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치 곰파의 새벽
레(Leh)에서 서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알치 마을은 버스로 2~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조용한 마을입니다. 새벽녘, 아직 해가 완전히 솟아오르기 전의 서늘한 기운이 마을을 감싸고 있을 무렵, 알치 곰파 옆 좁은 골목길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그 풍경 속에서, 고요를 깨는 낮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바로 한 남성이 익숙한 손길로 마니차를 돌리는 소리입니다. 삐걱거리는 마니차의 나무 손잡이를 잡고 한 바퀴, 또 한 바퀴 돌리는 그의 모습은 잠에서 덜 깬 나른함보다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니차가 돌아갈 때마다 '옴마니반메훔'이라는 낮은 읊조림이 새벽 공기에 스며들며 멀리 퍼져나갑니다. 그의 얼굴에는 삶의 무게와 하루를 시작하는 비장함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곧 밭을 갈거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고된 노동을 시작하려는 참일 겁니다. 마니차를 돌리는 그의 손길은 거칠지만 조심스럽고, 그가 잡고 있는 마니차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그의 모든 염원을 담는 신성한 매개체처럼 보입니다.
그의 눈에는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들, 병상에 누워 있는 부모님, 그리고 오늘 하루도 무사해야 할 아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는 듯합니다. 마니차에서 울리는 둔탁한 소리는 마치 그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바라는 염원처럼 울려 퍼집니다. 그는 단순히 가족의 안녕을 빌 뿐만 아니라, 척박하고 거친 라다크의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건강과 평화를 함께 기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매서운 바람과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굳건하게 삶을 이어나가는 라다크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그의 기도 속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반복되는 이 의식은 그에게 단순한 일상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 신성한 순간입니다. 어둠이 걷히고 첫 햇살이 골목을 비추기 시작할 때까지, 마니차는 쉼 없이 돌아갑니다. 알치 곰파 옆 골목을 가득 채우는 마니차 소리는 라다크 사람들의 묵묵한 삶과 깊은 신앙을 대변하며, 그들의 굳건한 정신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그 소리는 단순히 종교적 의식을 넘어, 삶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숭고한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