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설 연휴에도 노동을 했다.
25. 설 연휴에도 노동을 했다.
설날이다. 명절에 조상님들께 올리는 제사상은 생략하고 산소에 가서 지내기로 하고 집에서는 1년에 한 번 통합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시대의 흐름은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풍습 문화도 많이 변했다. 이미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묘원에 가서 성묘를 하고 오후 늦게 농원에 들어갔다.
오후 3시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4시는 다 돼서 들어갔다. 처남 가족과 둘째 처제, 막내 처제가 냉이를 캐서 둘러앉아 다듬고 있었다. 도란도란 사이좋게 냉이를 캐는 모습이 상상된다. 명절에 고모들과 함께 냉이 뜯는 기분이 어땠을까 궁금했다. 요즘은 보기 드문 모습일 것이다. 조카들이 행복했을 거 같다.
둘째 처제는 어제부터 들어와 꽃밭을 더 만들고 꽃씨를 뿌렸단다. 난 남은 꽃밭을 삽으로 갈아엎고 평평하게 골라 놓았다. 자매들이 꽃씨를 뿌리느라 분주했다. 작년에 꽃씨를 많이도 모아놓았다. 사방이 온통 꽃밭이다. 꽃씨를 뿌린 대로 솟아오르면 엄청나겠다. 명소가 될지도 모르겠다.
2월 중순인데, 이렇게 일찍 뿌려도 되는지 모르겠다. 야생화라 괜찮을 거란다. 믿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씨앗이니 얼어 죽지는 않겠지 생각은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우리가 그렇다.
꽃씨를 뿌려 놓고 / 이*옥(둘째 처제)
봄바람 불어오니
꽃씨 날아갈까
걱정이네
참새 날아드니
꽃씨 다 먹어치울까
걱정이네
별빛 따라 이슬 내려앉으니
꽃씨 추울까
걱정이네
갑자기 추워지니
꽃씨 얼어 죽을까
걱정이네
보고 싶은 마음에
너무 성급하게
꽃씨를 뿌렸구나
힘들어도 살아다오
아쉬웠던 마음
다시 꽃 피울 수 있게
봄에 할 일은 벌써 다 해놓은 기분이다. 6촌형과 통화해보니 5월 초에 고추, 토마토, 파프리카, 가지 등 농작물을 심으면 된단다. 모종은 조금만 추워도 냉해를 입을 염려가 있어 5월 5일 어린이날을 기점으로 심는단다. 작년에는 꽃 심느라 정신 팔려 5월 중순에 좀 늦게 심었다. 하여튼 잘 자라서 제법 수확하여 잘 따먹었다.
3곳 이웃에게 명절 선물을 돌렸다.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이다. 지난 1년 동안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고맙다는 인사이기도 하다.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막내 처제가 이것저것 챙겨 왔다. 몸에 좋은 건강식품도 챙겨 왔네. 일하면서 먹자고 농원에 보관해두었다. 모두 한 개씩 맛을 보기도 했다. 건강식품도 챙겨 먹고 힘을 내서 열심히 일하고 고맙게 먹자고 했다.
냉이 밥과 갈비찜으로 저녁을 먹었다. 먹는 도중에 막내 처제가 누룽지를 긁어 내 입에 쏙 넣어주었다. 사랑받는 기분이랄까 기분이 참 좋았다. 우리 막내 귀엽다.
식사 후 ‘손목 맞기’ 고스톱을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막내 처제가 붉게 물든 팔뚝을 보여주며 재미있어했다. 어쩌다 이런 놀이를 하면 즐거울 것이다. 다음엔 자치기를 한 번 해볼까? 보름엔 모여 윷놀이도 해야겠다.
난 화덕에 불을 피우고 있는데 처남 딸이 쓰레기를 태우려고 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가 너무 행복해한다. 딸들 보면 너무 좋아 입이 찢어진다. 힘든 시간에도 너희들 끌어안고 잘 견디었다. 너희들 잘 커줘서 고맙다.” 조카가 눈물을 흘린다. 많은 생각이 스쳐가나 보다. 살면서 힘든 시간들이 많았겠지.
“좋아요. 아빠가 행복해져서.. 사는 활력을 찾았다고 할까요? 고모들도 행복해 보여요.”
