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도덕시간에 처음 접한 '신독'이라는 두 글자는 내 삶의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신독은 <대학>과 <중용>에 실려있는 말로 중국의 양계초는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으로 신독을 제안했다고 한다.
혼자있을 때에도 조심한다는 의미는 말로서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의 인격의 완성을 위해 공부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수양방법이 되었다.
도덕과 한문시간에 배우는 숱한 좋은 말들 사이에서 왜 이 단어가 가슴 깊이 박혔는지는 모르겠다. 15살의 어린 나이에 마음과 행동가짐을 바르게 하며 살자고 다짐하던 그 모습도 지금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때 당시 세상에서 이루고 싶었던 꿈이 원대했다. 바른 마음과 행실이 뒤따르지 않으면 큰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듯하다. 그 믿음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신독, 혼자 있더라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하고 언행을 삼가자.'
무엇을 하든 타인을 의식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순 거짓말일 것이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도 남을 의식하기 일쑤다. 심지어 간단히 외출을 하려해도 남들 눈을 의식해서 갖춰입기도 한다.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 가서도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쓰느라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지켜보는 이가 없다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무엇을 하든 어떤 옷을 걸치든 신경 쓸 일이 없을 것이다. 마음도 자세도 무장해제된다.
남들이 있거나 없거나 같은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성인(聖人)일 것이다. 성인은 알고 있다. 남의 눈보다 무서운 것이 나를 향한 눈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른 사람이 지켜보고 있지 않더라도 나의 눈은 항상 나를 향하고 있다.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일이든 나부터 알게 된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모습이 어쩌면 성인의 모습인 듯하다.
가끔은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우스갯소리로
"공자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가르치려 들지 않고 몸소 행동으로 보이는 삶 말입니다. 어느덧 뒤돌아보았더니 제 뒤에 저를 따르는 제자들이 많이 있는 모습, 상상만해도 즐겁습니다."
웃으며 이야기 하지만 늘 진심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에게 내 자신이 선생이며 타인의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