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노래 100곡

소품집 12

by 헤비

예전 싸이월드, 우리나라가 우리도 모르게 아주 잠깐 SNS의 선두주자였던 그 시절에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 켜고 미니홈피에 몇 사람이나 놀러 왔는지 확인하는 일을 빼놓지 않았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티는 안내고 싶지만 속으론 어쩔 수 없는 관종이었던 셈이다.


그래봐야 하루에 10명이 올 일이 없는, 껏해야 세네 명 지나가는, '나는 자연인이다'급 미니홈피였다. 그럼에도 난 용돈으로 꽤 자주 도토리를 결제했다. 미니룸에 사는 아바타(이름이 뭐였는지 가물가물하네) 친구 방에 의자 몇 개와 창문을 놔 주고 나머지는 모두 음악사는 데 썼다. 그래, 솔직히 홈피에 볼만한 사진은 없으니 그냥 노래나 듣다 가라는 게 내 일종의 홍보전략이었다. 나도 PC방에서 밤새 디아블로 잡고 아제로스 탐험 할 때 들을 배경음악도 필요했고.


아마도 최장기 집권이자 거의 독재를 하다시피한 노래는 아소토 유니온의 Think About' chu」 이지 싶은데, 이 노래는 진짜 지금 들어도 뭐 이렇게 깔끔한가 싶을 정도로 완벽하다. 특유의 꿀렁거리는 베이스와 가벼운 드럼 스타트 위로 신디 사운드 몇 마디기 얹어지기만 해도 이미 어깨는 자동반사적으로 들썩이고 있다. 눈만 감으면 난 어느새 막 태양이 기울어가는 여름 해변에 있다. 느린 파도소리와 멀리서 재잘거리며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녀를 지나온 바람이 전해주는 묘한 살냄새까지. 김반장의 보컬은 또 왜 이리 그 풍경과 찰떡일까. 지금은 이게 정말 20년전 노래인가 싶어 기막혀하는데, 장담컨데 20년 뒤엔 이게 과연 40년 전 노래인가 싶어 기막힐 거라 생각한다.


싸이월드에 쓰는 글은 지금보다 더 감성이 기름질 때여서, 가끔씩 말도 안되는 시를 그렇게 써대곤 했다. 싸이월드가 사라졌을 때 뭔가 일기장을 폭파시킨 것처럼 후련했던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못나고 부끄러운 글을 이렇게 길고도 길게 주절거리고 있는 걸 보면 이게 병이어도 확실히 불치병이지 싶다. 언젠가 난 브런치가 폭파되길(????) 바라게 될 지도 모른다.


한때 싸이월드에는 100분 100답이 그렇게 유행을 해서, 다들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에 애써서 답을 달아대곤 했었다. 1번 질문부터 황당하다. "이름은?" 아니, 당신 미니홈피를 왔는데 당신 이름을 모르겠냐고. 그런데도 이름을 묻는다. 대부분 그런 식의 질문들이다. 100문 100답을 보고 있다보면 늘 그런 생각을 했다. 일일히 답을 하는 인내심도 대단하지만, 진짜 대단한 건 이 질문을 만들었다는 사실인 거 같다고.


그렇다고 난 그럼 100문 100답을 적지 않았느냐? 그럴리가. 나도 꽤나 성실하게 답을 달곤 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아이의 100문 100답을 보면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상대를 알고 싶어 그걸 진지하게 들여다보곤 했었더랬다. 좋아하는 꽃을 외우고, 좋아하는 음식을 외우고...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답이 순간의 취향일 뿐 고정된 그 사람이 아닌데도 그때 난 그걸 몰랐다. 아직도 글을 쓰다보면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묻는다면?'이라 가정을 하며 말을 풀기 시작할 때가 꽤 있는데 그게 다 저 시절 100문 100답의 흔적일 수도 있다.


