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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구 Aug 14. 2024

암테크를 아십니까

돈 얘기가 제일 궁금하쥬?

'돈이 다 무슨 소용이냐, 건강이 최고지'

그렇다. 백번 천 번 맞는 말이다.

건강이 최우선이긴 한데 건강도 잃은 판에 돈까지 없으면 정말 서럽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건강은 잃었지만

돈이 들어오면 그나마 위로가 좀 된다는

희한한 사실을 아십니까.

일종의 '금융치료'다.


2018년 10월에 첫 번째 유방암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을 때

같은 입원실에 있던 언니들이 얘기 나누는걸

엿들은 적이 있다.

"나 이번에 암진단금 8천만 원 나온대! 자긴 얼마 나와?"

"진짜? 와~ 좋겠다! 난 옛날에 들어놓은 거 하나 있는데 얼마 안 나와.

이럴 줄 알았으면 보험이나 왕창 들어놓는 건데..."

 

그때만 해도 '이 판국에 무슨 돈 얘기를 하고 있냐'라고 생각하며  

속물스러운 그녀들을 비웃었다.

수술 후 한 달이 지나도록 암진단금 청구를 하지 않자 남편은 왜 보험금 청구안하냐고 독촉을 하였다.


참고로 내 남편은 내가 암 걸리자마자 보험증권 어딨냐고 물어봤었고

안 보인다고 하자 '보맵'을 깔면 보험 든 내역이

다 뜬다고 '친절히' 알려 준 남자다.

여기 속물 하나 추가요.


결혼하기 훨씬 전부터 들어놓은 암보험이 두 개 있었고

그중 한 군데는 보험설계사가 열 번도 넘게 바뀌어서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보험금을 청구하였다.

나머지 한 군데는 20년 가까이 문자로 (모든 고객들에게 자동으로 쏘는 안부 문자)

연락하며 지내는 보험설계사가 있어서 그분께 전화로 암수술받은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그분의 응대가 참으로 기이하였다.

특유의 경상도 아저씨 억양으로

"아, 그래요."

끝이었다.


그러고는 자기가 보험금을 대신 청구해 줄 테니 모든 관련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하였다.

병원에서 진단서, 입퇴원확인서, 세부진료내역서를 떼어다가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고

전화도 안 받고 문자에도 답이 없었다.


뭐지? 많이 바쁘신가? 어디 휴가 가셨나? 그 새 그만두셨나?


별의별 생각을 다 하다가 남편의 연이은 독촉으로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다시 서류를 접수하니

그다음 날 바로 보험금이 나왔다.


5천만 원.

 

두 군데 보험사에서 받은 금액이다.

재건 수술비, 유전자검사 비용, 기타 비용 등을 빼고 나니 3천만 원 정도가 남았다.  

 

"이거 내 목숨값이야. 이 돈 내가 가질래."

했더니 남편이 거기에 자기 지분도 반정도는 들어가 있다고 조곤조곤 덧붙인다.

결혼 전부터 든 보험인데 무슨 지분이 있냐고 했더니

중간중간 육아휴직이다 뭐다 해서 일 안 하고 쉴 때 자기가 준 생활비로 보험료 낸 거 아니냐고 한다.

헐.

맞는 말이긴 한데 더럽고 치사한 기분이 드는 건 내가 문제인 건가.

무슨 요즘 MZ세대들의 반반결혼도 아니고.


결국, 3천만 원으로 사이좋게(?) 각자 주식도 사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이듬해에 아들내미와 둘이서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도 했으니

여기저기 쏠쏠하게 잘 쓴 셈이다.

 

역시, 돈 앞에서 우아를 떨어봤자 좋을 거 없다.

암수술 후 5년간 아무 보험도 들 수 없다는 선고를 받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하는 생각이 고고한 척하던 나라는 인간에게도 스멀스멀 피어올랐고

너무 '정직하게' 오른쪽 가슴 사이즈와 똑같이

재건수술을 해 놓으신 성형외과 교수님께

'기왕 하는 김에 더 크게 해 달라'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에 샤워를 할 때마다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으니 말이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에 죽을 듯이

괴로워하다가도 적지 않은 암진단금으로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을 사서 재미를 본 '암테크'의 달인들이 주변에 몇 명 있다.

그들은 초긍정적인 마인드로

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를 몸소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늘 심각한 나에게 제발 좀

웃으라고, 암진단금으로 맛있는 거

실컷 사 먹고 하고 싶은 거 실컷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혹시 모를 이날을 위해 십몇 년 보험료 낸 거 아니냐고. 그건 그렇죠.


"아, 그래요." 했던 그 보험설계사에게서 한참 후에

전화가 왔었고 왜 보험금 청구를 해버렸냐고

자기가 해주려고 했다는 짜증섞인 변명을 듣고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번호 차단을 해버렸다.

20년 인연이 이렇게 날아가네?


그 뒤 새로운 보험설계사를 알게 되었는데

20대 후반의 그녀는 너무도 싹싹하고 친절하고

똑똑한데 빠릿빠릿하기까지 해서

성공하겠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5년간 보험을 들지 못하는 실속 없는 고객인데도

이런저런 재테크 관련 뉴스, 건강 상식 등을 보내주기도 하고

꼭 완치해서 필드에서 자기랑 골프 한번 치자며

골프화까지 선물해 주는 것이었다.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를 시켜주었다.


그 후 5년이 지나서 보험가입이 가능해져서

4월 초에 치매, 뇌질환 관련 보험을 의리로(?)

하나 들어주었다.

4월 중순에 암이 재발했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고 그때부터 시작된 두통에 암이 뇌로

전이된 것이 아닌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담당주치의에게 머리가 자꾸 아프다고 뇌로 전이된 거 아니냐고 여러 번 물어봐도 그럴 리가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5월 말 경 두 번째 유방암 수술을 한 뒤에도

머리가 계속 아프다고 하자 그제야 의사는 뇌 MRI를 찍어보자 하셨고

이상 소견이 나와서 뇌 CT까지 찍었더니

어이없게도 암이 아니라 '뇌동맥류'가 발견되었다.

신경외과에선 지금 당장 수술하기엔 크기나 위치가 애매하다고 하면서 일 년에 한 번씩 MRI로 추적관찰하자는 소견이 나왔다.


그런데 말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뇌동맥류가 발견되어 심란함의 끝판을 달릴 무렵,

의리로 들어놓았던 치매, 뇌질환 보험에

비파열 뇌동맥류가 포함되어

진단금이 무려 2600만 원이 나오자

암테크의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하지

말입니다.

이 돈으로 주식을 살 것인가

코인을 살 것인가

달러? 엔화? 금?


반반지분을 주장하던 남편도

이번엔 알아서 쓰라며

여행도 다녀오라고 인심을 베푸신다.

고~오맙습니다.


이번에 나온 진단금으로 마이너스통장을

메꾸었다. 에휴.

마이너스 건강도

마통 메우듯이 메워졌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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