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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까만 오른발 Sep 07. 2022

민방위, 장교 그리고 병사들

  토요일 오후에 다른 팀과 시간이 맞아서 갑자기 경기를 했다. 온라인으로 처음 본 상대팀을 직접 마주하니 긴장이 됐다. 상대팀은 현역 군 장교였다. 동기들끼리 모여 운동을 하는 듯했다. 몸들이 아주 좋았다. 탄탄한 근육과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과 날카로운 눈매와 짧은 머리카락에 우리 팀원들은 압도당했다. 생활 축구에서는 옷 입는 스타일이나 관상을 보면서 실력을 이미 평가한다. 우리는 단합력을 보여주기 위해 상하의 모두 유니폼을 착용했다. 우리끼리라도 사진 하나 찍을 걸. 상대팀의 몸과 기세에 눌려 어버버 하다가 경기를 시작했다.


  첫 게임은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가볍게 뛰자는 명목으로 서로 탐색전을 했다. 웃으면서 분위기를 서로서로 밝게 유지했지만 조금씩 근육과 관절이 풀리면서 경기 분위기도 고조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난 코로나 정국 동안 자체 전 외에 다른 팀과 경기를 일체 잡지 않았었다. 코로나에 감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었지만 우리 실력이 다른 팀과 겨루기에는 한참 모자라다는 자성이 있었다. 그러다가 올해 하반기부터 조금씩 다른 팀들과 질 각오를 하고 조심스레 경기를 치러봤는데 그렇게 밀리지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자체 전 보다도 숨이 덜 차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 날 경기도 같았다.


  처음에 받았던 강력한 인상과 달리 우리가 그렇게 밀리지 않았다. 최소한 체력에서는 우리가 훨씬 앞섰다.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공격이 실패한 이후에 수비로 복귀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느낌과 비슷했다. 축구는 흐름의 스포츠다. 몇 분 정도 공격을 하는 팀이 주도권을 갖고 상대편을 가둬놓고 공을 돌리면서 공격을 하다가, 상대편의 역습이나 기습 슈팅을 기점으로 상대편이 공격을 하던 팀을 가둬놓고 패스를 하면서 공격을 노리는 등의 흐름이 있다. 공수가 일정하게 변하는 패턴이 있다. 분위기에 따라 체력을 조절한다. 그런데 박지성이 뛰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공격을 하던 흐름이 이제 수비로 바뀔 무렵에도 박지성 홀로 공과 기세를 뺏어와 시종일관 공격적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박지성이 세계에서 가장 체력, 체격적으로 강력한 리그에서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능력이다. 체력과 더불어 깔끔한 태클 기술, 경기를 전체적으로 보는 시야, 동료를 이용하는 패스 등등 박지성 본인이 가진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바탕에 체력이 있었다. 그 체력이란 게 22명 양 팀 선발 선수와 양 팀의 수십 명의 코치스태프, 심지어는 10만에 육박하는 관객마저 느끼는 당연한 공수 전환의 분위기를 자신의 입맛대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박지성이라는 사람 자체의 기운이었다. 내가 본 박지성은 그런 느낌이었다. 전체 경기에서 그런 기운이 느껴지는 시간은 90분 중 아마 1분도 안될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의 전율이 모든 경기와 그 새벽, 당시 대한민국 축구팬을 지배했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서울에 또 다른 올드 트래포드가 생겼을까.

  그런 박지성의 진가를 알아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은 박지성을 아꼈다. 그중에서 박지성이 2002년 월드컵 이후 네덜란드 에더레비지에 PSV 아인트호벤으로 이영표 현 강원 FC 대표이사와 함께 이적 후 만난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공격수 '루드 반 니스텔루이'는 박지성을 아꼈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아시아 투어 도중 동남아 선수의 스터드에 이마가 찢어져 얼굴에 피칠갑을 하고 경기 도중 교체가 된 일이 있었다. 이후 박지성을 좋아하던 반 니스텔루이는 박지성에게 반칙을 범했던 선수를 눈여겨봐 놨다가 심판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이를 틈 타 그 선수에게 감정 섞인 응징을 한다. 


출처 : 올댓부츠 기사 도중

  지난주 토요일 나는 '반 니스텔루이'였다. 총무 일을 하면서 유니폼을 맞출 때 등번호 배번을 했다. 그중 우리 팀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번호 10번을 우리 팀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나면서 나이가 어린데도 사람이 겸손하고 맑은 이미지의 동생에게 줬었다. 선수 출신이 아닌데도 공을 잘 찬다. 역시 상대편도 그 능력을 알아보고 우리 10번에게 아주 거칠게 달라붙더라. 경기 수를 반복할 수 록 그 반칙의 정도가 심해졌다. 그래도 그 친구는 일절 반응하지 않고 공을 살살 내주며 슬기롭게 풀어나갔다. 그러나 나는 걸어오는 싸움은 마다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공격수 아래 프리롤로 자유롭게 오며 가며 경기를 잘 풀어나간다. 그 위에서 대신 몸싸움을 할 원톱 자리에 내가 섰다. 그리고 우리 10번을 괴롭히는 수비수와 먼저 몸싸움을 시작했다. 


  김종국 운동법에 한참 빠진 감독님께 사사한 어깨와 엉덩이로 상대 선수의 압박을 버텨내고 공을 우리 10번에게 줬다. 나는 원톱 공격수를 하긴 했지만 최전방에서 우리 10번을 보호하고 공간을 내주는 역할을 했다. 수비를 달고 다니면서 우리 10번이 잘할 수 있는 경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내가 침투하는 공간이 나오자 툭 밀어 넣어 골을 넣었다. 

  이런 게 팀플레이인가 싶었다. 너무 재밌었다. 경기가 우리의 승리로 끝나고 나는 바로 상대편 수비수에게 사과를 했다.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고 나니 내 기분이 먼저 풀려서 상대방에게 사과할 마음이 생긴 거지. 만약에 그대로 졌으면 내 성격도 좋은 편이 아니라 그냥 경기장 밖으로 기가 죽어 나왔을 것 같다. 그날의 승리를 자축하며 그날 밤은 내 생일로 파티를 마무리했다. 우리 팀 선수를 보호할 수 있는 팀에 대한 애정이 생겨서 좋다. 그 애정을 남자다운 방식으로 표출할 수 있어서 후련했고.


  그렇게 장교들이랑 혈투를 끝내고 나니 저 멀리서 더 좋은 풍채를 가진 남자들이 스멀스멀 걸어왔다. 우리가 갔던 풋살장은 한 부대에서 부대 복지 차원에서 간부들이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 그런 시설을 관리하는 기간병들이 우리와 함께 운동을 하고 싶다고 말을 걸어왔다. 나이를 물어보니 이제 막 22~23살 이더라. 10살이 넘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우리가 과연 안 다치고 깔끔하게 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냥 해봤다.


  그런데 이 청년 병사들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나도 민방위 N연차다. 이 어린 뽀시래기들의 싱싱한 심장과 다리를 어떻게 쫓아갈까 싶었지만 전에 했던 장교들보다도 쉬웠다. 역시 구력이란 게 쌓이긴 쌓였나 보다. 이 친구들과도 1시간 정도 경기를 하고 번호를 교환했다. 이 구장은 병사나 간부들 상대로는 무료로 개방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공짜로 공을 찰 수 있었다. 총무로서 이 점이 가장 욕심이 났다. 그래서 현역 병사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연락을 나눴다. 지역 내 클럽 간판을 깨러 다니는 것을 넘어 군부대 간판까지 으깨러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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