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는 특별하지

소품집 10

by 헤비

내 공식적 고향은 서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3살까지 서울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기억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출발한다. 전주에서 중학교 2학년 때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따지고보면 전주에서 산 시간은 십년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 이후로 학교는 계속 서울에서 다녔고, 한참 전부터 살기는 경기도에서 살고 있으니 당연히 전주에서 산 흔적은 점점 줄어들고 태도나 모든 게 경기도민으로 굳어져 갈 거라 생각한다.


물론 다른 지역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순천, 울산, 강릉 같은 바닷가는 어떨까 싶다. 여건만 되면 제주도에서 한계절 쯤은 지내보고도 싶다. 하지만 사는 지역을 바꾼다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직업이 바뀌지 않는 이상에는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사실 지금 직업도 아주 못떠나는 직업이 아닌데도 이러고 있다).


그래도 난 "고향이 어디에요?"라고 물으면 '전주'라고 답한다. 내가 살던 동네가 지금 딱 '전주한옥마을'이 있는 풍남동이었다. 가보니 우리집이었던 골목 끝 낡은 한옥은 현재 게스트하우스가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엄마한테 삐져서 말도 없이 뛰쳐나가 저녁까지 눌러앉아있던 곳이 오목대였다. 엄마가 젊은 시절 한복을 만드시던 곳이 지금은 콩나물국밥, 순대국밥으로 유명한 남부시장 뒷골목이었다. 할아버지는 중절모를 쓰고 경기전으로 바둑을 두러 가셨고, 난 식사시간이면 할아버지를 찾아 그 곳을 뛰어다녔다. 삼촌은 풍년제과에서 가장 유명한 건 '센베이'라고 하셨고, 난 늘 소세지빵이나 고로케빵을 먹었지 초코파이를 사본 적은 없었다.


떠난 이후 몇 번 다시 가보긴 했지만 지금 풍경은 낯설기만 하다. 일단 도로 자체가 달라졌다. 말그대로 라떼는 그냥 차도밖에 없었다. 보행자 전용도로에 조명이 박힌 분수길과 중간 쉼터로 정자가 놓일 건 상상도 못했다. 우린 시멘트로 된 우수로 뚜껑이 인도인 것마냥 밟고 다녔다. 그나마 풍남동은 어릴 적에도 화장실이 대부분 수세식이었는데(대신 가옥 안이 아니라 대문 옆에 있었다) 건너편 기린봉 근처 동네엔 군데군데 재래식 화장실을 쓰는 집들이 남아있어서 친구 집에 갈 때도 은근슬쩍 눈치를 살핀 기억이 있다.


내가 살 땐 한옥마을이란 말도 없었고 그저 오래된 옛날 동네였다(도리어 전동을 한옥마을이라 불렀던 기억은 있다). 낯설긴 하지만 동네 자체는 잘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경기전이 유료화 된 건 갈 때마다 서운하다. 안에 들어가봐야 볼 거라고는 이성계 어진과 키 큰 나무들, 그리고 군데군데 놓인 왕손 탯줄 담은 돌탑 같은 거 밖에 없지 싶은데, 할아버지가 부채질을 하시면서 바둑을 두시던 자리에 다시 앉아보려고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는 게 아무래도 아쉽다.


대신 딱 한옥마을을 빼면 나머지 동네는 크게 변한 게 없다. 돌아다니다보면 마치 내가 살던 동네인데 꼭 미니어처로 줄인 세트장 안을 다니는 느낌이다. 그땐 그리 높아보이던 3층 건물이 이렇게 작나 싶다. 동네 전체가 시간의 낙진을 맞으며 천천히 사그라들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지방도시를 갈 때면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현상이긴 한데 그런 얘기를 여기서 할 건 아닌 거 같다). 물론 완벽하게 멈춰있는 건 아니다. 없던 게 많이 생겼다. 커피 전문점도 꽤 보이고, 대형 마트도 보이고, 무엇보다 햄버거 매장도 보이더라.


다시 라떼는, 전주에는 햄버거 프랜차이즈라는 게 없었다. 놀랍지 않나? 맥도날드, 없었다. 버거킹, 당연히 없었다. KFC는 상상도 못했다. 심지어 롯데리아도 없었다. 그땐 지역감정이란 게 조금 노골적이었던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그 흔한 롯데리아가 전주에는 없었다. 나만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난 슈퍼에 가도 롯데껌을 안 씹고 해태껌을 씹는 타이거즈 팬이었다(이젠 롯데껌을 씹는 타이거즈 팬이 되었다).


