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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구 Aug 21. 2024

똑똑! 갱년기를 아십니까

강제 폐경의 부작용

호르몬 양성 유방암이라 에스트로겐 호르몬의 생성을 차단하기 위해

브레트라라는 항호르몬제를 매일 복용하고 있고

졸라덱스라는 항호르몬 주사를 한 달에 한 번씩 배에 맞는데

강제 폐경을 시키는 주사이며

오른쪽 난소 주변, 왼쪽 난소 주변을 번갈아 가며 간호사가 푹 찌른다.


약물이 고체형태인 데다 주삿바늘도 두꺼워서  

많이 아플 거라 하셨고 실제로 악소리 나게 아프다.

한 달에 한 번씩 맞는 이유는 약물이 한 달 동안 서서히 녹아서

체내에 스며들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항호르몬 요법의 장점은, 에스트로겐 호르몬 자체가 나오지 않도록

차단시켜 버리기 때문에 유방암의 재발과 전이를 낮춰준다는 것이다.

단점은, 에스트로겐 호르몬의 고갈로 인한 갱년기 증상이다.


오늘로 주사를 맞은 지 3개월이 되었는데,

갱년기 증상은 매일매일 역대 급을 갱신 중이다.


일단, 온몸의 마디마디가 다 아프다.

손가락, 발가락, 손목, 발목, 무릎, 허벅지, 어깨, 팔, 팔꿈치 등등

아픈 데보다 안 아픈 데를 찾아보는 게 더  빠를듯하다.

마치 하루아침에 40대에서 80대가 된 거 마냥 몸이 노쇠해진 느낌이다.

  

두 번째, 밤에 잠이 안 온다.

족욕, 반신욕, 아로마 마사지, 책 읽기, 어두운 조명 유지하기,

캐모마일차 마시기 등등 별의별 짓을

다 해봐도 잠이 안 온다. 

억지로 자느니 책이나 읽자 싶어 책을 펼치면

눈이 뻑뻑해서 인공눈물 넣다가 날 샐 판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누워서 한숨 푹푹 쉬다가 아침을 맞이한다.


세 번째, 잘 때 몸이 뜨겁다 시리다를 반복한다.   

운 좋게 잠이 온다 싶은 날엔 자다가 흠뻑 적은 뒷목덜미와

뜨거운 등판에 화들짝 깬다.

마치 뜨겁게 달궈진 다리미가 등 밑에 있는 것처럼 뜨겁다.

듀라론 냉감패드와 베개커버를 사서 쓰는데 전혀 효과가 없다.

에어컨을 거의 한 달째 24시간 돌리며 살고 있고

선풍기까지 켜놓고 자는데도 소용이 없다.

땀에 흠뻑 젖었다가 그게 식어서 몸이 시렸다가 다시 땀이 났다가

아주 지랄도 풍년이다.


네 번째, 기억력이 급감한다.

가족들 이름과 얼굴을 안 까먹는 게 용할 정도로

기억력이 저질이 되었다.

내가 한 말, 한 행동을 까먹는 건 예사고

챙겨야 할 준비물도 깜빡 깜빡

병원스케줄, 운동스케줄도 깜빡깜빡

영어 단어, 우리말 단어도 생각이 안 나서

미치고 팔짝 뛰겠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어.., 저..., 머시기, 거시기"가 일상어가 된다.


다섯 번째, 요실금, 변실금, 질건조증이 찾아온다.

케겔운동은 내 인생에 없을 운동일줄로만 알았다.

애를 둘을 낳았어도 케겔운동 필요 없이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오! 마! 이! 갓!!!!

요실금과 변실금이 한꺼번에 찾아와

47세 어른이를 3살 어린이로

만들어 놓았다.

변비, 치질도 없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항문외과라는 곳을 가게 되었고

초음파 검사 결과 항문괄약근이 많이 약해졌다고

의사 선생님이 케겔운동 열심히 하라고 하신다.

하루에 얼마나 하면 되냐고 하니 숨 쉬듯이 하란다.

매일 자기 전에 좌욕도 하란다.

변실금 때문에 방광염도 덩달아 걸려서 무시무시한 고통을 맛보았다.

