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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구 Jun 05. 2024

남편이 제일 스트레스인데요

병 주고 약 주냐


2024년 5월 29일, 두 번째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 이 날 브런치 발행을 못했습니다. 기다리신 분들 죄송합니다)

2018년 10월 1일, 왼쪽 가슴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었는데 이번에 재발한 것이다.


첫 번째 암수술할 땐 퇴근 후 저녁에나 병원에 들렀던 남편이 이번엔 자진해서 반차를 쓰더니 다시 월차로 바꾸었다. 내가 "웬일이야?" 하고 물을 정도였다. 그에게도 뭔가 심적인 변화가 있었던 건지 주변 사람들이 뭐라 한 건지는 모르겠다. 수술 하루 전, 혼자서 이것저것 입원 준비물을 챙겨 3시 반쯤 건대병원에 입원을 했고 물건 정리가 다 끝나고 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예고도 없이 쓰윽 들어오셨다.


반갑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애비가 수술날 같이 있겠대?" 하고 화난 듯이 물으셨다. 그렇다고 했더니 "지난번 수술 때는 왜 안 왔대?" 하시길래 회사 동료에게 폐 끼치기 싫어서 간병인 구해주고 안 온 거라 말씀드렸다. "에휴... 회사 일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대?" 한숨을 쉬며 말씀하시길래 갑자기 그때의 감정이 올라오며 "그러게요. 마누라가 암에 걸렸는데 오지도 않고 승철 도련님이랑 점심 먹었더라고요!" 하면서 고자질을 해댔다.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의 고백을 들었다. 몇 년 전, 양쪽 눈 다 백내장에 걸려 수술을 앞두고 아버님께 수술날 꼭 같이 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단다. 그런데 갑자기 당일날 점심 약속이 생겼다며 어머니 혼자 수술받고 오라고 하셔서 너무 서운해서 많이 우셨다고 한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과 점심을 먹었는지 추후에 알고 보니 그냥 늘 만나는 동네 친구였단다. 부전자전이다. 남자는 늙어 죽을 때까지 철이 안 든다며 여자랑은 뇌구조가 다르다며 큰 기대 없이 사는 게 좋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할 말이 한 바가지였으나 꾹 삼켰다. 애비에게 전화를 하시더니, "애미한테 잘해! 서운하게 하지 말고!" 마치 옆에 있는 듯이 눈을 흘기며 호통치듯이 말씀하셨다. 역시 어머니는 뭘 좀 아시는 신세대 시어머니시다.  


수술이 다음날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있을 건데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간호사의 안내에 남편에게 적어도 8시까지는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랬더니 요즘 자기가 운동을 통 못했다며 스포애니 가서 운동 좀 하고 자전거 타고 8시까지 오겠단다. 그래... 너는 이 와중에 니 건강 챙긴다고 운동을 하는구나... 참 바람직한 건데 왜 아니꼽지?


다행히 남편은 수술전에 도착했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 애써 밝은 척 손을 흔들며 "나 잘하고 올게~" 했는데 남편은 멀뚱멀뚱 눈만 껌뻑껌뻑하며 서 있었다. 순식간에 수술실 문이 닫혔다. 손도 잡아주지 않았고 안아주지도 않았다. 간호사가 이름 확인하고 어쩌고 저쩌고 설명을 하는 동안 소리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다행히 마스크가 눈물을 흡수해 주고 있었지만 벌건 눈을 하고 울먹이며 대답하는 나를 분눈치챘을 간호사가 다행히 모른 척해주었다. 


지난번에는 숨 한번 크게 들이쉬자 마취가 바로 됐었는데 이번엔 여덟 번째 들숨에 의식을 잃었다. 전신마취되는 그 순간의 느낌은 참으로 신기하면서 꺼림칙하다. 혹시라도 이게 마지막 들숨이 될까 봐.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회복실에 있는 동안 미리 신청해 둔 전신 핫팩이 제공되어 지난번 수술 때보다는 훨씬 덜 추웠다. 그래도 혹시 몰라 집에서 챙겨 온 허브찜질팩을 데워서 복부에 올려놓았는데 손, 발이 너무 시려 더 갖고 올걸 하는 후회를 한 열 번쯤 되뇌고 있을 때, 남편의 손이 이불밑으로 스윽 들어오면서 오른손을 잡아주는 거였다. 그 따뜻한 기운에 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래도 눈물바람 저래도 눈물바람. 그대는 병 주고 약 주는 존재.


수술이 끝난 후 두 시간 동안 심호흡을 열심히 하라고 간호사가 일러 준다. 그렇지 않으면 폐가 쪼그라든단다. 환자가 자기도 모르게 자꾸 잠들려고 하니 보호자가 옆에서 계속 지켜보라고 당부한다. 지난번엔 간병인이 옆에 딱 붙어서 내가 호흡하는 걸 지켜봐 줬는데, 남편은 한 10분 지켜보더니 보호자용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면서 호흡 잘하고 있냐고 간간이 체크하는 걸로 대신한다.


