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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구 May 02. 2024

유방암 전조증상 7가지

'촉'을 무시하지 말자

인터넷이나 유방암 관련 책자에 보면 유방암 전조증상으로 멍울이 만져진다든지 통증이 있다든지 피가 섞인 분비물이 나온다든지 이런 내용이 가장 먼저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나의 대표적 전조증상은 '우울감'이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2018년 9월. 대학원 박사과정 3학기였다. 원래대로라면 새 학기에 기분이 좋고 설레어야 하는데 개강 후 2주 동안 전혀 설레지 않았고 우울했다. 그냥 기분이 안 좋고 몸이 쳐지는 정도가 아니라 마구마구 우울해서 누군가가 '툭' 치기만 해도 눈물이 와르르 쏟아질 것처럼 우울했다. 게다가 소화가 너무너무 안 되는 거였다. 대학원 다닐 때 늘 싸갖고 다니던 과일을 쉬는 시간에 먹었는데 포도 한 알 씹는 게 무슨 돌멩이 씹어 삼키는 것처럼 힘들었다. 순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왜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머릿속에서 '징~'하고 종이 울리는듯한 느낌. 수업이 끝나자마자 6개월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던 내과로 달려가 유방초음파, 자궁검진을 다시 해달라고 요청했다. 의사는 6개월 만에 또 온걸 의아해했지만 일단 유방초음파부터 보자고 하셨고 결국 뭔가 모양이 안 좋은 혹이 발견되었다며 큰 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셨다. 조직검사결과 유방암 1기였고 그 해 10월 1일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겨울부터 시작된 우울감에서 벗어나보고자 베트남 여행도 다녀오고 지인의 권유로 골프도 시작했다. 다시 암이 재발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계절성 우울증', '갱년기' 이런 단어들만 검색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 4월 정기검진에서 수술했던 가슴에서 또 혹이 발견된 것이다. 멍울이 만져진다거나 통증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2018년 수술 때 같은 가슴에서 재발할 위험성을 없애고자 전절제를 했었는데 재건수술 때 들어간 보형물 바로 끝 가장자리에 혹이 또 생겨난 것이다. 세포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나왔다고 담당의사는 수술로 없애야 한다고 했다. 4월 4일 날 꾸었던 문신꿈도 그렇고 그전부터 시작된 우울감도 그렇고 모든 정황들이 암이 다시 오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두 번째 전조증상은 '단 게 미치도록 당긴다'였다. 

평소 탄산음료나 과자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이상하리만치 과자, 빵, 쿠키, 에이드, 초콜릿 같은 것들이 당겼다. 커피도 항상 카페라테나 바닐라라테만 마셨다. 어느 순간부터 아메리카노는 밍밍하고 담뱃재에 물 탄 맛이 나서 공짜로 줘도 싫었다. 남편이 왜 이렇게 간식을 많이 먹냐고 핀잔을 주기 시작했고, 나는 단것을 먹는다는 죄책감에 온갖 운동으로 면죄부를 주었다. 암세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당'이라고 한다. 그동안 나는 단것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암세포들에게 먹이를 열심히 던져준 셈이다. 


세 번째 전조증상은 '고기가 엄청 당긴다'였다. 특히 소고기가. 

소고기 패티 두 겹 들어간 햄버거를 먹기 위해 버거킹 할인 행사를 수시로 체크했었고, 십 년 넘게 들락거린 마장동 한우고깃집을 더 자주 갔으며, 동네에 고깃집이 새로 생기면 꼭 가서 맛을 보았다. 아주버님이 사업을 하셔서 명절 때마다 소고기 선물이 들어왔는데 자기네는 지겹다며 우리에게 주셨고 나는 감사히 받아서 열심히 구워 먹었다. 그렇게 소고기에 탐닉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정기검진에서 철분결핍으로 철분제를 6개월씩 두 번이나 처방받아먹어야 했다. 교수님조차도 짚이는 게 없으셨는지, "왜 자꾸 빈혈이 생기지?" "어디선가 새는 거 같은데?" 하셨고 나는 그 당시 생리량이 너무 많아 외출이 불가능할 정도였기 때문에 그저 생리량이 많아서 빈혈이 온 줄로만 생각했다. 알고 보니 암세포가 '당'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철분'이라고 한다. 세포증식을 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철분을 끌어다 쓰고 있었던 것이다. 


네 번째 전조증상은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이 미친 듯이 당긴다'였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우유를 좋아했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다른 아이들은 콜라,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나 주스류를 마셨는데 나는 오로지 우유만 마셨다. 그 당시에 나는 물을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개념이 장착되어 있지 않았고 목이 마르면 우유를 사서 마셨다. 오로지 흰 우유만. 