그렇다고 햄버거란 음식의 존재를 몰랐는가, 그건 아니다. 동네 분식점에서도 출처불명의 햄버거 패티에다가 채 썬 양배추에 마요네즈와 케챱을 뿌린, 지금 생각해보면 핫도그의 동그라미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팔았었다. 그리고 내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의외의 공간이 있었다. 그건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였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게 된 게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지 싶으니까 그 전까지는 일 년이면 세네 번 정도 할아버지 댁을 오갔다. 방학마다 일주일 정도 할아버지 댁에 동생과 함께 올라가 있었고, 나머지 두 번은 설과 추석이었다. 할아버지 댁은 성남이었고 당시 우린 차가 없었기에 명절이면 역귀성 인파에 섞여들어가야 했다. 고속도로 정체가 극심했을 시절이라 흐릿한 기억으론 고속버스를 타려고 해도 터미널에서 1시간은 기본, 길게는 서너 시간도 연착이 됐다. 이동시간도 성남에서 전주까지 기억에 적어도 네 시간에서 한번 막혔다 싶으면 길게는 예닐곱 시간도 걸린 것으로 기억한다(지금 내가 안 밟고 천천히 달려도 두시간 반이면 가지 싶다).


그 지겨운 길을 그래도 버티게 해준 건 오로지 햄버거였다. 휴게소만 가면 롯데리아 햄버거, 어린 마음에는 '진짜 햄버거'라 생각했던 그 햄버거를 먹을 수 있었으니까. 난 혹시라도 자다가 휴게소를 지나칠까 싶어서 억지로 잠을 밀어내며 그 지루한 창 밖 풍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버스가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바쁘게 롯데리아의 존재유무를 파악했고, 인파로 인해 햄버거 재고가 혹여나 남아있지 않은지도 확인한 다음에야 화장실에 갔다.


그땐 롯데리아 새우버거가 왜 그리도 맛있었는지, 막상 새우에 대한 호불호조차 없던 시절에 그 새우버거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밀크쉐이크! 따끈한 햄버거를 한입 크게 베어물고 거기에 밀크쉐이크를 쭉쭉 빨아들이면 그 단짠 조합에다 차갑고 뜨거운 게 막 뒤섞이면서 크으... 나중에 새우버거에 새우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 기막힌 추억에 금이 가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사실 그즈음엔 롯데리아도, 새우버거도 내 햄버거 리스트에서는 이미 빠졌을 때였긴 했다.


지금도 햄버거를 한 달에 한두 번은 먹는 편인데, 아무래도 혼밥을 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메뉴가 햄버거여서 더 그런 것 같다. 근무 끝나고 혼자 영화보러 갈 때면 거의 햄버거다. 난 햄버거는 완전식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비율의 문제는 있겠으나 탄수화물도 있고, 단백질도 있고, 야채도 있으니까. 대신 야채 없이 패티와 치즈만 있는 햄버거는 선호하지 않는데, 햄버거란 자고로 음료 없이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패티와 치즈만 든 햄버거는 입 안이 쉽게 뻑뻑해져서 그게 불가능하다.


주변에서 '넌 밥을 먹는 거냐, 마시는 거냐'고 묻는 경우가 많았는데, 작년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은 이후로 갑자기 식습관이 바뀌어서 조금 천천히 먹고 있다(이제 사람같은 속도가 되었다고 다들 말하지만 결과적으로 먹는 양 자체가 줄진 않았다). 그런데 여전히 스피드가 줄지 않는 음식이 바로 햄버거다.


친구들과 모여 햄버거를 먹을 때면 난 늘 다른 애들이 3분의 2쯤 먹었을 때 포장지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언젠가 한 친구가 그걸 깨닫고 너무 신기했는지 내게 도전장을 던졌다. 당연히 피할리 없었다. 녀석은 누가 먼저 KFC 징거버거 2개 빨리먹는가로 결판을 짓자고 했다(대결 자체가 그 할인행사를 보고 신청이 되었던 것이었더랬다). 녀석 딴에는 나름 세기의 대결이라 생각했던 모양인데 경기는 싱겁게 끝났다. 지금 와 고백하자면 난 일부러 1개까지는 천천히 친구와 템포를 맞춰줬다(이 글을 읽으면 녀석은 굴욕감에 치를 떨테다). 그리고 1개 반이 지난 시점에 템포를 올려 녀석을 가볍게 따돌렸다.


