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에 갇힌 히말라야의 보석
2024년 7월, 다르질링(Darjeeling)으로 향하는 여정은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산티니케탄 (Bolpur Shantiniketan) 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실리구리(Siliguri)에 담날 아침 도착한 후, 나는 낡은 쉐어드 지프차에 피곤한 몸을 욱여넣었다. 운전사를 포함해 아홉 명의 낯선 이들과 서로의 어깨에 기대며 꼬불꼬불한 산길을 세 시간이나 올랐다. 흔들리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차밭이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에서 점차 가파른 산악 지형으로 바뀌어 갔다. 멀미약 대신 차의 요동에 몸을 맡긴 채, 나는 다르질링이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이할지 상상했다.
도착한 다르질링은 산사태라도 나면 한순간에 쓸려 내려갈 듯, 가파른 경사면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중심으로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건물들은 외지인이 보기에는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안개와 비가 오락가락하는 우기철이라, 도시는 더욱 신비롭고도 불안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쏟아지는 소나기 속에 네팔식 짐꾼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짐을 옮기는 그들의 모습은 이 도시의 험준한 지형을 단적으로 말해주었다.
짐꾼에게 젖은 배낭을 맡기고 급하게 경사진 골목길을 따라 내려갔다. 고도가 높아져서일까, 약간의 어지러움과 함께 낯선 기분이 온몸을 휘감았다. 숙소 안은 습기가 가득했고, 창밖으로는 온통 안개뿐이었다. 오랜 여행으로 단련된 나였지만, 다르질링의 첫인상은 예상 밖의 날것 그대로였다. 낯선 도시에 발을 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이 두려움과 불안감은 늘 익숙해질 듯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하루만 지나면 이 모든 낯섦이 곧 익숙함으로 변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안갯속에서 만난 다르질링의 유산 - 다르질링의 첫인상이 불안했던 만큼, 그곳에 숨겨진 이야기들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다르질링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도시가 아니다.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은 이곳의 서늘한 기후에 매료되어 차밭을 조성했다. 그들의 손길이 닿은 경사면은 세계 최고의 다르질링 홍차를 생산하는 보물 같은 땅이 되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차는 '차의 샴페인'이라 불리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빅토리아 양식의 건축물과 토이 트레인(Toy Train)이라 불리는 다르질링 히말라야 철도는 그 시절의 영광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작고 귀여운 장난감 트레인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다.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느릿하게 산길을 오가는 작은 기차를 보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둘째 날, 나는 이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차밭(Happy Valley Tea Garden)을 직접 찾아 걸었다. 안개에 가려 기대했던 전경은 볼 수 없었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본 차밭은 거대한 계단처럼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차를 생산하며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눈으로 확인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공장에서 오래된 가공 기계들을 보며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져 온 다르질링 차의 역사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또, 히말라야 산맥의 장엄한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다르질링의 타이거 힐. 특히 일출 시간에 이곳을 찾으면, 에베레스트와 칸첸중가 봉우리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만들어내는 황홀한 풍경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이 경이로운 장면은 그 어떤 사진으로도 담을 수 없으며, 여행의 가장 특별한 순간이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내내 이어진 비와 짙은 안개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직접 보지 못한 채 돌아섰다. 나는 이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언젠가 다시 찾기를 기대한다.
우연이 만들어낸 특별한 만남 - 다르질링의 거리는 다양한 얼굴들을 만나는 곳이다. 인도뿐만 아니라 네팔, 부탄, 티베트 등 여러 민족이 모여 살고 있다. 나와 비슷해 보이는 친숙한 얼굴들이 많아 낯선 이방인으로서의 거리감을 좁혀 주었다. 경사진 골목을 오르내리며 만나는 그들의 미소는 다르질링의 불안한 첫인상을 지우고, 따뜻한 온기로 마음을 채워주었다.
숙소에서는 뜻밖의 인연도 만났다. 나와 같은 방향(북동인도)으로 여행하던, 델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친구였다. 북동인도 아삼 지역에 대한 생태 연구를 위해 이곳에 왔다는 그는, 다르질링 이후, 앞으로 내가 가려던 아삼, 나가랜드 등의 북동인도 지역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도 사람 같지 않은 친숙한 생김새의 그 친구 덕분에 나는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여행은 늘 그렇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하지만,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곳의 공기, 사람, 역사와 익숙해진다. 다르질링의 첫날, 안개와 함께 시작된 나의 여정은 결국 불안감을 떨쳐내고 새로운 만남과 기대감으로 가득 채워졌다. 눅눅한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흐릿한 불빛들을 바라보며, 나는 내일의 다르질링, 그리고 또 다른 여정을 기대해 본다.
마지막 날 이른 새벽에 북동인도로 들어가기 위해 실리구리(Siliguri) 근처에 있는 NJ(New Jalpaiguri) 역으로 가는 쉐어링 택시를 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나는 내일 아쌈주의 구와하티(Guwahati)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