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인간 어딘가에서 잠깐 어떤 기묘한 페로몬이 뿜어져 나왔던 건지,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저 놈을 이대로 계속 솔로로 두어서는 안돼'란 강박에 사로잡혔던 시기가 있다. 모르겠다. 어떤 예언자가 내 주변 사람들을 찾아가서 '헤비를 이대로 솔로로 두면 머지않아 지구가 멸망할 거야.'라고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녔던 건지도.
여하튼 그렇게 자꾸 누굴 소개시켜준다, 너랑 저 친구랑 잘 어울린다, 저 친구 가만 보면 꽤 괜찮지 않느냐, 자기 아는 사람이랑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식의 이야기가 산사태처럼 급격하게 밀려 들어왔더랬다. 나로서야 당연히 기피할 일은 아니어서 이렇게 저렇게 사람을 만나곤 했었다. 물론 제대로 된 결실을 맺어본 적은 없지만.
도리어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난 결론적으로 내가 결함이 많아서 그렇지 '세상에는 참 좋은 사람도 많고, 예쁜 사람도 많고, 착한 사람도 많구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보통 내게 "왜 솔로로 지내요?"란 질문이 오면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로 답한다 했는데, 결국 백만번 생각해봐도 내가 문제다.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내 반응은 크게 둘로 갈리는데, 그 기준은 '말이 얼마나 잘 나오는가'이다. 누굴 만나면 내가 생각해도 여유가 생기고, 질문 흐름도 깔끔하게 떨어지고, 가끔은 상대방을 빵 터지게 웃기기도 하고 그런다. 반대로는 자꾸 어이없는 실수(테이블의 물컵을 엎는다든지)를 하고, 말이 입술 끝을 벗어남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야 이 XXX아, 이게 뭔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니... 고작 요딴 소리나 해대면서 니가 뭔...'이런 비난의 목소리가 속사포처럼 쏟아진다. 느껴지겠지만 앞은 내가 마음이 없는 경우다. 뒤는 당연히 그 반대고.
곁다리로 조금 새자면 (내 모든 글이 언제나 잘 새긴 합니다만) 요즘은 저 증상이 확실히 완화가 되었는데, 현재 하는 일 자체가 주로 고객과 대화를 하는 일이니 속칭 말빨이 늘었다. 거기에다 오랫만에 만난 지인들이 하나같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화제를 요즘 내가 하는 일 쪽으로 돌리려는 걸 의외로 자주 접하다보니, 대화가 매끄럽지 못하다 느끼는 순간 '일하는 자아'로 갈아끼우면 왠만한 경우 자리가 편하게 흘러간다는 걸 알고 있다. 물론 진짜 편한 사람들을 만나면 "나 퇴근 했다고! 일 얘기 꺼내지 말라고!"를 외친다. (언젠가 준비가 되면 그 분야 주제로 글을 쓸 날도 있지 싶다.)
다시 옛날 이야기로 돌아와서.
다들 스치듯 지나는 인연이었어서 깊은 인상 같은 게 남을 수가 없긴 한데, 이름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기억에 각인이 된 사람이 딱 하나 있다. 일단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무척 예뻤다. 게다가 내가 너무 좋아하는, 곱고 귀여운 스타일이었다.
봉사활동 모임에서 만났는데 상대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눈에 확 들어올 정도였다. 볼수록 행동도 신중하고 마음 씀도 착한 사람이었다. 계속 되게 괜찮은 사람이란 이미지가 쌓여갔고, 그 당시 주변인들의 날 솔로세계에서 치워버리겠다는 열화와 같은 에너지에 힘입어 둘만 만날 자리가 만들어졌다.
처음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나 스스로 속으로 '내가 이 사람을 어느 순간 진짜 좋아하고 있었나보다'란 생각을 할 정도로 바보짓을 시작하더니 계속 어쩔줄을 몰라했다. 감사하게도 상대는 그런 날 웃으면서 받아줬다.
천천히 상대 주도로 대화가 풀리고, 밥을 먹고 나온 우리는 근처 카페로 가서 대화를 이어갔다. 그 후 영화라도 볼까 하고 영화관에 갔다가 마땅한 게 없어 그냥 나왔다(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란 놈이 진짜 답이 없었다. 적어도 플랜 B, C는 들고 나갔어야지, 그게 예의지 어휴...). 우린 산책을 하기로 했다. 그 동네가 그 여성분이 예전에 살던 곳이라 길도 상대가 잡았다.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뒷산으로 이어진 산책길을 따라 걸어올라갔다. 마을과 산의 경계를 이루는 약간 외진 구석에 판잣집이 몇 채 보였다. 함석 연통에서는 밥을 짓는지 연기가 폴폴 솟아오르고 있었다. 마침 산책길 가로등도 하나 둘 불이 들어왔고, 흐린 겨울 구름 위로 노을 빛이 고여있다가 군데군데 새어나오며 빛기둥이 내려왔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사람 살만한 동네는 아니에요."