질건조증 때문에 성욕도 바닥을 치고 있으며

가장 큰 피해자는 남편이다.

그의 한숨소리가 늘어간다.


여섯 번째, 감정변화가 심하다.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별일 아닌 것에 목숨 걸고

동네 쌈닭이라도 될 거처럼 팔을 걷어 부친다.

그러다 쌀국숫집에서 나오는 은은한 재즈 선율에

눈물을 글썽이고

"안정환이 이혜원한테.... 이랬대...." 하면서

유튜브 보면서 혼자 감동 먹어 엉엉 울다가

"너무 예쁜 커플이지 않아?" 하고

남편의 동의를 구했는데 별 반응 없으면 막 화를 낸다.

거의 소시오패스급이다.


일곱 번째, 가슴통증과 소화불량증상이 찾아온다.

명치끝이 자꾸 아파서,

이거 영어사전에도 등재되었다는 'hwa-byung'인가

싶었는데 갱년기 증상 중에 하나란다.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뭘 먹고 나면 체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먹는 거 좋아하는 먹보인데 먹는 즐거움을 빼앗긴 거 같아 우울하다.


여덟 번째, 심장이 이유 없이 두근거린다.

재즈를 들으며 조용히, 편안하게

권남희 작가의 '귀찮지만 행복해볼까' 에세이를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심장이 쿵쾅쿵쾅 난리가 났다.

무슨 호러물을 읽은 것도 아니고

커피 끊은 지도 오래되었고

갑자기 첫사랑을 마주친 것도 아니고

바깥 날씨도 더없이 화창한데

느닷없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것 역시 갱년기 증상 중에 하나라고 하니

'망할 놈의 갱년기!' 소리가 절로 난다.


아홉 번째, 쉽게 피로감을 느끼고 몸에 힘이 없다.

뭘 한 것도 없는데 숨만 쉬어도 힘들다.

예전에 엄마가 "아이고~아이고~" 소리를 달고 사셨던

이유가 이해된다.

왕년에 20,000보를 걸어도 거뜬했는데

캐시워크에 포인트 쌓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어젠 6,000보 걷고 나니 힘들어서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열 번째, 이유 없는 두통에 시달린다.

유방암이 뇌로 전이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통을 심하게 느껴서 뇌 MRI 찍고, 뇌 CT 찍었더니

결국 뇌동맥류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두통이 갱년기 증상 중에 하나라는 설명을

구글에서 발견했다.


'갱년기 증상'을 구글에 치면 여러 가지 증상들이 죽 나오는데

'이명'빼곤 전부 다 나에게 해당되는 것들이었다.

(이제 곧 이명도 생기겠지?)


신체불편감이 생기니 신경외과, 산부인과, 항문외과, 한의원, 내과, 안과 등

병원투어가 시작되었고 하루 두세 군데의 병원을 다녀오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복용해야 할 약의 종류도 가짓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약만 먹어도 배부를 지경이다.


하루 한번 또는 두 번 또는 세 번 약 먹고,

좌욕, 족욕 또는 반신욕 하고

틈틈이 케겔운동하고,

유산소, 근력 운동하고

병원 다녀오고

파라핀 베스하고

손가락 발가락 관절 운동하고

책 읽고 브런치 쓰고

림프 마사지하고

장보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오로지 내가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가득 찬

날들에 지치고 회의감이 들 무렵

김혜남 작가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을

다시 읽었다.

23년째 파킨슨병이라는 무시무시한 병에 걸려서

하루 단 세 시간밖에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감사를 느끼고

10권이 넘는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인생의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 그녀를 보며

다시 한번 숙연해졌다.


파킨슨병에 비하면

유방암에 갱년기 증상은 정말이지

입닥치고 있어야 하는 정도다.

나의 이런 징징거림을 그분이 읽는다면

"풋. 귀엽네"하고 웃으실 것만 같다.


그분 만큼의 담대함은 없을지라도

그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는 나를 잃지 말아야겠다.


"버틴다는 것은 내적으로는 들끓어 오르는

분노나 모멸감, 부당함 등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외부에서 주어진 기대 행동에 나를 맞추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하는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힘든 과정이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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