당연히 모든 것이 그렇듯이 어린 시절 내 배경음악을 담당하던 싸이월드도 바깥 세상에서나 내 삶 속에서나 서서히 저물어갔다. 그러다 2013년에 어떤 계기로(그 계기 자체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시 미니홈피를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참 별 희한한 게 다 있구나. 여기 네 사진도 있고, 내 사진도 있구나. 그리고 난 이런 글을 썼구나. 이건 좀 기특하게 썼네, 이건 진짜 못 봐주겠네, 이땐 뭔가 실마리를 못잡았네, 이땐 확실히 있는 척만 할 줄 알았지 알맹이가 없었네... 그런 생각을 하며 사진첩과 글들을 뒤적거리다가 조금 재미있는 글을 하나 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100곡'이란 글이었다.


그때 적었던 100곡 리스트 중 상위 10곡만 올려보겠다. (글 작성일은 2004년 9월 7일이다)


1. 이승환 「꽃

2. 김윤아 봄날은 간다

3. 임창정 Love affair

4. 조트리오 축결혼

5. 이승철 사랑이란

6. 윤종신 Annie

7. 전람회 「취중진담

8. 김건모 Say Goodbye

9. 김건모 그대 내게 다시

10. 이소라 제발


정말 이해가 안가는 게 아니 왜 아소토유니온의 「Think About' chu」가 왜 16위인 걸까? 난 분명히 저 리스트를 작성할 때도 김반장 목소리를 듣고 있었을텐데... 심지어 김건모의 「Say Goodbye」 이 노래는 완벽하게 기억에서 지워져서 다시 들어봤는데 그래도 모르겠다. 조트리오 노래 중에는 「축결혼」도 나쁘지 않지만, 지금은 그 앨범의 타이틀이었던 「먼훗날」이 조금 더 아린 게 내 스타일에 가깝다.


아랫쪽엔 더더욱 기억 안나는 노래들이 많다. 심지어 이젠 음원을 찾기 힘든 노래들도 있다. 그리고 그 시절엔 아직 CD를 사서 듣던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집에 있었던 음반에서 고른 흔적이 있는 노래도 몇 곡 보인다. 85위에 들어있는 강타의 「북극성」 같은 노래는 한때 H.O.T 의 팬으로 방을 포스터로 도배하시고 열심히 굿즈를 사모으시던 동생님의 흔적임이 분명하다. (나중에 조카들이 보이그룹 팬질하면 난 그 피 어디 안가는구나 할 거다.)


얀의 「그래서 그대는」은 뭔가 싶었는데 후렴이 나오기 시작하자 '아, 이 노래!' 하고 나도 모르게 소주 한 잔 탁 털어넣은 것처럼 '캬아...' 소릴 내게 된다. 그런데 이런 류로는 김종서의 「겨울비」 나 「지금은 알 수 없어」, 그리고 에메랄드캐슬의 「발걸음」을 더 좋아하지 않았었나 싶은데 아무래도 2004년엔 이 노래였나보다 싶다. (당연히 김경호는 100곡 안에 들어와 있었다.)


이 2004년 '내가 좋아하는 노래 100곡' 리스트를 2013년에 발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2013년에 이 리스트를 다시 한 번 작성해서 노트 프로그램에 저장했기 때문이다. 2013년의 나는 '이거 정기적으로 정리 해보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나보다.


그래서 2013년에 작성한 리스트의 상위 10곡은 이렇다. (이 리스트는 2013년 1월 15일에 작성했다)


1. 브라운 아이드 소울 「비켜줄게」

2. 김현철 「must say good bye」

3. 이승환 「꽃」

4. 조트리오 「축결혼」

5. 전람회 「기억의 습작」

6. 임재범 「사랑이라서」

7. 신승훈 「사랑치」

8. 들국화 「제발」

9. 유재하 「그대 내 품에」

10. 이소라 「바람이 분다」


아... 이번에도 아소토유니온은 12위다. 이쯤되면 좀 서글퍼진다. 그리고 도리어 노래들이 더 올드해졌다. 들국화와 유재하라... 아래는 양희은과 동물원도 보인다. 그리고 여전히 4위에 자리잡고 있는 조트리오의 「축결혼」... 음... 그런데 곰곰히 시점을 떠올려보면 2013년은 저 노래가 더 절실하게 와닿을 수 있었던 시절이긴 했다.


