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잡스 유진 Jun 11. 2024

길을 잃다

나보다 먼저 갱년기를 경험하고 있는 남편 관찰 읽기 6


“나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신경 쓰이지.”

퇴근하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은 어떻게 챙겨 먹을 거냐고 물으니 하는 말이다. 

아이들이 이모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장 동생네로 가는 길이었다. 일하는 엄마는 이럴 때면 괜스레 죄인이 되는 것 같고 기운 빠진다. 아이들 등하굣길에 동행은커녕 간식도 한번 제대로 챙겨준 적이 없다.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허기져한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 스케줄이 있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친정엄마가 동생네에서 모두의 저녁밥까지 챙겨주신다. 

묘하게 신경 쓰인다. 

“나 신경 쓰지 마.”

언젠가부터 저 말이 귀에 거슬린다. 

신경 쓰지 말라는 의미가 알아서 할 테니 안심하라는 것인지 가족들의 마음씀도 버겁다는 의미인지 헷갈려서다.      



아이들을 픽업해서 집에 도착하니 현관에서부터 진한 라면 국물 냄새가 풍긴다. 신경 쓰지 말라더니 기껏 라면이나 먹고, 짧은 한숨이 나온다. 주말에 식재료를 잔뜩 채워뒀건만 열어보지도 않았나 보다. 

안방으로 곧장 들어가 환복을 하고 집안을 둘러보니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큰딸에게 물어보니 강아지 산책을 나갔다고 한다. 



하루 종일 뒤덮고 있는 메이크업이 답답해 빠르게 세수부터 했다.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세면대 주변에 물이 튀었다. 화장실 바닥에 물기가 있는 걸 싫어하는 남편이 보면 또 한 소리 할 게 분명하다. 바닥을 닦을까 어질러진 거실테이블이 생각나 서둘러 정리하러 나갔다. 20여분 뒤에 남편은 아리(강아지)와 함께 들어왔다. 

“사람들이 아리만 보면 이쁘다고 해.”

“어, 그래. 이쁘게 생겼으니깐.”

“우쭈쭈~~~ 아리~~~~~넌 참 예쁘게 생겼어.. 사람들이 예쁜 걸 알아봐 준다. 그치?”

‘가지가지하네. 와이프한테 저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보지.’ 물론 속마음 소리다. 

미소 띤 얼굴로 남편의 행동을 지켜본다. 겉과 속이 다르다. 

“산책하고 나니 기분이 좀 낫지?”

“어, 그러네.”

한 마디하고는 안방으로 쏙! 하고 들어간다.      



아이들과 함께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각자의 할 일을 한다. 사회공부를 하는 첫째, 수학문제를 푸는 둘째, 글씨 쓰기 숙제를 하는 나. 아이들과 테이블에 앉아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 

잠시뒤 남편이 나오며 한마디 건넨다. 

“언젠가는 네가 날 잡을 것 같아.”

“내가 왜 오빠를 잡아. 무슨 소리야.”

“네가 날 잡는다고.”

“그러니, 내가 왜 오빠를 잡아. 무슨 나쁜 짓을 한 거야? 잡아야 해?”

“참, 이해를 못 하네.. 너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

“???..........”

“내가 그렇게도 세수할 때 조심하라고 했지?”

참 민감도 하다. 겉모습만 보아서는 내가 한결 예민해 보이는데 오히려 수더분해 보이는 남편이 더 예민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얼마 뿌려지지도 않은 물에 죽을뻔한 사연이 기가 막히다. 

“그 물 때문에 내가 미끄러졌어, 방금. 그래서 죽을뻔했다고.”

“안 죽었잖아.”

“아니, 그러니 죽을 뻔했다고.”

“그렇다고 말을 그렇게 해?”

“그랬다고~!! 나라면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다음부터 안 그럴게 하겠어.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을 왜 삐딱하게 받아들여?”

“내가 그랬지, 오빠는 평소 말이 조금 부정적이라고. 난 부정적으로 말하는 거 싫어. 항상 말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 결혼초에도 그것 때문에 나도 조심해 달라고 했잖아.”

남편은 가끔가다가 부정적인 어조의 말을 쉽게 해서 나의 심기를 건드린다. 

남편도 나도 지지 않고 각자의 생각이 맞다고 한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근데 오빠. 보험 있어?”

“보험? 있지. 근데 왜?”

“내가 오빠를 잡는다며. 잡으려면 제대로 잡아야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경고하듯 말한다.


“.............”

“말 좀 조심해라~~!!!”


화장실에서 나오던 둘째가 끼어든다.

“엄마, 뭘 잡는다고?”

곤충이나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생각했는지 잡는다는 단어에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이 모든 상황을 보고 있던 큰 딸이 한마디 한다. 

“아이그, 이 눈치코치 없는 동생아~~~~, 제발 눈치 좀 챙겨라.”          




남편의 객년기, 갱년기 과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길을 잃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