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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껌 Oct 06. 2023

11) 소고기가 소바보다 싼 거 실화

 하루 전 슈젠지에서 더위를 참지 못하고 들어간 소바집은 테이블이 딱 세 개고 주방 쪽으로 길게 있는 테이블과 의자 몇 개가 더 있는 작은 가게였다. 구글 평점은 4점이 넘었고, 가게는 시원했으며 직원들은 매우 친절했다. 다만 소바의 가격이 약간 부담스러웠는데, 그냥 소바만 시키면 1000엔이고 새우튀김과 같이 있는 세트를 시키면 1650엔(약 16000원)이었다. 몇 달 전 하코다테에서 새우튀김이 들어간 온소바를 950엔에 먹은 것에 비하면 분명 비쌌지만, 소바만 시키면 면과 간장만 나올 것 같아 튀김도 같이 시켰다. 몇 분 후 소바가 나왔는데 정말로 면과 간장만 주었다(직접 갈은 와사비도 같이 주었다). 간장 위에 파나 김이 뿌려서 나오진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몇 분 후 튀김이 나왔는데 보는 순간 ‘아’ 하는 탄성이 속으로 나왔다. 내가 기대한 건 큰 왕새우였는데 새우젓에 들어갈 만한 작은 새우들을 야채 튀김처럼 튀긴 것이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그 튀김 안에 들어간 새우는 시즈오카의 명물 ‘사쿠라에비(벚꽃 색이 나는 새우)’라고 한다. 그래서 비쌌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원한 새우와 맛은 분명 아니었다.

1650엔 소바+새우튀김 세트

 비가 오기로 되어있었는데 아침부터 날이 맑았다. 머뭇거릴 것 없이 그날 가기로 했던 니혼다이라 유메테라스로 가면 되었을 텐데, 전날 먹었던 비싼 소바에 대한 보상심리로 점심에는 저렴한 소고기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검색 끝에 신시즈오카역 근처의 고깃집에서 런치세트로 소고기 바비큐를 1500엔에 판다는 걸 찾았고, 꼭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소바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지만 지난 홋카이도 여행에서 혼자 고기를 먹으러 갔다가 저녁 시간에 너무 붐비는 바람에 제대로 먹지 못한 경험에 대한 보상이기도 했다.  

    

 오후 12시 반 즈음 2층에 있는 고깃집으로 올라갔다. 내부는 몹시 세련되어서 고깃집이라는 느낌보다는 패밀리 레스토랑과 일식집을 적절히 섞어놓은 것 같은 분위기였다. 평일 점심시간이라 여유 있었고, 눈치 볼 것 없이 직원이 안내해 주는 대로 6명은 앉아도 될 것 같은 큰 테이블에 혼자 앉았다. 1500엔짜리 런치세트에는 밥, 깍두기, 샐러드, 국, 소고기, 돼지고기, 소세지 두 개, 음료수(콜라, 사이다, 커피 등)가 포함되었다. 진정한 가성비 메뉴였다. 주문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고기가 나왔는데 사진에서 본 것과 완전히 똑같이 나왔다. 고기의 신선함, 고기의 양, 반찬의 양 모두 본 그대로였다.

1500엔 런치세트, 소고기+돼지고기+밥+국+샐러드+음료 포함

 ‘이게 혼고기의 맛이지’     

 삿포로에서 원했던 혼고기의 맛은 이거였다. 여유 있게, 좋아하는 고기를 맛있게 먹는 그 맛. 거기에 경제적인 가격까지. 도무지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이번에는 진짜로 고독한 미식가인 것 마냥 조용히 고기를 구워서 한 점 한 점 음미하며 먹었다. 평화로운 식사였다.      


 

 점심 식사 후 그날의 목적지였던 니혼다이라 유메테라스 전망대로 가기 위해 신시즈오카역의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문득 그날 비가 종일 올 거라는 일기예보가 떠올랐다. 늘 가방에 넣고 다니던 우산은 전날 날이 맑아서 빼 두었는데 다시 넣는 걸 잊었다. 역에서 600m 떨어진 호텔에 들러 우산을 가져갈지 고민하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있는 버스가 7분 내로 온다는 안내를 보고는 곧 마음을 접었다.


 ‘이렇게 맑은데 갑자기 비가 올 리가 없잖아’     


 날씨와 인생은 늘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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