나도 모르게 선잠이 들었는데 간호사가 와서 심호흡하라고 당부한다. 내 침대 맞은편 환자의 남편은 세 시간 내내 화장실도 안 가고 밥도 안 먹고 꼼짝 않고 붙어서, "자기야, 호흡해. 천천히. 자, 들이쉬고~ 내쉬고~. 잠들면 안 된대. 블라블라." 거슬릴 정도로 1초도 쉬지 않고 어쩌고저쩌고 블라블라 떠들어대는 바람에 듣는 환자 괴로워 죽을 지경이었으나 쫌 부러웠다. 와이프가 조금이라도 속이 안 좋다, 어지럽다, 숨을 못 쉬겠다고 하면 간호사를 호출했고 급기야는 의사까지 호출했으나 원인은 과호흡이었다.

너~~~~ 무 열심히 호흡한 게 문제였다.

과호흡 안 걸리게 적당히 무심해 준 남편에게 감사를.


이번엔 소변줄도 배액관도 달려 있지 않은걸 보니 혼자서 화장실은 갈 수 있다는 사인이었다. 문제는 눕거나 일어날 때 혼자서는 할 수 없었고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다. 어지러워서 낙상하는 경우가 많으니 보호자가 화장실 안까지 꼭 따라가야 한다고 간호사가 여러번 강조했다. 귀마개와 안대까지 챙겨 와서 했으나 병실마다 꼭 한 명씩 있다는 코골이 때문에 몸은 피곤한데 전혀 잠들 수가 없었고 시계는 어느덧 새벽 2시였다. 눈 뜬 시체처럼 누워있다가 소변이 마려워 남편을 불렀으나 꿈쩍도 않는다. 애칭도 부르고 이름도 부르고 성과 이름을 붙여서도 부르고 침대 난간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딱히 던질만한 물건도 없어서 리모컨으로 침대를 조금씩 일으키기 시작했다. 문제는 왼쪽 가슴을 수술했기 때문에 오른손 손목에 링거바늘을 꽂았는데 이게 힘을 주면 너무너무 아프다는 거였다. 리모컨 누르는 거부터가 1차 난관. 게다가 침대가 조금씩 끼익 거리며 올라갈 때마다 수술한 부위가 땅기고 아팠다.

리모컨 한번 누르고 심호흡 한번 하고 그 인간 이름 한번 부르고, 하아....  


거의 10분을 낑낑거리다가 겨우 몸을 일으켰다. 2차 난관은 어둠 속을 더듬어 넘어지지 않고 화장실까지 갔다 오는 거였다. 자고 있는 남편의 발을 냅다 걷어찰까도 생각했지만 아침부터 운동을 하고 오셨으니 얼마나 피곤하실까 하는 생각에 그냥 내버려두었다. 차라리 간병인을 쓸 걸 그랬어.


수술 다음날, 머리를 감아도 된다는 간호사의 허락에 남편에게 머리를 감겨달라고 했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고개를 숙인 채 감으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적당한 물줄기와 온도를 맞추어 놓고 남편에게 이대로 감겨달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물을 더 세게 틀었고 뜨거운 물이 온 사방에 튀었다. 뜨겁다고 소리치며 왜 샤워기를 건드렸냐고 하니 내 생각해서 빨리 끝내려고 물을 세게 틀었는데 이렇게 세게 나올지, 뜨겁게 나올지 몰랐단다. 샴푸도 종류별로 넉넉히 챙겨 왔건만 일회용 샴푸를 쓰면 아까우니 쓰던 거 마저 쓰자며 조금밖에 남지 않은 샴푸통을 한참 동안이나 쥐어짜고 있는 그로 인해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었다. 정말로 이 남자는 나를 생각해 주는 걸까 엿먹이려는 걸까.


머리를 감겨준 후, 남편은 회사 출근해야 한다며 밤 9시쯤 다시 오겠단다. 왜 9시냐고 했더니 거래처 사람과 술약속이 있단다. 원래는 12시나 돼야 들어올 텐데 내 생각해서 일찍 오겠다는 거다. 예. 예.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남편 없이 식판을 어떻게 갖다 놓을지 고민이었는데 막상 하니까 되더라. 간호사가 보기 안쓰러웠는지 멀리서 보고 달려와 주셨다. 찜질팩도 혼자서 데우고, 냉장고에 있던 반찬들도 혼자서 꺼내고 넣고, 텀블러도 배선실 가서 혼자 씻고, 다 되더라.


퇴원하는 날도 "혼자서 할 수 있지?" 하며 출근하는 남편에게 강인한 아녀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혼자서 운전하고, 집까지 짐 옮기고, 짐 정리하고, 빨래 돌리고, 심지어 밥도 했다. 이번엔 와이프가 회복이 엄청 빠르다며 지인들과 통화하며 웃는 그를 보며 법륜 스님의 책과 유튜브 동영상을 꼭 다시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옮고 그름에 대한 생각이 분명한 사람일수록 화를 잘 냅니다. 분별심이 강할수록 성질이 많이 올라오지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화가 적은 편이에요. 내가 옳다고 고집할 근거도 없고, 네가 그르다고 비난할 이유도 없지요.'

- 법륜 스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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