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에서 살아남기(2)
미증유: 지금까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 전대미문.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매일 하루가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매일 다른 하루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며칠 후에 일본 비행이 있다. 간사이에서 하루 자고 오는 비행인데 요즘들어 일본에서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비행은 취소 될 것 같지 않고 나는 다른 크루와 비행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생각보다 많은 크루들이 내가 갖고 있는 일본 비행을 원했고, 나는 일본 체류 비행 대신에 중국 턴 비행이랑 바꿨다.
나는 사실 비행을 잘 바꾸지 않는 편이다. 한 달 비행 스케쥴이 나오면 주어진 대로 간다. 이건 크루들 마다 다르다. 어떤 크루는 자기가 가진 비행을 전부 다 바꿔서 완전히 새로운 로스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내가 비행을 잘 바꾸지 않는 이유는, 일단 비행을 바꾸려면 엄청난 정성이 들어간다. 그리고 막상 바꿔서 들어간 비행도 후회를 한 적이 많다. 승객 수가 적은 비행을 가면서 ‘오늘은 좀 수월하겠네’라고 생각했다가 비행 내내 괴롭히는 상사를 만난 적도 있고, 울상을 하면서 간 만석비행에서는 아무 일도 없이 끝난 적도 있다. 비행을 오래 했어도 비행을 예측한다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언젠가 비행을 잘 안 바꾸시는 사무장님과 비행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그냥. 그 비행이 더 나을지 이 비행이 더 나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 잖아. 비행을 바꾼다는 건 그날의 서로의 운을 바꾸는 것 같아서 잘 안 바꿔. 바꿔서 들어간 비행에 사고가 난다면 너무 후회스럽지 않겠어? ’
여름 날 산들바람처럼 가볍게 지나가는 대화 일 줄 알았는데 몇년이 지난 지금도 그 대화는 종종 생각난다. 미래는 예측 할 수 없고, 우리가 하는 작은 선택들이 모여서 그 미래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
매번 같이 일하는 동료가 달라지고, 탑승하는 승객도 달라진다. 가는 목적지가 다르고 타는 비행기 기종도 다르다.
하지만 고철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따뜻한 기내식을 주는 건 매번 같다. 기내식을 나눠주는 카트 위에 올라가는 음료의 종류는 매번 같아도 이 비행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차가운 음료를 나눠 줄 땐 초록색 컵, 따뜻한 음료를 나눠 줄 땐 갈색 컵을 사용하는 것도 같다. 매끈한 초록 컵에는 기포가 보글보글 거리는 탄산음료가 들어갈 때도 있고, 가끔 얼음을 넣어 달라는 승객을 만나면 얼음을 퐁당퐁당. 작은 컵 안에서 퍼레이드가 열린다. 우둘투둘한 갈색컵 안에는 까만 커피를 천천히 따른다. 컵을 쥔 손에 온기가 느껴지면 이 따뜻함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커피를 받고나면 하얀색 설탕을 세봉지 달라는 승객도 있고 크리머만 세개를 달라고 하는 승객도 있다. 내가 건넨 까맣던 커피가 어떻게 변할지, 나는 음료 한 잔도 예측할 수 없다.
비행과 우리의 하루는 매번 같고, 매번 다르다.
그래서 우리의 매일은 미증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