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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무 May 24. 2022

핸드폰 없이 자연에서 보낸 이틀 밤

미국에 온 지 6개월 만에 첫 휴가를 다녀왔다.


워싱턴주에서 유명한 관광지 리스트를 놓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뜬금없이 회사 동료가 추천해준 작은 숲 속 휴양지에 다녀왔다. 인터넷이 닿지 않는 자연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과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멋있다는 점에 끌렸다.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아내와 나를 설레게 했다. 결정적으로는 숙박비가 다른 곳에 비해 절반 이상 저렴했다.


글렌우드라는 마을은 집에서 차로 4시간 정도 떨어져 있었다. 드넓은 땅만큼 고속도로도 시원시원하게 뚫려있었다. 차가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산을 넘고 숲을 지나면 돌산이 나타났다. 사막처럼 메마른 땅을 달리다 보면 마을이 나타났다가, 또 숲이 나왔다. 어디서 야생동물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숲은 울창했다. 아내는 숲 속에서 노루를 두 마리 발견하고 나서부터 계속해서 뚫어져라 숲을 응시하며 야생동물 찾기에 집중했다. 내가 운전을 하느라 노루를 못 본 것에 대해 아쉬워 하자, 자신이 얼른 운전을 배워야겠다고 했다. 그래야 내가 조수석에 앉아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을 거라며.


미국에 오기 전에도 나는 운전하는 걸 좋아했다. 어딜 가든 나는 탁 트인 시야와 자연경관에 늘 매료되곤 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비가 그치면 그친 대로, 해가 뜨면 해가 뜬 대로 다 좋았다.



우리가 머물렀던 캐빈은 텐트에서 지내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했다. 주방과 냉장고는 물론,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에, 난방시설까지 잘 갖추어져 있었다. 캐빈끼리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있어서 프라이버시는 완전히 보장하면서도 숲 속에 홀로 동떨어져있지는 않다는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나중에서야 이게 글램핑이었다는 걸 알았다.


캐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짧은 트레일이 있었는데, 걷는 동안 혹시라도 곰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곰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싶었지만 숙소 안내문에 곰을 만났을 때 해야 할 행동에 대해서 적혀있었므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안내문에 따르면 곰을 만났을 때 죽은 척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최대한 곰을 자극하지 말아야 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맞서 싸워야 한다. 마주치는 투숙객들마다 개를 한 마리씩 데리고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는 개가 사람을 보호해주는 역할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 모닥불에 구운 삼겹살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인간은 결핍을 좇는다고 했던가. 도심에서는 자연이 그립고, 시골에서는 도시가 그립다. 실내에서 고기를 굽다 보면 환기 잘되는 야외 바비큐가 그립고, 모닥불 연기를 마시다 보면 인덕션이 그립다. 그래도 아내는 불장난이 재밌는지 불씨를 살리는데 최선을 다했다. 역시 아내는 못하는 게 없다. 운전 빼고.


인터넷이 되지 않아서 둘째 날은 하루 종일 강제 독서를 했다. 숲 속에서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경험은 힐링이었다. 책을 읽다 졸리면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서는 아내와 사진첩을 보며 추억 놀이를 했다. 배가 고파 오면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다. 밤에는 커튼을 활짝 열어 놓은 채로 달과 별을 보면서 잠들었고, 아침에는 햇살과 새소리를 맞으며 잠에서 깼다. 회사 동료는 1박이 딱 적당하다고 했지만, 내게는 2박 3일도 짧게 느껴졌다.


이번 휴가를 계기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내게 필요한 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꼭 멀리 휴가를 떠나지 않더라도 스스로 세상의 소음을 최대한 차단해야겠다. 일상에서도 자연과의 접점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해 시간을 내야겠다. 


“나쁜 소식에는 문을 닫고 좋은 소식에 마음을 열라” - 리얼리티 트랜서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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