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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니케탄, 비스바-바라티 대학교

'평화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산티니케탄(Santiniketan)

by 론리포토아이
R0001939.jpg 비스바-바라티 대학교 학생들 점심 휴식

콜카타에서 산티니케탄까지

인도를 사랑하는 사진가에게 인도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아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마주하는 삶의 단면들은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건넨다. 이번에는 특별한 도시, '평화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산티니케탄(Santiniketan)으로 향했다.

하진희 작가의 책 '무심코 인도'에서 만난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와 그의 비스바-바라티 대학교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콜카타 실다(Sealdah)역에서 오후 6시 기차에 몸을 싣고, 밤늦도록 이어진 여정은 맞은 편 좌석의 젊은 여성과 나눈 대화였다. 그녀는 콜카타에서 촉망 받는 젊은 변호사이다. 그녀의 해박한 K-문화(한국 문화)에 대해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의 K-문화에 대해 너무 무지함을 깨달았다. 밤 11시 50분, 볼푸르 산티니케탄 역에 도착하자, 그녀는 오토릭샤 기사에게 나의 숙소 위치를 알려주며 바가지를 씌우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녀의 친절한 배려 덕분에 나는 낯선 밤길을 시꺼매 보이는 젊은 릭샤를 믿고 떠날 수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 어둠에 잠긴 시골길을 달리는 오토릭샤는 콜카타의 소란스러움과는 다른 고요함을 선사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외진 곳에 자리한 거대한 저택이었다. 굳게 닫힌 철문을 한참 두드려 주인을 깨운 후에야 나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비록 늦은 밤에 도착했지만, 숙소는 훌륭했다.

마주한 인도의 또 다른 얼굴 -

다음 날 아침, 무더운 햇살 아래 나는 숙소 근처에 있는 랄반드(Lalbandh) 호수를 찾았다. 물 속에서 빨래를 하는 사람들, 도비왈라(Dhobiwallah)들의 모습은 더위 속에서도 평화로워 보였다. 다른 도시에서는 도비왈라(Dhobiwallah)를 불가촉민이라고 차별하는 모습과 전혀 달라 보인다.

나를 신기해하는 동네 꼬마들과 오지랖 넓게 눈인사를 나누며 골목길 모습을 카메라 렌즈로 담았다. 낯선 동양인의 등장은 그들에게 작은 구경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점심 무렵, 나는 비스바-바라티(Visva-Bharati) 대학생들이 모여드는 오로씨 마켓(Aurosree Market)으로 향했다.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춰 저렴한 식사와 복사, 학용품 등을 파는 이곳은 그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은 공동체인 듯 하다. 점심을 하기 위해 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조심스럽게 학교 구경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식사 후, 그들에게 음료수를 권했다.

인도의 공공기관과 대학들은 보안상의 이유로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다. 몇 년 전 델리에서 한국에서 교수라는 신분을 밝혔지만 인도 공과대학(IIT) 교문에서 입장을 거절당했던 경험이 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티니케탄의 학생들은 달랐다. 그들은 흔쾌히 자신의 자전거 뒷자리에 나를 태우고 비스바-바라티 대학교(Visva-Bharati University) 교정으로 향했다.

타고르가 꿈꾼 자연주의 교실 -

고풍스러운 교정은 울창한 나무들로 가득차 매우 아름다웠다. 잘 정돈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여유로이 도시락을 먹는 남녀 학생들이 보였다. 그들은 낯선 이방인에게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한국의 대학들의 시설과 비교는 할 수 없지만. 건물들은 매우 오래되고 낡았지만, 수십 년 된 나무들과 어우러져 세월의 멋을 더하고 있었다.

미술을 전공하는 한 학생은 나를 자신이 공부하는 강의실 및 작업실로 안내해주었다. 작업 과정과 미술 재료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지만, 학생들은 열정적으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또 방문한 외부인에게 궁금증 등등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교정 곳곳에 놓인 조각 작품들 역시 학생들의 작품이었다. 담으로 구분되어 있어 다른 단과대학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나는 타고르가 꿈꿨던 교육 공동체의 일부를 느낄 수 있었다.

타고르는 전통적인 교실 교육에서 벗어나 자연을 교실로 삼았다. 그는 자연과의 조화와 전인적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하고, 인류애와 상호 이해를 배우기를 바랐다. 이곳에서 만난 학생들의 순수함과 예술에 대한 열정은 그의 교육 철학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산티니케탄은 단순히 조용한 도시가 아니라, 타고르의 예술적 비전과 따뜻한 인류애가 살아있는 특별한 곳이었다.

R0001937.jpg 오랜 역사의 아름다운 대학교정, 학생들
R0001956.jpg 학생들 작업실
R0001963.jpg 나를 대학 안으로 안내해 준 미술전공 4년차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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