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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니Tini Sep 24. 2023

우리의 멍청함을 사랑했지

샌디에이고 어학연수 중 만난 친구들에게 

 그때의 선택이 1년, 아니 보다 더 먼 하루들을 바꿀 줄 알았더라면. 망설이지 않고 다가갔을 텐데. 너희들만 생각하면 자꾸만 그리움에 갇히는 것 같아. 그래서 행복했던 날들을 감추게 돼. 


 우리의 멍청함을 사랑했지


 11개월의 어학연수가 끝난 후 기다렸다는 듯이 샌디에이고에서 만난 친구들을 차례로 방문했다. 남들에겐 모든 어학연수지가 좋았다고 너무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연거푸 말했다. 그랬지만, 노력했지만 돌아보면 샌디에이고가 가장 그리운 사람은 내가 아닐었을까 싶다. 


 2달간의 미친 일정의 유럽 여행으로 덴마크부터 스위스까지 10명이 넘는 친구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코펜하겐에서 프랑크푸르트로, 베니스에서 루체른으로. 많게는 3-4번의 기차 환승을 견디고 가끔은 빈좌석이 없어 캐리어 사이에 쭈그려 앉아야 했었지만 곧 다시 친구들을 볼 수 있었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 


 다시 만난 친구들은 익숙한 동네에서 여전한 듯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어른이었다. 덴마크에 사는 친구는 새벽 3-4시에 일어나 자전거로 40분 걸리는 일터를 통근하고 스위스에 사는 친구는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 오후 6시에 지친 몸을 끌고 왔으며 가장 어렸던 18살 친구는 주 3-4일을 근무하는 어른이었다. 


 해피아워의 1달러인 맥주를 20잔씩 잔뜩 주문하던 배짱들은, 전날 파티로 수업을 빼먹던 게으름은, 비치발리볼을 하며 서로의 실력에 야유를 해댔던 짖꿎은 은, 액티비티에 서로 이기겠다고 난리를 피우던 장난들은, 마트에서 산 맥주가 들킬까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던 약삭빠른 아이들은, 함께하던 우리의 멍청한 순간들은 어디 갔을까? 


 항상 속을 모르던 친구가 보여준 하루의 진심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기억이 되었다. 그날은 맥주 한 팩을 숨겨 친구방에 들고 와서는 남자애들 3명과 이렇게 놀고 있을 때였다. 술을 안 마셨던 나 하나를 제외하곤 시합하듯 재빨리 술을 마셔대던 친구들은 슬슬 올라오는 취기에 나른해진 정신으로 어학연수 이후의 우리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던, 지속되기 어려운 이 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으로 끝이 예견된 이 관계가 가끔은 힘에 부쳤다. 친구의 날이 선 말이나 무례한 행동에 짜증이 나려다가도 평생에 몇 번이나 더 볼까 싶어 참았고 문화와 언어를 떠나 죽이 착착 맞아 행복했던 날에도 다시 이 순간이 돌아올 수 없음을 알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모두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었고 가끔 받는 상처도 감사와 기쁨으로 넘기는 사람이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만난 이들을 과연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사실 친구들이랑 노는 게 재미없더라. 빨리 캠퍼스로 돌아오고 싶었어.”

 “진짜?”

 “응 여기가 더 재밌더라. 다시 돌아가면 예전의 나로 다시 돌아가겠지.”


 어학연수 중 1주일의 방학이 주어졌는데 나와 덴마크 친구는 Las Vegas에서 다시 만나 수영장에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는데 이 말을 꺼낸 친구는 스위스에서 친구들이 놀러 왔었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아 늘 속마음이 궁금했던 그의 말은 큰 의미로 다가왔다. 


 우리는 무엇을 그리 사랑했던 걸까? 서툰 제2언어를 써가며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했던 우리는 뭐가 그리 행복했을까? 영어라는 서로 비껴갈지도 모르는 어중간한 실력으로 나누었던 대화들, 우리는 서로를 평생 다 이해할 수 없을 텐데. 내가 행복했던 것만큼 그들도 행복했을까? 


 친구들에게 우리의 기억이 너무도 작다고 느낄 만큼 앞으로의 삶에 행복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가끔 어딘가 샌디에이고랑 닮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면 그 추억을 돌아보며 인생에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너무 그리워하지 않고 웃어넘길 수 있기를. 그리고 시간과 기회가 닿아 우리가 다시 한번 어제처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보고 싶은 친구들이 많기에, 우연이 아닌 운명을 믿는 정이 많은 내겐 친구들이 조금 더 그리울 것 같기에. 이 글 속에 그리움과 사랑을 숨겨 두려고 한다. 행복했던 순간을 오래 쥐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에 아마도 오랫동안 그리워할 것 같다. 


내 이름은 지웠다.


 P.S. 사실 나는 아직도 네 편지를 꺼내기만 해도 눈물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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