그랬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우유를 즐겨마셨고 단 하루도 냉장고에 우유가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샌드위치, 토스트, 햄버거, 볶음밥, 닭볶음탕에 꼭 치즈를 넣어서 먹어야 풍미와 간지가 살아났다. 건강을 위해 그릭요구르트를 사다 먹었으며 급기야 요구르트, 치즈 제조기까지 사서 만들어 먹을 정도였다. 아이스크림도 항상 유기농 우유로 만든 상하목장 소프트콘만 먹었다. 내 몸이 우유와 유제품을 원한다고 느꼈고 그게 건강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더불어 단백질과 칼슘을 우유와 치즈, 요구르트를 통해 충분히 공급받고 있다고 생각... 착각했다. 

우유에는 IGF-1이라는 인슐린유사 성장인자가 들어있다. 이것은 세포의 증식과 분화에 관여하는데 암세포를 자극하고 성장시킨다. 또한, 우유에는 유당이 들어있어 이것 또한 암세포의 먹이가 된다. 게다가 우유를 농축한 요구르트나 우유를 발효한 치즈에 IGF-1 성장호르몬과 당이 농축되어 있으니 암세포가 얼마나 좋아했으랴! 그것도 모르고 아둔했던 나는 치즈를 곁들인 각종 샐러드와 유기농 우유, 그릭요구르트를 만들어 먹는 건강하고 세련된 여성이라 자뻑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다섯 번째 전조증상은 '불면'이었다. 

커피를 오전에 딱 한잔만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예전에는 커피를 사발로 들이켜도 머리만 대면 잠이 왔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잠이 없어지는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낮에는 햇빛으로 인해 코티솔 수치가 올라가고 멜라토닌 수치가 떨어져서 사람이 활동을 하게 되고 밤에는 그 수치가 역전되어 잠이 오는 것이 정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유독 많은 암환자들의 특징이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바로 이 멜라토닌 분비가 원활하지 않아서라고 한다. 호르몬 양성 유방암의 특징이 몸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다양한 호르몬의 균형이 깨져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몸은 피곤한데 밤에 자려고 누우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심심하니까 휴대폰을 보게 되고 휴대폰의 블루라이트가 다시 숙면을 방해하는 악순환이 지속되었다. '잠도 안 오는데 잘됐네. 이 참에 책이나 실컷 읽어야지.' 하면서 밤새워 스릴러 소설을 읽기도 하였다. 한동안 피터 스완슨의 소설에 빠져 '죽여 마땅한 사람들', '살려 마땅한 사람들',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으로 시작해서 집에 10년 넘게 잠자고 있던 로빈쿡, 마이클 크라이튼의 의학소설까지 다 섭렵해 버렸다. 


여섯 번째 전조증상은 '추위'였다. 

추워도 너무 추웠다. 추워서 껴입으면 땀이 났다. 그래서 '갱년긴가?' 하며 한동안 열심히 갱년기만 검색했더랬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엔 목욕탕이 있었다. 수영보다 탕에 들어가 뜨끈뜨끈하게 몸을 지지고 나오는 게 그렇게 좋았다. 자유수영을 하는 날은 수영시간보다 탕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더 길 정도였다. 그러나 손가락이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몸을 지지고 나와도 이내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밤에 잘 때 전기장판을 켜고 잤으며 수시로 허브찜질팩을 어깨에 두르고 있어야 했다.  남편이 할머니 같다고 놀려도 조끼패딩을 입고 수면바지에 수면양말을 신어야 살 것 같았다. 암세포는 고온을 싫어한다고 한다. 저체온이 되어야 암세포가 활동하기 좋으며 체온이 36.5도 이하로 자꾸 떨어진다는 것은 주의해야 할 신호인 것이다.  


마지막 전조증상은 '각종 염증'이었다. 

체온 조절에 조금만 실패해도 감기에 걸렸으며 비염을 달고 살았고 입안이 자주 헐었으며 코로나에 걸렸고 대상포진도 걸렸다. 지루성 피부염에 지루 각화증까지 생겼다. 내 몸이 산성화 되고 있다는 시그널이었고 각종 염증이 포진해 있으며 면역력이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경고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었다. 암세포가 자라기 좋은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염증을 잡기 위해 채식을 하고 유제품을 끊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병원에서 처방받은 항생제와 온갖 약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염증에 좋다는 노니, 면역력에 좋다는 건강보조식품만 사들이고 있었다. 몸에 염증성 반응이 자꾸 나타난다면 그저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며 보양식을 먹으러 다닐게 아니라 혹시 암세포가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드시 체크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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