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잡스 유진 Oct 18. 2024

한 간, 1미터

라라크루 금요문장공부 24. 10. 18

⭕ 라라크루 [금요문장: 금요일의 문장공부] 2024.10.18.     

1. 오늘의 문장      


이사를 앞두고 가구를 보러 다니는 중이다. 예산 안에서 원

하는 물건을 고르는 일은 소풍 가서 먹을 간식을 고르는 어린

시절처럼 즐겁다.

그러다가 동네의 카펫 전문점에 갔을 때 겪은 일이다. 카펫

의 색과 크기를 자세히 불어보려고 주인아저씨에게 말을 걸었

다. 아저씨가 속사포 같은 말투로 우다다다 쏘아붙여서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한 간 정도면 되겠네요.'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한 간이라면 사이즈가 어느 정도죠?"

질문하자, 아저씨는 내가 들고 있던 수첩에 '一間' 이라고 한자를 쓰더니, 업신여기듯이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한 간이 뭔지 모른다면, 중학교 다닐 때 제대로 공부를 안

했다는 증거요.“     


*한 간 1.81818미터     


<마스다 미리, 그런 날도 있다 中, p. 45 한 간 一間>          




2. 나의 이야기

엉뚱하게도, 이 문장을 읽는 동안 아버지가 떠올랐다.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배 기관사일을 하시다 어느날 육지에 정착하셨다. 기억하기로는 내가 초등학교를 다닌지 두 해가 되던 때다. 육지에 정착하면서 새로 일거리를 찾은 것이 첫 번째 치킨가게, 두 번째로는 생을 마감하실 때까지 하시던 건재상(철물점)이다. 내가 중학교를 입학하던 때부터 20년을 넘게 하셨다. 

누가 봐도 배짱 장사 타입의 아버지는 손님을 왕으로 대접한 적이 없다. 기계라면, 철물이라면 누구보다도 지식이 더 많다고 생각해서인지 늘 고자세로 손님을 가르치려 드셨다.

일단 뭐든 저렴한 물건으로 달라는 손님도에게도 한 소리, ”물건을 모르면 비싼 걸 쓰라고 하죠, 중국제 찾을 거면 가시오.“

사려고 하는 물건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면 여지없이 또 한 소리를 듣고 가야한다. 


이렇게 불친절한데도 인구 10만밖에 안되는 소도시에서 망하지 않고 20년을 넘게 했다는 게 아이러니다. 

세상 모든 장사꾼의 표준이 아버지인 줄 알았다. 장사는 저렇게 하는구나. 당당하게.

내가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기 전까지만도 해도 말이다. 

일본에서 첫 아르바이트로 식당에서 일할 때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는 점장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어느 곳을 가나 손님에게 저자세로 친절이 몸에 베인 사람들이었다.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원래 장사는 이렇게 해야한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꾸지람을 듣는 것 중 횟수가 가장 높은 것이 '1m'이다. 

전선이나 호수, 대형 비닐은 마끼(일본어, 두루마리)로 가지고 있다가 필요한 만큼 끊어 판다.      

”어느 정도 필요하오?“

”음.....음......“

”1미터? 2미터?“

”사장님 1미터면 어느 정도죠?“

”그것도 모르오? 학교 다닐 때 제대로 공부한 것 맞소?“

”............아니...그게...“

학교 수학 시간에도 저렇게는 안 혼났을 거다.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더 민망하다. 

덧붙여 말씀하신다. 

”자고로 1미터는 말이오. 양팔을 벌려 보시오.“

손님은 영문도 모른 채, 국민체조 양팔 벌려 자세를 취한다. 

”1미터는 말이오. 이렇게 양팔을 벌리면 자신의 키 정도 되오. 그러면 자신의 키에서 100센티미터 정도이니 보통 손끝에서 반대쪽 겨드랑이까지가 대략 1미터요.“

”아~!!!!!!“

짧게 감탄하는 손님, 전기줄 사러 왔다가 호랑이 선생을 만났다.      

그렇다고 해서 길이를 잴 줄자가 없는 것도 아니다. 

철물점에 줄자들은 넘친다. 중국산, 국산, 일제, 미제까지.

심지어 빠르게 끊어 팔려고 1미터 길이의 줄자를 벽에 붙여 놓기도 했다. 

손님이 원하는 길이를 듣고, 1미터씩, 2미터씩 바로바로 끊어 팔 수도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아버지에게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건 모두 그거 때문이다. 

배움에 대한 한 恨. 한 限     

아버지는 중졸이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가장 역할을 했다. 아래로 5명의 동생, 그리고 동생같은 누나까지 모두 아버지의 보살핌의 대상이었다. 

일찌감치 장사로 돈을 벌기 시작한 아버지는 동생들을 공부시키고, 뒷바라지 하시느라 본인의 배움을 일찍이 내려놓았다.  

아버지의 친구분들을 만날 때마다 수제였던 아버지가 공부를 그만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듣는다. ”중환이 얘가 진짜 똑똑했지. 공부했으면 한자리했을 거야.“

그 말을 묵묵히 듣고 있는 아버지는 그저 옅은 미소만 짓는다. 

공부에 대한 여한은 빠듯한 살림에 딸들이 공부를 끝까지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주신 것에서도 느낄 수 있다. 

”대학 나온 애가 그것도 모르냐?“는 말을 종종하셨지만 아버지에게 대학 나온 아이들은 자부심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1미터’는 자신이 배움에 몸담고 있던 시절의 기억이다. 짧은 배움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계신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까지 다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버지에게 배움은 세상에서 원한다고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한계선이다.      



더 배울 수만 있었다면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텐데...언젠가 어머니에게 하신 말씀을 엿들었다. 

아버지의 배움이 1미터만 더 나아갈 수 있었다면 그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아버지 한계 없는 그곳에서 평안히 쉬소서...                         

작가의 이전글 어쩌면 토끼는 배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을지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