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는 여자.
세련된 도시여자의 느낌이 풍긴다. 특히,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세련된 옷차림으로 당당하게 출근하는 여자의 모습은 성공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영화에 나오는 앤 해서웨이처럼 나도 그렇게 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턱을 치켜든 채 거리를 활보할 때가 있었더랬지.
2015년, 오랜 열망이었던 영어교육학 석사를 시작하던 해, 믹스커피만 마시던 촌스런 여자가 원두커피의 세계에 입문했고 교내는 물론 학교 밖 커피숍이란 커피숍은 죄다 순례하다시피 커피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대학원을 들락거릴 때의 성공한 듯한 그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수업이 재미있었고 학교 교정이 아름다웠으며 교수님들, 동기들 모두 사랑스러웠다. 그러다 점점 해내야 하는 공부가 많아지고 개별 과제, 조별 과제, 학교 발표, 학회 발표, 각종 소논문 제출에, 대학 출강까지 나가느라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으며, 둘째가 네 살밖에 안된 터라 시도 때도 없이 아프고 대학병원 입원만 5번을 했더랬다. 정신줄을 오로지 커피로 붙들어 맬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커피를 샷 추가해서 사발로 드링킹을 해도 머리만 대면 잠이 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라떼에 이끌리기 시작했고 카페 라떼, 바닐라 라떼, 카페 모카 등등 온갖 라떼 종류를 섭렵하기에 이르렀다. 워낙 평소에 우유를 좋아하긴 했지만 커피와 우유를 같이 마시기 시작한 건 석사 3학기 무렵부터였던 거 같다. 시간에 쫓기기도 했고 커피만 마시면 속 쓰릴 테니 우유와 같이 마시면 더 좋겠지라고 생각하며 한 끼를 라떼로 때우기 일쑤였다. 그 간편함과 고소함, 달달함에 반해 거의 매일 한 끼는 라떼 종류로 때웠고 밥을 챙겨 먹는 것보다 속이 덜 부대끼고 메뉴 고민 안 해도 되고 누구랑 같이 먹을지 고민 안 해도 되고 시간이 절약되었으며 도서관 반입이 가능한 음료였기에 이만한 한 끼 식품이 없다며 극찬을 하며 애용했었다. '건강 식단'이라는 단어는 내 사전에 아예 없었으며 필라테스와 스피닝을 간간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로 충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영어교육학 석. 박사만 따면 되는 줄 알았지 내가 먹는 음식에 대한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다. 커피가 얼마나 나쁜지, 우유가 왜 안 좋은지 그 둘의 조합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지 못했고 알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일단 커피원두는 재배할 때 유기농이 아닌 이상 농약을 뿌릴 수밖에 없으며, 수입할 때 온갖 방부제를 뿌려서 썩는 걸 방지한다고 한다. 오랜 유통과정과 보관과정 때문에 곰팡이 독소가 생길 수밖에 없으며 모든 종류의 수입 곡류에는 곰팡이 독소가 있다고 곡물수입업자인 남편의 친구가 일러주기도 했다. 또한, 원두를 볶는 과정에서 아크릴아마이드라는 발암 물질이 생성된다고 한다. 아무리 로스팅을 약하게 한다고 해도 발암 물질이 생성될 수밖에 없으며 고온에서 다크로스팅을 할수록 더 심해진다고 한다. 그 이후에 바로 먹는 것도 아니고 공기와 접촉하면서 산화될 수밖에 없다. 스타벅스원두는 미국에서부터 로스팅을 해서 들여오기 때문에 이미 산화가 시작된 상태에서 국내로 들어온다고 한다. 어쩐지... O마트에서 산 스타벅스 원두 1.13kg짜리를 뜯었을 때 알들이 뭉쳐있었고 살짝 쩐내 같은 게 느껴졌으나 원두는 원래 그려려니하고 넘어간 적이 많았다. 심지어 동네 커피숍에서 원두를 구입할 때도 바로 냉동실에 넣지 말고 상온에 두어 '숙성'을 시키라고 했다. 그건 엄밀히 말해 '숙성'이 아니라 '산화'였다.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커피에 들어있는 폴리페놀이라는 항산화 성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커피는 몸에 좋다고 여기고 보약처럼 매일 음복하는 음료수가 되어버렸다. 