“그래 맞다. 우리는 함께 나누면서 행복해질 거야.”
아내가 쓰레기 들고 오는 거 보더니, ‘사랑 둥이’ 오신다고 해서 웃었다. “왜? 사랑 둥이야” 했더니 “큰 고모가 제일 사랑스럽죠.” 한다. 나이가 64세인데 사랑스럽다니 기분은 좋다.
농원에서 처남 큰 딸과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었다. 오 남매의 낙원을 만들어 가니 조카와 얘기를 나누는 기회도 생기는구나.
설 이튿날도 오전에 근무하고 오후 3시에 농원에 들어갔다. 처남과 둘째 처제가 들어가 나를 불러들인다. 할 일이 많단다. 아내는 심심하면 가서 일하란다. 돈은 자기가 벌겠다면서. 맞다. 난 심심하면 일해야 된다.
둘째 처제와 난 들어가는 길가의 덤불을 걷어내는 작업을 했다. 꽤 길었다. 처음엔 코스모스 씨를 뿌린다고 덤불을 정리하자고 해서 일부만 하는 줄 알고 시작했는데 처제는 농원 들어오는 입구부터 길가에 다 뿌릴 생각이었다. 일을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 아내와 똑같다. 난 그들이 원하면 다 해줘야 하는 마음이라 열심히 덤불을 다 걷어냈다.
처남은 예초기를 들고 지저분한 덤불을 제거하고 아래 남의 밭을 경작할 목적으로 지저분한 풀을 다 깎아내고 불태웠다. 작년에 그 부분은 남겨놓고 고구마를 심었기에 우리가 뭐라도 심어보고자 욕심을 부린다. 경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일을 저지른다. 죽 쑤어 개 주는 거 아닐는지도 모른다.
늦은 밤까지 일을 하고 처제가 떡라면을 끓여주어 주린 배를 채웠다. 노동을 한 후의 식사는 무엇이든 꿀맛이다. 우리 세 사람은 일을 보면 미친 듯이 하는 거 같다. 열정이 비슷하다. 죽어라 일만 한다. 노동 신이 들어있나 보다 하고 농담한다.
밤하늘의 별이 유난히 빛난다. 이상하리만치 농원 머리 위에 옹기종기 모여 비춰준다.
다음 날도 농원에 들어갔다 처남 혼자 있다. 둘째 처제는 들어오기로 했었는데 서울에 있는 작은 아들이 와 있으니 맛난 거 해주느라 못 오는 모양이다.
가는 길에 농자재 가게에 들러 알루미늄 지게와 긴 지지대 한 묶음을 사 갔다. 어제 둘째 처제가 지게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무를 해다 화덕에서 불사랑 하려면 필요하겠다고 나도 동의했다. 큰 지지대도 작년에 토마토 지지대가 작았다고 해서 간 김에 샀다.
처남과 같이 가파른 언덕에 팔레트로 깔아놓고, 난 삽을 들고 일을 시작했다. 뒷산에 꽃씨를 뿌린다고 해서 적당히 갈아엎었다. 그 사이 처남은 예초기를 메고 산을 정리했다. 영토 확장을 하는 기분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마사토를 퍼다 잔디 위를 덮고 평평하게 고르는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어두워졌다. 가로등과 조명등이 훤하니 계속 일을 했다.
둘째 처제가 들어와 저녁을 해줬다. 처남이 라면을 끓여먹던지 해장국을 사 먹겠다는 말에 가슴이 아려 밥해주러 들어왔단다. 평소에 사업상 밖에서 주로 식사하는 처남이 안쓰러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손수 따뜻한 밥을 해주고 싶었단다. “그놈의 해장국 소리만 안 했어도 안 들어왔는데” 한다. 마음이 찡했다. 형제들끼리 이런 맘을 나누고 살아야 했는데 다들 살기 바빠 헤아릴 수 없었지. 숯불 불고기를 해줬다. 열심히 일한 동생과 형부를 위해 에너지 보충해주려 선택한 메뉴라는 걸 안다. 난 복이 많다. 처제한테 맛있는 음식을 너무 많이 얻어먹는다. 감사한 일이다. 고기도 많이 먹고 밥도 많이 먹었다. 역시 육체적 노동일을 해야 많이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