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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구 Apr 23. 2024

공감능력 부재남

없으면 '척'이라도 해라

“보호자는 없으세요?”

“네… 저 혼자 왔어요.”

“아, 네… 그럼 여기 환자분이 대신 사인하세요.”

간호사의 당황한 표정을 마주한 채로 나는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본인란, 보호자란 모두에.

간호사는 사지가 멀쩡한 나를 휠체어에 태워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실 앞 복도에는 수술환자와 그의 보호자들로 북적북적했다.

그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고 “아이고…쯧쯧…” 하며 혀를 차는 것만 같았다. 수술실은 추웠다. 너무 추웠다.

휠체어에서 내려 수술 침대에 누웠는데 레지던트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내 팔을 잡으며 “잘 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며 따스한 위로를 건넸다.

그때까지 아무렇지도 않았던 나는 갑자기 울컥해져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른 아침, 보호자도 없이 홀로 수술을 받으러 가는 내 기분은 정말 거지 같았다.

그 의사가 다시 “편안하게 해 드릴게요.” 하더니 마취제를 넣었다. 숨 한번 크게 들이쉬고 나니 이미 수술은 끝나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의사에게 물어본 말은, “유두를 잘라냈나요?”였다.

수술 직전에, 의사는 발견된 암세포가 유두 근처라 어쩌면 유두를 잘라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엔 납작하고 평평한 유두 없는 가슴 위로 10센티 정도의 시뻘건 칼자국이 가로로 새겨진 어느 영화 속 여배우의 가슴이 떠올랐다. 끔찍했다.

천만다행으로, 열어보니 암이 유두까지 전이되진 않아서 가슴 근육만 다 도려냈고 그 부위엔 재건 수술을 했다고 한다.

전이된 곳이 없어서 방사선 치료도 필요 없고 5년간 타목시펜이라는 약만 먹으면 된다고 하셨다. 다행히 유방암 1기였다.


수술 열흘 전, 남편에게 조직검사결과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고 수술해야 한다고 알렸다.

“아, 그래…” 짧은 대답과 함께 조용히 소파에 앉아 한참 아무 말도 안 하던 그는 “당신 암 보험 증서 어디 있지?” 하더니 보험 증서가 안 보인다며 보맵이라는 앱을 깔아서 확인해 보란다.

탄식과 안타까움과 위로와 따뜻한 포옹을 바랐던 나는 보험회사 직원처럼 굴고 있는 그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수술 날짜에 맞춰 월차를 내라고 했더니 자기가 월차를 쓰면 다른 여직원 하나가 자기 일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미안해서 그럴 수 없단다.


하루 월차 내는 것도 안돼? 반차도 안돼?

나 혼자 수술받으라고? 보호자도 없이?

쌍꺼풀 수술도 아니고 암 수술인데?


나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다다다다 쏘아붙였다.

당신이 나라를 구하러 독립운동을 하러 간다고 하면 이해나 가지 와이프가 암 수술받으러 가는데 여직원한테 미안해서 월차를 못 낸다는 게 말이 되냐, 양해를 구하고 나중에 커피라도 한잔 사주면 될 일 아니냐, 그 정도는 누구나 다 이해해 줄 거라고 애걸을 하다시피 말했는데도 그는 안 된단다.


그 당시에 가까이 사시는 시어머니는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하신 상태였고, 친정 부모님은 차사고가 크게 나 뇌수술을 받고 누워있는 아들 간병하느라 넋이 반쯤 나간 상태 셨기 때문에 내 상황을 알릴 수가 없었다.

의지할 사람은 남편밖에 없었는데, 당연히 월차 내고 내 곁에 있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의 말도 안 되는 거절 사유를 듣고 나니 이런 남자와 평생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병원에선, 암 수술받은 환자에게 으레 정신과 상담을 권한다며 한번 받아보라며 예약을 잡아주었고, ‘난 괜찮은데…’ 하면서 마지못해 상담에 임했다.

그러나 나는 괜찮지 않았다.

“ooo 님, 안녕하세요. 괜찮으세요?” 하고 온화하게 물어봐 주시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 앞에서 그만 울음이 콱 터져 나왔다.

그 선생님의 따뜻한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온화한 표정 때문이었을까, 남편에게서 받지 못한 위로 한마디 때문이었을까 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울고 또 울었다.


5인실에 입원을 했었는데 모든 환자들이 다 남편 혹은 보호자가 있었고 나만 간병인과 함께였다.

그 상황이 너무 창피하고 속상했다. 일주일이 넘는 입원 기간 동안 남편은 퇴근 후 잠깐 들렀다 갈 뿐 자기가 병원에 있어봤자 의사도 아니고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냐며 코빼기만 보여주고 가버리기 일쑤였다.

그 와중에 하루 10만 원에 달하는 간병인 고용비를 생색내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

퇴원 후, 몸도 마음도 부부 사이도 만신창이가 된 거 같아서 개인 의사가 하는 정신과에서 함께 상담을 받았다.

중요한 순간에, 공감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순간에 남편의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며 그 의사는 남편을 나무라듯 말했고 이제라도 부인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덕분에 내 마음은 위로가 되었으나 남편은 집에 와서 그 의사의 말투와 눈빛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그 새끼’라고 불렀다.


이렇게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남자인 줄 몰랐다. 공감 능력이 없으면 있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게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의 도리 이거늘, 남편은 ‘척’ 조차도 할 줄 몰랐다. 신기한 점은, 회사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선 잘 베풀고 착한 사람으로 통하고 여직원에게 단 하루 일을 전가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신사적인 사람인데 왜 유독 나만 남편의 그런 성격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가 이다.


남편의 논리는 이러했다.

자기도 허리디스크 수술했을 때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입. 퇴원했으며 (나한테도, 부모님께도 오지 말라고 했다) 굳이 그런 일로 누군가를 부르고 귀찮게 할 필요가 없단다.

신혼 때 내가 자고 있는 동안 자기 혼자 식은땀을 흘리며 조용히 응급실에 다녀온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나보고 수술할 때 없었다는 이유로 우리 관계가 끝난 것처럼 굴지 말라고 했다.

모든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겠다던 남자, 행복하게 해 주겠다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가버리고 별거 아닌 일로 여러 사람 귀찮게 만들지 말자는 효율성의 논리만 들이대는 남자만 남았다.


네이버 유방암카페에 들어가 보니 유방암 수술후유증이 꽤 많이 올라와 있었으며 그중에 적지 않은 후유증이 남편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고 지쳐있을 아내를 어루만져 주지 못하는 남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상황이 좋을 땐 사이가 좋다가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균열이 가는 부부관계가 많다는 뜻일 게다.  


그 뒤로도 우린 여러 차례 부부상담을 받았고 그가 나쁜 남자라서가 아니라 성격, 자라온 환경,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 등등으로 인해 서로 많은 부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앙금이 말끔히 사라진 건 아니다.

5년 반이 지난 지금도 왼쪽 가슴을 볼 때면 그때가 떠올라 가슴이 시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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