년여의 세월이 흐르면서 A는 우리를 자기편으로 완전히 신뢰하며 따르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학원에 와서 공부하지만, 공부를 대하는 태도는 천차만별이다. 어떤 날은 종일 책을 바라보며 연필만 긁적거리는가 하면(표정과 필체를 보면 그날의 심리 상태를 대충 알 수 있다), 또 어떤 날은 활발하게 발표하며 꽤나 적극적으로 공부한다. 학습능력이 많이 떨어지더라도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선생으로서도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다.  

  아이를 학원에 맡기고서 왜 성적이 오르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부모들이 있다. 이와 정반대로 (드물지만) 부모로서 아이를 똘똘하게 키우지 못했으니 가능한 만큼만 가르쳐 주시고 너무 욕심 안 내셔도 된다며 우리에게 정중히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선생님을 대하는 부모님의 태도를 자녀도 그대로 물려받는다. 여기서 시너지가 발생하여 학원 생활이 즐거워지고 성적이 향상되며 진학 결과도 좋아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아이는 부모를 똑 닮아 있다. 아이를 보면 부모가 보이고 부모를 보면 아이가 보인다. 본인들이 제대로 키우지 못한 나무를 타인이 인계받아 준수하게 성장시키려면 참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부모의 관심과 협조가 절대적으로 핅요하지만, 대체로 부모들은 학원의 연락을 꺼려한다. 어쩔 수 없이 우리만의 방식으로 정성을 들이다가 뒤통수를 맞는 경우도 다반사다. 마치 우연한 계기로 종양을 발견한 의사에게 왜 더 빨리 발견하지 못했냐고 나무라는 식이다. 15년 넘게 그렇게 키워놓고, 학원에 맡긴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나무가 왜 이 모양이냐며 우리를 탓하는 부모도 있다. 학원과 갈등을 일으키고, 자기 수준에서 잘하고 있는 아이를 굳이 다른 학원으로 보내는 부모들이 대체로 앞에서 언급한 경우이다. 자존심은 강하되 교양도 자존감도 부족한 부류이다. 그래서 상당수 아이들이 일관되게 공부할 기회를 놓치고 주기적으로 학원 쇼핑을 하다가 고등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자식은 부모의 크기만큼 자란다. 몸과 마음이 아플 때 의사를 찾아야 하듯이, 성적이 나쁠 때는 교사든 학원이든 찾아가 꼼꼼히 상담하고 협력하는 것이 최선이다. 바다를 보지 못한 부모라면 적어도 자녀에게는 바다라는 것을 보여줄 의지를 지녀야 한다. 본인들의 아집으로 아이의 미래에 겹겹이 장애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를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 의사든, 학교와 학원의 선생님이든, 전문적 상담과 협력적 대화로 아이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부모의 좁은 소견으로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녀의 삶을 제약하는 일만큼은 사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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