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지스강의 역설적인 생명력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의 가트(Ghat)를 따라 걷는다는 것은, 인도인 현지인,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들 중에 수많은 보트맨들은 귀찮을 정도로 보트를 탈 것을 요구한다. 특히 해 질 녘이 가까워지면 그들의 목소리는 더욱 절박해진다. 아마도 메인 가트에서 거행되는 뿌자(Puja, 힌두교 의식)를 강 위에서 바라보는 것이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땅 위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강물에 비친 불빛과 수천 개의 작은 촛불(Diya, 소원을 빌기 위해 띄우는 작은 촛불을 담은 잎 접시)이 흐르는 풍경은 분명 다른 감동을 선사할 테니 말이다.
나는 보트를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처럼 손으로 노를 직접 젓는 소형 보트를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수 많은 보트맨 중 한 명인 키가 자그마한 자코(Jako)의 끈질긴 제안에 끌려 작은 배에 몸을 싣기로 했다. 그러나 배가 작아 약간 불안했지만, 호기심이 그 불안감을 이겼다. 물론 인도에서의 모든 거래가 그렇듯이 자코는 처음 Rs. 500을 불렀지만, 나는 이미 이 땅의 리듬에 익숙해진 터라, 몇 번의 흥정 끝에, 손으로 노 젓는 이 소형 보트의 가격을 Rs. 250으로 다운시켰다. 작은 승리감과 함께, 작은 배는 나를 실고 강물 위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한 시간의 유람이 시작되었다. 자코는 힘겹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노를 저었다. 노 젓는 소리는 고단한 노동의 소리였지만, 곧 하나의 리듬이 되었다. 나는 문득 한국에서 힘든 일을 할 때 함께 외치던 구호처럼, 자코의 이름에 노 젓는 소리를 붙여 보았다. "영차 영차 자코 자코!"
내가 소리 내어 함께 외치자, 노를 젖는 자코는 피로 속에서도 웃음과 함께 나를 따라 소리를 냈다. 우리의 작은 배는 어머니의 품처럼 굽이치는 강물 위를 삐꺽 삐꺽 미끄러져 나갔다.
그때, 자코가 손을 뻗어 강물을 한 움큼 떠 마셨다. 한 번이 아니라, 연거푸.
"이 물은 어머니 강, 홀리(Holy) 강물입니다." 자코가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단지 '믿음'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몸에 배인 힌두인답게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보인다.
"인도 사람들은 모두 이 물을 마십니다. 저기 있는 정치인도, 교수, 박사님들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들도. 이 강물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나는 침묵하였다. 그가 언급한 '모두'에는 내가 아는 위생 개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오염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코는 자신만만했다.
"나는 담배도 피우고, 마약도 가끔 하지만, 아주 건강해요."그가 덧붙였다. "왜냐하면 이 신성한 물을 매일 마시고, 매일 목욕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나는 갠지스강이 가진 역설적인 생명력의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오염과, 생명을 유지한다고 믿는 순수한 신앙. 이 극명한 대비 속에서, 나는 그저 성실하게 노를 젓는 자코라는 한 인간의 강인한 휴머니티를 보았다. 노를 젓는 자코의 팔뚝 근육은 강했고, 그가 바라보는 강물은 어떤 의구심도 없는 절대적인 경외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날, 갠지스강의 진정한 모습은 물리적인 물의 상태가 아니라, 그 물에 투영된 수많은 인도인의 흔들리지 않는 영혼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