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코(토이 항구)?”
버스기사에게 시즈오카 미니패스의 유효기간이 보이도록 보여주었다. 기사는 내가 목적지를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패스를 보여주는 사람들은 모두 목적지가 같은 모양이었다.
오후 1시 반 즈음,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있는 버스에는 교복을 입은 남, 여학생 두 명과 노인 예닐곱 명 정도가 있었다.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한 명과 그 부모는 캐리어를 끌고 나와 같은 곳에서 탔는데, 그들의 목적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버스에 탄 모든 사람들이 앉아서 갈 정도로 버스는 한적했다.
버스는 논과 밭, 산을 굽이굽이 지나갔다. 어느 정도 갔을 때 논밭 옆의 한 정류장에서 남학생이 내리고, 또 얼마쯤 갔을 때 한 정류장에서 여학생이 내렸다. 찌는 듯한 더위 속 풍경은 실내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바라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쨍쨍한 햇빛을 받은 자연은 보고 있는 것 자체로도 힐링이었다. 넋을 놓고 창밖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면 논밭을 지나고 있고, 또 정신을 차리면 깊은 산골짜기를 따라 굽이굽이 돌아서 지나고 있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을 정도로 그저 편안하게 자연을 감상했다. 항구까지 가는 한 시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 지나있었다.
시즈오카(静岡) 지명의 한자는 고요할 정(静), 산등성이 강(岡) 자를 쓴다. 고요할 정자는 고요하다는 뜻 외에도 깨끗하다, 쉬다의 뜻이 있고 산등성이 강자는 비탈길, 고개의 뜻도 있다. 시즈오카처럼 지명이 그 지역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시즈오카현 내의 도시들은 모두 조용하고 깨끗하며 언덕과 산이 많았다. 바다로 가는 항구의 버스 정류장조차도 산에서 내려오는 비탈길 어딘가에 있었다. 항구 정류장에서 나와 20대 여자와 그 부모만이 내려 캐리어를 끌고 항구 방향으로 걸어 내려갔고, 캐리어 바퀴 소리가 꽤 요란하게 들렸다.
뱃멀미가 심한 내가 배를 탄 이유는 토이항과 시미즈항 사이를 오가는 여객선에서 찍힌 후지산의 사진 때문이었다. 땅과 호수 근처에서는 보았고, 바다에서 보는 후지산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뱃멀미는 여객선처럼 큰 배를 탈 때에는 좀 덜하고 한 시간만 타는 거라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여객선에는 차도 들어갈 수 있었고, 나를 비롯해 30명도 안 되어 보이는 승객들이 탑승했다.
뱃멀미는 괜찮았으나 항구를 벗어나자 날씨가 급격히 어두워지며 흐려졌다. 지평선 너머로 짙은 안개가 껴서 후지산이 보여야 하는 북쪽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미즈항에 도착할 때까지 그 방향을 바라보며 기다렸지만 바다와 지평선만 보일 뿐이었다. 기대했던 일은 실망스러웠고, 기대하지 않았던 슈젠지역에서 토이항까지의 버스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3일 전 비 오는 날 낡고 어두운 호텔 방에서 날씨와 인생을 생각했듯, 바다 위 안개로 덮인 지평선을 바라보며 기대하는 일과 기대하지 않는 일이 제멋대로 흘러가는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