나 역시 카페인 음료 중에서 커피만 한 게 없다고 여기며 하루에 몇 잔씩 들이켰으며 불쌍한 내 부신은 열심히 코티솔 호르몬을 만들어 나를 각성시키기 위해 열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코티솔 호르몬 덕분에 나는 깨어 있을 수 있었으나 내 몸의 호르몬 체계는 망가졌고 결국 유방암에 걸리게 된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 1~2년 동안에는 잠이 잘 안 와서 저녁에 갑자기 커피가 당기면 디카페인 원두를 내려 마시곤 하였으나 커피에서 카페인을 뽑아낼 때 석유계열의 용매제를 써서 추출하느라 디카페인 원두는 화학 물질 범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디카페인 커피를 끊었다. 게다가 디카페인 커피가 등장한 배경에는 커피를 떠나간 자들을 붙잡기 위한 마케팅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게 되자 더욱더 똑똑한 소비자가 되어야겠다는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아무리 인터넷, 유튜브, 뉴스에서 커피의 효용성에 대해 떠들어대도 '응~ 됐거든'하며 장장 25년간 마셔댄 커피를 4월 20일부로 딱 끊었고 오늘로 20일째다. 당근에 커피머신도 팔아버렸다.
우유... 애증의 우유...
제인 플랜트의 '여자가 유유를 끊어야 하는 이유'라는 책을 보면 우유 속에 들어있는 IGF-1 (인슐린유사 성장인자)이 얼마나 여자의 호르몬을 교란시키는 물질인지 알게 된다. 특히, IGF-1은 세포주기 및 암을 일으키는 '암 유전자'에 변화를 초래하고 아주 적은 양으로도 유방암세포 증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녀는 7년간 5번이나 유방암에 걸렸고 마침내 원인이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에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조남주 번역가도 이 책을 번역하면서 좋아하던 카페라떼를 끊고 유제품 없는 식생활을 실천 중이라고 한다.
사실 전 세계 성인 인구의 70퍼센트 이상이 유당 소화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우유를 팔고자 하는 대기업의 강력한 의지로 소화가 잘 되는 락토프리 우유까지 출시되고 있는 현실이다. 여전히 우유는 완전식품이라 칭송을 받으며 성장기 어린아이서부터 골다공증 위험이 있는 노인까지 꼭 챙겨 마셔야 하는 건강음료로 자리매김되었다.
그렇다. 우유는 완전하다. 송아지에게는.
하지만 인간에게는 문제가 달라진다. 인간은 송아지처럼 매일 1kg씩 체중을 늘려야 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송아지의 성장에 필요한 각종 생화학 물질이 들어있는 소젖을, 모유를 끊은 이후의 인간들이 굳이 마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중국인들은 인간이 소젖을 먹는 걸 굉장히 기이하게 여기며 일평생 거의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세계에서 유방암 발병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중국, 태국이며 영국이 유방암 세계 1위인데, 영국은 유제품의 섭취량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최근 20년간 유방암 발병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데 중국에서 '부자 사모님병'이라고 불릴만한 이 질병이 서구화된 식단과 더불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
그렇네. 나 부자 사모님병 걸린 거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나는 우유의 달달하면서 고소한 맛을 좋아한다. 우유 냄새도 좋아한다. 그 하얀 '우윳빛'은 보는 순간부터 내 기분을 들뜨게 한다. 커피, 홍차, 말차와도 더없이 잘 어우러지며 구운 고구마, 빵, 비스킷, 쿠키, 떡에 이르기까지 우유 없이 먹을 수 있는 간식은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커피와 우유의 만남인 카페라떼는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소확행이었는데 호르몬 양성 유방암 환자에게는 최악의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유방암이 다시 재발해서는 안된다는 단호한 심정으로 커피를 끊고 우유도 끊고 커피머신도 팔아치웠다. 이제 카페라떼를 대신할 새로운 음료를 찾아 이것저것 다양한 차 종류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러다 5월 7일, LAM Test 결과가 나왔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와서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