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내가 하는 SNS는 카카오톡과 브런치가 전부다. 카카오톡은 일과 사람 때문에 문자의 연장선이다. 내 휴대폰의 가장 큰 존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브런치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할 수 있어서다. 그리고 내가 보고 싶은 이야기만 볼 수 있다. 광고글이 부쩍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적당히 걸러서 볼 수 있다.
비교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비교당하며 살고 싶지 않다. 비교밖에 할 수 없는 머리 구조를 만들지 않고 싶다. 잘 안된다. 기사를 읽는 것은 간접적인 sns활동 같다. 지난밤 sns에서 조회가 많이 된 포스팅은 곧 기사가 되어 이야기는 확장된다. 누구는 성과급을 몇 천만 원이 입금된 계좌를 인증하며 인생 달달하다며 짧게 포스팅을 했다. 이윽고 그 포스팅은 기사화가 되어 나의 눈에 들어왔다. 나이가 들수록 돈을 더 갈구하게 된다. 그렇지만 돈만 바라보며 살고 싶지 않다. 인생에 돈 말고 다른 가치를 더욱 찾아가는 내가 되고 싶다. 솔직히 얘기하면 내가 그런 돈을 벌 능력과 자신이 없다. 열심히 살 용기가 없다. 돈을 잘 버는 것이 곧 열심히 사는 건 아니지 않나? 그렇지만 돈 많은 사람은 부럽다.
구조가 잘못된 것부터 파고들면 나는 소설 '아홉 살 인생'에 등장인물은 '방구석 철학자'가 된다. 그저 세상 탓만 하다가 혼자 목매달고 죽는다. 그렇게 스스로 스트레스의 감옥에 가둘 필요는 없다. 이러한 내 괴리와 속물근성과 재물에 대한 집착을 한결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들어준 영화가 최근에 본 '퍼펙트 데이즈'다.
비교하지 않아도 내 하루는 시작되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눈앞에 있고 그 일을 하다 보면 문득 행복은 항상 내 옆에 있음을 깨닫는다. 특히 혼자 일 때 느끼는 그 행복. 그 작은 행복을 찾는 방법을 이 영화를 보며 다시금 깨달았다. 내가 출근길에 밖에 나서 하늘을 보며 웃던 적이 있던가. 그런 정말 기본적인 행복을 찾으려면 가만히 입을 닫고 지금 내 주변의 대기의 흐름부터 느껴야 할 것 같다. 영화 속 주인공은 차분하고 정돈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간다. 그 영화를 본 지 2주 정도 지나간다. 영화의 감동이 승화될 때까지 그 주인공처럼 생활의 기조를 바꾸고 있다. 내 하루에 주어진 일의 경중을 떠나 충실히 이행하고 그 시간의 보상을 퇴근 후 나 혼자만의 시간 동안 채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퇴근 후 열쇠꾸러미와 차키 등을 현관문 옆 찬장에 두는 의식을 통해 사회와 나 혼자 사는 가정의 단절을 둔다. 나도 따라 해보고 있다. 휴대폰과 차키, 지갑 등을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둔다. 그리고 세탁기로 곧장 걸어가 속옷까지 다 벗어던져놓고 샤워를 한 후 나 혼자 있는 집에서 고요한 축복을 즐긴다. 이 편안함이 얼마나 소중한 줄 최근에야 다시 깨달았다. 그 편안함은 내가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 에너지는 다시 내가 사회로 나가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 순환이 습관화되면 삶이 좀 더 재미날 것 같다.
러닝을 하면서 나는 대회는 나가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했다. 비교하지 않고 내가 딛는 발걸음 하나하나 속에 집중하면서 그 하루 동안 내 습관으로 자리 잡은 러닝 자체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내 몸은 충분히 무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대회에 대한 욕심과 계획과 목표가 우선시되면 나는 회복하기 힘든 무리를 한다. 내 러닝 인생을 길게 볼 때 결코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나 스스로 수상은 매일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하기로 했다.
이 사회에 살면서 늘 비교를 당한다. 내가 우위에 선 적보다는 내가 아래에, 기저에 깔린 경험이 많다. 내 현재 위치도 그렇다. 아니면 내가 늘 내 위만 바라봐서 그런 걸까. 모르겠다. 모르겠으니 비교하고 싶지 않고 당하고도 싶지 않다. 그러나 인정할 건 인정하고 그저 살아가는 것이 한 단계 높은 삶의 방식이라는 걸 영화와 삶을 통해 조금씩 배우고 습관화하고 있다. 다만 선하고 친절하고 죄짓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