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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구 May 22. 2024

뭐든지 최고급으로

유기농, 친환경, 무항생제, 무농약 집착증

LAM Test도 했겠다, 유방암 관련된 책과 유튜브도 엄청 찾아보고, 더 이상의 암 재발은 없다는 각오가 생기니 제일 큰 변화는 장 볼 때 좋은 식자재를 고르게 된다는 것이다. 거의 집착하게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문제 이긴 하다. 초록마을, 한살림, 이마트 자연주의를 번갈아 가며 유기농, 친환경, 무항생제, 무농약, 동물복지, HACCP, GAP, GMP 등이 붙은 식재료만 산다.   


두부, 쌈장, 된장을 살 때도 무조건 국산 두부 100% 인지 확인하고, 계란은 무조건 유정란에 난각번호 1번만 사며, 과자나 통조림, 유제품 코너는 아예 얼씬도 하지 않는다. 예전엔 가성비 좋은 수입 냉동 블루베리를 샀다면 이젠 무조건 국산 생블루베리만 고집하는 형국이 되었다. 비싸기 때문에 많이 못 사지만 예전처럼 냉장고에서 썩혀서 버리는 일 없이 악착같이 다 먹어 없앤다. 돈이 덜 들지는 않지만 음식물 쓰레기는 확실히 줄었다. 


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셀러리, 케일, 근대 같은 쓴맛 나는 채소들을 돈 주고 사 먹기 시작했다. 셀러리는 갈아먹고 케일은 쪄서 쌈 싸 먹고 근대는 그냥 생으로 씹어먹는다. 가끔은 이 맛없는 풀떼기들을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는 내 모습에 현타가 올 때도 있지만 '맛있다. 맛있다. 얘네는 맛있다.' 스스로 세뇌를 하며 뭔가를 먹을 수 있는 상태임에 감사하기로 했다.


튼튼한 세포막을 만들기 위해선 기름이 아주 중요하다고 해서, 재래시장에서 사다 먹던 중국산 참기름, 인도산 들기름 다 갖다 버리고 국내산 냉압착 유기농 들기름, 참기름으로 다 바꿨다. 냉압착 들기름의 맛과 향이 내가 기존에 알던 맛과 향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배신감이란. 


구이나 볶음을 할 땐 아보카도유, 샐러드용엔 올리브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엑스트라 버진 유기농으로만 쓴다. 냉장고에 있던 온갖 유통기한 지난 소스류도 다 갖다 버리고 냉동실에 몇 년씩 자리 잡고 있던 해외직구로 값싸게 구매했다고 좋아했던 곰팡이 독소 득실득실한 수입 곡류, 견과류와 더불어 나의 한심함도 다 같이 폐기 처분했다. 


암환자는 소금도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고 미네랄이 가득한 죽염으로 먹어야 한다고 해서 집에 히말라야 핑크솔트니 함초소금이니 천일염이니 선물 받은 소금이 죽을 때까지 먹어도 없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이 있지만 죽염을 또 샀다. 몸의 나트륨 농도가 0.9가 이상적이라 하여 디지털 염도계를 사서 이틀에 한번 꼴로 아침 소변을 받아 체크하고 있다. 시어머니가 담가 주신 김치가 맛있어서 매 끼니마다 먹고 있었는데 염도계에 '측정 불가' 사인이 뜰 정도로 염도가 너무 높아서 이걸 물에 씻어서 먹어야 하나 어째야 하나 고민 중이다.   


발암 논란이 많은 염색약도 초록마을에서 구입한 것만 쓰고 되도록 염색 횟수를 줄여나갈 계획이다. 60대가 넘으면 흰머리로 그냥 살 생각인데 주변 사람들이 염색 안 하고 사는 사람들을 가만 두지 않는다는 말들이 많아서 유리 같은 내 멘털로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화장품은 아직 유기농이나 천연화장품으로 바꾸지 못했다. 피부가 얇고 예민해서 허브로 만든 유기농 화장품이 오히려 안 맞기도 하고 여러 화장품 유목민을 거쳐 정착한 아이템들이 대부분이라 일단 발암성분이 많이 포함되었는지 정도만 확인하고 그냥 쓰고 있다. 대신, 향수나 디퓨저 사용을 지양하고 퍼퓸 샴푸, 바디 워시, 핸드 워시, 액체형 설거지 세제 대신 고체형 수제 비누로 바꿔 쓰고 있다. 빨래를 할 때도 다우니 섬유 유연제를 한가득 때려 붓던 사람이었는데 이젠 식초로 대신하고 있으며 건조기 시트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가끔씩, 지나가는 낯선 이에게서 다우니 향이 나면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게 된다. 내 사랑 다우니, 이젠 안녕.