그 순간 그녀가 던진 이 말을 난 도통 잊을 수도 없고, 해석할 수도 없다. 억지로 변호하자는 게 아니라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반적으로 생활환경이 좋은 동네는 아니었다. 여대생이 혼자 자취하면서 살기엔 더더욱 불편했을 거라 이해한다.
게다가 심지어 어떤 함의를 담고 한 이야기도 아닐 거고, 어쩌면 이제는 본인이 그 순간 그런 말을 했는지조차도 모를 거라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이었으니 아마 지금도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살거다.
그럼에도 난 저 문장이 도저히 소화가 안되서 생각할 때마다 체한 기분이 든다. 마음의 내시경을 찍으면 의사 선생님이 '이게 뭐냐'고 물어보지 싶을 정도로.
그녀의 말을 들은 순간 난 "저기 지금 사람이 살고 있잖아요, 저기 사는 사람도 사람인데, 대체 그럼 사람이 살만한 곳은 어때야 하는 건데요?"라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 내내 멍한 기분이었다. 그녀가 시간을 비워뒀다는 걸 알면서도 없는 약속을 핑계로 미안하다 말하고 급히 헤어졌다. 이후로도 그 봉사단체에서 몇번 마주쳤지만 예전처럼 인사만 하고 지내다가 서로의 삶을 향해 자연스럽게 흩어져버렸다.
신기한 건 그 말을 들은 직후 내가 그동안 그녀에게서 보았던 빛이 일순간 꺼져버렸다는 사실이다. 마치 누군가 스위치를 내려버린 것처럼. 단 한 문장의 말이 어떻게 사람 보는 눈을 그렇게 바꿔버릴 수 있는지, 그 전에도 그 이후로도 없는 일이라서 여전히 미스테리다.
알랭 드 보통은 '속물'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보는 것." 상대와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나누지 않고도 그가 입고 있는 옷, 신은 신발, 장신구, 자동차, 사는 동네, 직업, 지위, 재정상태 등을 보고 상대를 평가하는 게 속물이다. 속물이란 단어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붙어있어서 그렇지, 생각해보면 속물처럼 효율적인 판단 근거도 없다. 정말 효율적이다. 빠르고 쉽고 나름은 정확하다 믿을만한 데이터도 쌓여있다. 그러니 굳이 타인을 위해 애를 쓸 필요가 있겠나?
예전에 내 곁을 스쳐지나간 누군가를 뒷담화나 하자고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다. 난 확신한다. 그녀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쉽게 내뱉은 그 말을 기억하는 건 순전히 나를 위해서다. 나는 안다. 내 여건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면 그런 말을 더 손쉽게, 더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다.
지금도 난 어떻게든 쉽고 효율적으로 편하게만 살고 싶다. 그 욕망을 이기기가 힘들다. 그래서 난 그 '사람 살 곳이 아니에요'란 말이 내 안에서 끝없이 덜컹거려주길 원한다. 그 덜컹거림이 내 입에서 떠나는 말들을 조금이라도 조심스럽게 만들어주길, 또한 날 조금이라도 비효율적인 사람으로 남겨주길 원한다.
정말 그래도 된다. 내가 언젠가 공간을 사람 살 곳과 사람 못 살 곳으로 나누는 걸 넘어서 사람 못 살 곳에 사는 사람이면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그런 껍데기만 사람인 물체가 되었을 때는 아무라도 정신차리라고 내 뒤통수를 한 대 세게 후려갈겨도 괜찮다. 진심 부탁이다.
어디에나 사람은 산다. 당장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도 사람은 살고, 비만 내리면 천장 여기저기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곳에서도 사람은 산다. 집 값이 몇 년째 오르지 않는 오지에도 사람은 살고, 볕조각 하나 들어오지 않는 도심 반지하에서도 사람은 산다.
심지어 남들은 이게 문인지 벽인지조차 잘 구분하기 힘든 판잣집이나 아예 사방이 뚫려 박스로 자기들끼리 겨우 구획만 나눠놓은 지하철 통로 한 구석에서도 사람은 산다. 어디에 살든 그도 나도 사람일 뿐이다. 이건 이 지구에서 사람이 모두 사라진 이후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도 나도 언제나 사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