리스트 아래쪽에는 반가운 이름이 둘 등장하는데 아이유와 버스커버스커다. 「벚꽃엔딩」이 2012년, 「기차를 타고」가 2009년이니까. 그래도 아직까지 힙합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에픽하이 노래가 없는 것도 이상하다. 한동안 에픽하이만 듣고 다니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리고 확실히 100곡을 채우기에 버거워서 정말 그때 반짝 했던 노래를 집어넣은 것도 꽤 보인다. 이젠 다시 들을 생각이 안드는 노래들도 몇 곡 보인다.


생각난 김에 2024년 버전의 '내가 좋아하는 노래 100곡'을 만들어볼까. (시작하기 전부터 이번엔 엄청나게 많이 바뀌지 싶다.)


1. 김동률 「사랑한다 말해도」 (Feat. 이소라)

2. 아이유 「푸르던」

3. 브라운 아이드 소울 「Go」

4. 이승환 「화양연화」

5. 선우정아 「도망가자」

6. 백예린 「우주를 건너」

7. 최백호 「바다 끝」

8. 카더가든 「파도」

9. 패닉 「로시난테」

10. 이소라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일단 열 곡만 추리자. (이거 은근히 아무도 신경 안쓰는데 나 혼자서는 진빠지는 일이다) 아... 아소토유니온은 이번에도 못 들어왔다. 진짜 미안해진다. 노래를 고른 기준은 간단하다. 평소 많이 듣는 노래임과 동시에 듣다가 노래에 취해서 갑자기 핸들을 동해방향으로 돌리고 싶게 만들었던 빈도로 정했다.


이젠 노래를 차에서 많이 듣게 되니까 아마도 운전할 때 자주 듣는 노래들, BTS나 자이언티, 창모, 크래쉬, 머쉬베놈이 들어올 수도 있다. 태연 「Weekend」, 악뮤 「Dinosaur」 같은 노래들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물론 내 연식이 있으니 전통의 강호들도 쉽게 자릴 내주지 않으려 할 거다. (요즘 꽂혀있는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도 충분히 한 자리 차지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예전 음반을 사서 들었을 시절엔 한 곡 한 곡이 소중했고 남들이 모르는 수록곡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괜히 뿌듯해하곤 했는데, 이제 그 느낌은 많이 사라졌다. 대신 MP3를 지나 스트리밍으로 소비패턴이 옮겨오면서 듣는 노래의 폭 자체가 확실히 넓어졌다. 음악취향이 더 잡식이 된 것 같다. 예전 같으면 들을 생각도 없었을 판소리도 듣고, 재즈도 간간히 듣고, 요즘은 클래식이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좋은 말로 넓어진 것일수 있지만, 어떤 분명한 흐름이 없어진 거 같아 아쉽기도 하다.)


그런데 누군가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묻는 건 많이 실례되는 질문일까?


"좋아하는 노래 10곡만 뽑아주실래요?"


서로 5분쯤 말없이 리스트를 작성한 다음 테이블에 내려놓았는데, 그 중 반만 같은 가수로 겹쳐도 순간 상대에게 엄청난 호감을 갖게 될 것 같지 않나? 아마 그 자리에서 한동안 노래 얘길 하다보면 그날 처음 봤다는 사실을 잠깐 잊어버리고 마냥 편하게 웃게 되지 않을까? 혹시 전부 모르는 노래라고 해도, 들어보고 마음에 툭툭 떨어지는 노래들이면 '이 사람은 놓쳐서는 안돼.'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


10년 뒤의 나는 지금의 내가 고른 노래들 중 몇 곡이나 듣고 있을까? 10년 뒤엔 과연 「Think About' chu」는 몇 위를 차지하고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20위 밖으로 벗어나는 일은 없을 거 같기는 한데... 아, 김동률이랑 이소라 목소리 너무 좋다... '난 니 앞에 서 있어...' 하아, 또 멋대로 마음을 할퀴고 가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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