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흐르는 계곡 위의 빨간 다리에서 70대로 보이는 두 명의 할머니들께 다가갔다. 사진 찍는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드렸고, 두 분 중 한 분이 내 폰을 건네받아 사진을 찍어주셨다. 한 장을 찍은 후 할머니께서 뭔가 더듬거리며 조작을 어려워하시는 것 같아 도와드리려고 보니 당신의 검지와 엄지를 모으며 무언가 중얼중얼하셨다. 손짓을 통해 나는 그게 ‘줌아웃’을 하고 싶다는 의미라는 걸 알았다. 계곡과 다리를 한 프레임 안에 전부 담으려는 할머니의 계산이었던 것이었다. 폰을 건네받은 뒤 사진을 확인한 후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잘 찍는다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찍은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사진이었다.
이날은 시즈오카 미니패스 사용 3일차이자 마지막 날로 전날에 미시마역 근처에서 숙박만 하고 아침에 슈젠지(修善寺)라는 작은 온천마을로 갔다. 특별히 기대하지 않았던 곳인데 마을 전체를 관통하는 계곡물이 워낙 시원하게 내려와 보고 있으면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계곡 양쪽 도로를 잇는 다리의 난간은 모두 빨간색이었는데 마을의 상징인 듯 싶었다. 멋진 경관이 있는 곳이지만 마을이 작아서 갈 수 있는 곳들이 정해져 있었다. 사진을 찍은 뒤 마을 이름인 슈젠지(사찰)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사진을 찍어주신 할머니들이 나보다 앞서 슈젠지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마주치면 어색해질 것 같아 계곡 옆으로 가서 정자에 앉아 한참 동안 흐르는 계곡물을 지켜보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슈젠지도 둘러보고, 유명한 대나무 숲도 가 보았다. 너무 날이 더워 더 이상 돌아다닐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소바집에서 냉소바를 먹고 나왔다. 더 할 게 없겠다 싶을 때 버스정류장 근처의 신사나 들러보자 하고 올라가니 할머니 두 명이 나를 앞서 계단으로 오르고 있었다. 그중 한 분이 나를 알은척하기 전까지는 다리 위에서 내가 사진 부탁을 한 할머니들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아직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많고 특히 노인들은 모자를 쓰는 경우가 많아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알아보기가 어렵다.
슈젠지(修善寺)와 대나무숲
내 사진을 찍어주신 할머니가 내게 영어로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었다. 나는 ‘Korea’라고 답했다가 다시 ‘칸코쿠데스(한국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아직도 여기에 계실 줄 몰랐어요. 시간이 많이 지나서요”
번역기를 이용하여 할머니들께 보여드렸다. 혼자 왔느냐, 즐거운 여행을 하고 있느냐 같은 종류의 질문과 답이 몇 번 오갔고, 신사를 둘러본 후 내가 ‘먼저 가보겠습니다.’라고 보여드린 후에 버스정류장 쪽으로 내려왔다. 버스가 올 때까지 시간이 남아 정류장 근처에 계곡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로 들어가 마지막으로 멋진 풍경을 감상한 후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오니 두 분이 또 계셨다. 또 인사를 하고 같은 버스를 탔다. 우리는 슈젠지 역에서 또 같이 내려서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정중히 “가보겠습니다. 안녕히가세요.”라고 인사했고 할머니들도 잘 가라고 인사해 주셨다.
시즈오카의 시미즈항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 슈젠지역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토이항에 가야 했다. 역 코인 락커에 넣어둔 캐리어를 꺼내 토이항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