다시 말하지만 햄버거는 자체로 음료 없이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난 그런 걸 좋아하기 때문에 야채도 수분기가 어느 정도 남아있고 패티에서도 육즙이 많이 나오는 쪽을 선호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요즘 가장 괜찮다 생각하는 게 프랭크버거인데 여긴 아무래도 크기가 아쉽다. 라지를 먹어야 다른 프랜차이즈 기본이다보니 심지어 내 친구의 와이프도 기본은 두 개도 먹겠다고 했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전통의 강자인 맥도널드는 친구가 더 좋아하는데 그간 깎아먹었던 이미지를 나름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동선상에서 접근성이 떨어져 잘 가는 편은 아니고, 그나마 가장 많이 먹는 건 버거킹인데 솔직히 점점 뭔가 아쉬워진다. 맘스터치도 간간히 가지만 역시 닭고기 패티는 남들 눈 없는데서 먹어야지 밖에서 먹기엔 순간 수습이 안되서 추해진다 싶은 위기상황이 꼭 한번씩 닥쳐온다.


요즘은 쉑쉑이니 파이브가이즈 같은 미국 본토 햄버거들이 건너오고 있는데 사실 한 번도 먹으러 가본 적은 없다. 맛이야 있을 텐데 이상하게 햄버거를 줄서서 먹는다거나, 햄버거 단가가 만원을 넘어가거나 하면 뭔가 잘못된 거 같고 딴 세상에 떨어진 듯 적응이 안된다. 기본적으로 햄버거는 '한 끼를 때우는' 것에 치중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만드는 분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내겐 그렇단 거다. 그런 햄버거는 내 개념의 상한선을 뚫어버린 거라서 다른 계기가 없고서야 내가 일부러 찾아가 먹을 일은 없지 싶다.


지금껏 먹어본 햄버거 중 가장 맛있는 햄버거는 그럼 고속버스에서 먹었던 그 롯데리아 새우버거냐, 아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전주에 내려와 같이 사시게 된 이후로 고속버스를 탈 일이 사라져서 햄버거를 먹을 일도 없어졌던 그 시절, 마침 드디어 전주에도 햄버거 프랜차이즈 가게가 생겼었다. 롯데리아에 맞서는 해태 햄버거였다. 가게 전체를 밝은 주황빛으로 도배했던 걸로 기억이 날 뿐 브랜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풍년제과 본점 사거리 대각선 방향 쪽에 생긴 햄버거 가게를 보고 얼마나 신기했던지...


난 비염이 심해서 어릴 적부터 이비인후과에 다니곤 했는데, 애가 당연히 병원에 가는 걸 좋아할 리가 없었다. 엄마는 징징거리는 날 데리고 병원에 갈 때면 가끔씩 햄버거를 사주곤 하셨다. 당연히 동생 몰래 사주셨기에 그건 우리만의 비밀이었다. 원래 모든 일이 그렇잖나, 음식에 사연이 묻는 건 반칙인데 인생에 이런 반칙은 어쩔 수가 없다. 그때 그 어설펐을 해태 햄버거가 난 가끔 그립다.


물론 지금은 전주에도 햄버거 프랜차이즈는 많다. 그러나 이젠 전주에 가면 비빔밥을 먹고 온다. 보통 '전주'하면 생각나는 가장 첫번째 메뉴가 비빔밥일텐데, 정작 난 전주를 떠난지 20년쯤 지나서야 처음 전주비빔밥을 먹어봤다. 전주 사는 사람들은 전주 비빔밥 안 먹는다는 명제에는 동의하는데, 외지에 살면서 처음 먹어본 전주 비빔밥은 확실히 한 번은 꼭 먹어봄직한 음식임에는 틀림없었다. 엄청나게 환상적인 맛이다 그런 건 아니지만 충분히 밸런스를 갖춘 음식이란 점에는 동의할 수 있었고, 햄버거 따위가 함부로 덤빌 체급이 아니었다. 원래 너무 가까이에서는 잘 안보이는 게 많은 법이다. 한참 햄버거 얘기 해놓고 갑자기 비빔밥이 땡기는 저녁이 되어버렸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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