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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Feb 13. 2024

헤아려 다스리다, 料理

인생은 정극이 아닌, 코미

뒷목이 땡기고 머리가 아파온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어깨 통증이 오늘은 더 심하다. 몇 시간을 앉은 자세로 있었더니 더 심해진다. 뒷자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아예 누워버렸다. 운전하는 남편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일단 내가 살고 봐야겠다. 

구불구불한 길로 들어섰나 보다. 차 무게 중심이 오른쪽 왼쪽으로 일정하게 이동한다. 시댁에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눈을 떠보니 파란 하늘이 보인다. 하늘이 예쁜 곳이다.      


명절 증후군이다. 명절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어깨 통증이 심해진다. 스트레스받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꽤나 받고 있나 보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내가 차례상에 온 식구의 식사를 몇 끼나 감당하기엔 버겁다. 시댁에 가기 전에는 이번에 가면 몇 끼의 음식을 준비해야는지를 먼저 계산한다. 솜씨 좋은 엄마가 가끔 음식을 해서 싸주시면 한두 끼는 해결이 되어 그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간다. 요리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음식을 잘하기로 소문난 엄마를 은연중에 닮았을 거라 믿고 살아왔다. 숨어있는 재능이 결혼과 함께 쨔잔~하고 나올 거라고. 세 딸 중에 유일하게 닮지 않은 딸이 나다. 계란후라이 조차 제대로 못한다. 라면 물도 못 맞춘다. 3봉지 정도 끓이면 그나마 얼추 라면스럽게 끓인다. 냄비에 들어갈 수 있는 물의 양이 한정되어 있어서다. 한 봉지를 끓이면, 맛있게 먹으려고 덤벼든 사람이 늘 한 결같은 말을 한다. “한강이냐.” 밥물도 밥을 지을 때마다 다르다. 어느 날은 동남아식, 어느 날은 본죽밥이 된다. 밥도 못한다고 하면 이미 이야기는 끝난 것이다.   


       

料理 요리, 헤아려 다스리다. 

무엇을?     




음식은 정성으로 한다는데, 모든 일을 빠르게 해결해야 하는 내 성격에 시간을 들여 정성을 담는 요리는 맞지 않는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들인데, 그건 잘 알겠는데 먹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일단, 한국요리 자체가 조리과정에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일본에 있을 때 다른 문화는 모르겠고 음식들의 조리과정이 간단한 것에 크게 감탄했다. “바로 이거지!” 

양념의 종류도 간단해서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요리에 젬병인 나도 오야코돈, 오코노미야끼, 스튜정도는 뚝딱 만들어 낸다. 준비와 조리시간이 30분 이상 걸리면 버겁다. 하루 세끼, 준비시간만 해도 하루의 8분의 1은 쓴다. 

아이들에게 볶음밥과 카레라이스를 자주 해주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간단해서.         


  

시댁의 개와 고양이들은 나를 아주 좋아했다. 내가 만든 음식은 그들이 맛있게 먹어준다. 며느리의 솜씨를 모르고 맛있게 집어 들었다가도 두 번의 젓가락질에서는 머뭇거리신다. 남은 음식은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 고양이들에게 사이좋게 나눠 먹으라며 가져다준다. 부엌의 쪽문을 열어보면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고양이들이 줄을 서 있다. 소문이 난 거다. 

솜씨는 없는데 손은 제법 크다. 양을 적게 하지도 않는다. 개와 고양이들이 사이좋게 나눠먹고도 남을 음식이다. 큰 며느리가 오면 평소 맛보지 못했던 신비한 맛을 보게 되는 시간이다.      



결혼 한지, 곧 13년 차다. 10년이 넘으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내 솜씨는 그대로다. 

알약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식사, 요리해주는 로봇을 상상해보며 개 짖는 소리를 BGM삼아 천천히 시댁의 마당 안으로 들어간다. 

“어머님, 아버님 저희 왔어요.”     


오늘도 개와 고양이들이 나를 환대해준다.

‘오셨구냐옹~~.’

'어서오시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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