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섬집 아기
http://youtu.be/7hDLYa5xn0o (계피-섬집아기)
아이가 셋인 집에서 엄마 품을 독차지하는 날은 많지 않았다. 엄마가 잠시라도 노곤한 몸을 뉘면 아이 셋은 달려들어 엄마의 양 팔을 베개 삼아눕기도 하고 가슴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젊은 엄마의 품은 적당한 살집으로 푸근했고 양팔은 다부지게 느껴졌다. 그 품 안에 있다 보면 마치 외부 세계와 단절된 듯 고요하고 안전했다. 엄마의 시큼한 들숨과 날숨이 내 얼굴에 박자를 타며 닿다가 그것이 자장가가 되어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다.
어린 나를 재우기 위해 엄마는 국민 자장가인 섬집 아기를 불러주시곤 했다. 하지만 이 노래가 끝날 즈음엔 엄마의 의도와는 다르게 내 얼굴은 항상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왜 우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처음 느끼는 저릿저릿한 감정을 말로 풀어내는 것은 어린 나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잠을 재우지 못하고 아이를 울리는 이 노래가 자장가가 될 수 있는지 어릴 적부터 의문이었다. 구슬프게 느껴지는 멜로디에 아기를 집에 혼자 두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하러 간 엄마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자장가. 섬집 아기는 성인이 된 나에게도 눈물 버튼이 되어 매번 나를 울렸다.
유년 시절 나의 마음 한편에는 엄마가 나를 두고 먼 곳으로 훌쩍 떠나지 않겠느냐는 두려움이 있었다. 아이 셋에 시어른 둘을 모시며 사는 엄마는 항상 고단해 보였다. 생활력이 강하고 배우는 것에 거리낌이 없던 엄마는 생계에 도움이 되고자 언니를 유치원에 보낸 후 어린 동생을 업은 채 보험회사에 교육을 받으러 가곤 했다. 나도 두어 번 따라가긴 했지만,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오가는 것이 꽤 부담이었으리라. 잠깐 다녀온다며 과자를 쥐여준 뒤 외출한 엄마를 방에서 기다리며 1분이 1년처럼 느껴지던 시간을 견뎠다. 마침, 집으로 전화했던 이모가 집에 내가 혼자 있는 것을 알고 “너희 엄마 너희가 너무 힘들게 해서 도망갔다!” 하며 자주 하던
레퍼토리의 장난을 쳤는데 평소엔 넘겨 들었던 이모의 말에 진짜 엄마가 멀리 떠났다고 착각한 나는 방에서 혼자 울음을 터뜨렸다. 급하게 귀가한 엄마를 보며 왜 이제 왔냐고 엉엉 울던 나를 겨우 달랜 뒤 엄마는 이모에게 전화해 괜한 장난을 쳐서 애를 놀라게 했다며 핀잔을 줬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에 섬집 아기를 들을 때마다 울음이 터져 나왔던 것은 섬집 아기와 나를 동일시했던 마음도 있었다. 섬집 아기가 집에서 혼자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파도 소리를 들으며 혼자 잠이 들다니, 엄마가 언제 올지 몰라 불안하지는 않았을까? 너무 안쓰러워 옆에 나란히 누워 ‘나도 여기 있어’하며 토닥여주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싱어송라이터 계피의 동요집 ‘빛과 바람의 유영’ 앨범 소개에서 어린 시절 많이 불렀던 동요들은 아름다운 멜로디 속에 어떤 그림자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계피의 목소리로 담담히 전달되는 섬집 아기를 듣다가 2절의 가사를 듣고 눈물 버튼이 다시 눌리고 말았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성인이 되어 듣게 된 섬집 아기에서 ‘나’는 아기가 아닌 아기의 엄마가 되어 노래를 듣고 있었다. 섬집 아기가 걱정되어 다 못채운 굴 바구니를 대충이고 급하게 모랫길을 달려오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집에 아이를 혼자 두고 외출한 엄마의 조바심과 귀갓길의 발걸음은 얼마나 빨랐을지, 혼자 있는 아이를 보며 미안함과 죄책감이 엉켜 붙었을 마음은 어땠을지. 그 마음이 절절히 공감되어 섬집 아기는 성인이 된 나를 울렸다.
유년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당시의 엄마 나이가 되어서야 이해하는 것들이 쌓여간다. 켜켜이 쌓인 인생을 이해하려면 얼마나 더 나이를 먹어야 하는 걸까?
사진: Unsplash의Joel Vod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