예전엔 입이 심심하면 무조건 과자나 빵을 먹었다. 커피를 마실 때도 꼭 케이크를 곁들여 먹었다. 이젠 견과류, 찐 고구마, 당근 스틱, 현미 누룽지, 녹차, 둥굴레차, 캐모마일차 등으로 대체한다. 커피를 끊었더니 카페 갈 일이 없어졌고 맛도 없고 미세플라스틱 나오는 티백차 마시자고 카페에 죽치고 앉아 5,000원을 쓰자니 너무 돈 아까워서 동네 친구들을 집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동안 사서 쟁여두었던 찻잔과 접시들을 가지고 소꿉놀이 해보니 새삼 재밌다. 


통영에서 멍게 양식업을 하고 있는 남편 친구가 있는데 나의 유방암 재발 소식을 듣고는 멍게, 장어, 전복 등 몸에 좋다는 해산물들을 공수해서 택배로 보내주었다. 가끔 제주도까지 배를 몰고 나가 갈치 낚시를 한다며 갈치 낚으면 한 박스 보내주겠단다. 겨울엔 굴도 보내줄 테니 오로지 몸조리에 힘쓰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통영에서 군대 생활을 했던 남편을 면회 갈 때마다 상근예비역이었던 그는 1톤 트럭으로 통영터미널에서 군대 초소까지 나를 몇 번이나 실어다 주었다. "행수님~ 어서 오이소!" 하며 늘 반갑게 맞아주었던 그와의 인연이 어느새 25년 째다. 고맙다. 눈물 난다. 살고 싶다. 어떻게든 열심히 식단 관리 잘해서 건강한 몸으로 보답하고 싶다. 


남편의 사고뭉치 사촌동생도 나의 암재발 소식을 듣고는 그 비싸다는 갈색병 100ml 짜리와 아이크림을 선물로 보내 주며 쾌차하길 바란다고 했다. 2018년에 처음 암이 발병했을 때, 수술실에 오지도 않았던 남편은 알고 보니 그날 점심을 사촌동생과 함께 먹었고 "나 좀 있다 수술한대. 지금이라도 오면 안 돼?"라고 전화했을 때 이미 식사 메뉴를 주문한 상태이고 마포에서 차를 몰고 건대병원까지 가려면 최소한 40분은 걸린다며 못 온다고 했었다. 그때 내 암소식을 처음 접한 사촌동생은 같이 점심을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죄인이 된 듯한 느낌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한다. 그래 그래 다 용서해 줄게. 

비싼 화장품 받았더니 '도련님~감사합니다^^' 메시지가 절로 써진다. 

 

다음 주 수요일이 암수술 날인데 아직 시어머니께도 친정 부모님께도 알리지 않은 상태다. 

시어머니는 아시자마자 분명히 이것저것 건강식을 만들어 한달음에 달려오실 테고 '어쩌다 또 걸렸냐. 내 기도하마'하시며 눈물을 흘리실게 분명하다. 남편의 공감능력이 어머니를 닳지 않은 게 한탄스럽다. 그래도 두 번이나 마누라가 암에 걸리자 이번엔 좀 심각하다. 수술날에 맞춰 미리 반차도 내고 (월차 아님) 피곤해하는 나를 위해 설거지도 해주며 (정확히는 식기세척기 돌림) 처음으로 유방외과에 같이 동행해 주기도 했다 (그것도 반차씩이나 내고). 이혼하는 한이 있어도 죽어도 못 끊는다던 술도 일주일에 1회로 줄였다.


이 인간이 드디어 철이 들었나 죽을 때가 다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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