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무아 May 17. 2024

남친 여친 사친~!

 그때, 그 시절로ᆢ

 부산 친구들이 준비해 놓은 해운대 숙소. 바로 앞은 해변이었고 바로 옆은 동백섬이었다. 늦은 밤과 이른 아침, 고향인 부산의 바닷가는 너무나 친숙한 풍경이었다. 바다도, 하늘도, 모래밭도ᆢ.

호텔 브런치 뷔페를 마치고 오늘의 행사장인 서면으로 향했다. 제97회 정기총회, 롯데호텔 3층 크리스털룸, 10시 30분.

 1층부터 머리가 하얀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한 방향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눈만 마주쳐도 서로 따뜻한 웃음을 주고받는다. 이름은 총동창회이지만 평준화가 실시된 1977년도 이후 입학생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60대 후반 이상 할머니들의 잔치다. 예약 참석 인원이 천 명이라고 한다. 할머니들의  열정과 의지가 대단하다.


 첫 순서는 애국가 제창이다. 일제히 기립하여 우렁차고 또렷한 노랫소리로 실내를 꽉 채웠다. 뭉클해지는 마음과 뜨끈해지는 눈시울.

 선배들에게 앞자리가 배정되고 무대로부터 까마득한 제일 뒷자리가 거의 막내 격인 우리들 몫이다. 단상에서는 현직 교장 선생님과 교육감의 축사와 신임 회장 취임사, 축가, 감사패 증정 등이 진행되고 있지만 앞뒤 자리, 옆자리, 끊임없이 주고받는 수다로 장내는 어수선하다.

 1부 마지막 순서인 교가 제창 시간. 수다를 멈추고 다 같이 일어나 늠름한 선배 지휘자의 당당한 몸짓을 따라 힘껏 교가 1,2절을 제창한다. 무대 옆 화면에 떠오르는 모교의 영상들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학교의 옛날 모습과 교복 차림의 여고생들이 화면을 채운다. 50년도 더 지난 그 시절 그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점심이 끝난 후 2부 행사에서는 구순, 팔순, 칠순 기수의 케이크 커팅 및 축하 무대가 펼쳐졌다. 구순이라, 팔순이라ᆢ. 10년 후, 20년 후, 우리들도 저런 모습으로 저 자리를 빛낼 수 있을까? 건강하고 성실한 노익장 선배들이 자랑스럽고 작년에 칠순 무대에 올라 기념 공연을 했던 젊은 우리 동기들이 사랑스럽다. 무대를 향해 무조건 감동의 박수 물결을 띄워 보낸다.

 뒤이어 44회, 45회, 47회, 54회 졸업생들의 댄스경연대회 우수상수상기념 앙코르공연이 펼쳐졌다. 우리 44회 동기들은 두 작품을 선보였다. 음악은 <You don't have to say you love me> <Turn It up>. 우아한 춤과 경쾌한 춤. 춤 종목은 라인댄스라고 했다. 우리는 무대 바로 앞까지 나아가 두 팔을 높이 흔들며 열렬히 응원하고 뜨겁게 호흡을 맞추었다. 최우수상을 수상했다는 54회의 공연은 압도적으로 훌륭했다. 역시 젊음은 창의적이고 유능하고 힘이 넘쳤다.


 오후 3시 30분, 초청가수 인순이의 공연으로 또 한 번 들썩거렸던 마지막 순서와 행운권 추첨까지 끝났다. 상기된 표정의 할머니들은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또다시 돌아올 1년 후를 기약하면서ᆢ.


 해운대 숙소로 돌아와 짐들을 정리하고 저녁 바닷가 산책을 끝낸 후 우리들만의 잔치가 막을 올렸다. 서울 친구 11명, 부산 친구 30여 명, 40명을 넘는 할머니들이 방 3개짜리 호텔 거실과 주방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가운데에 검은 비닐이 쫙 깔렸다. 식탁 대용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뛰어난 행동력으로 바로 저녁상이 차려졌다. 주위 맛집에서 배달되어 온 싱싱하고도 푸짐한 생선회와 초밥이 검은 비닐 식탁 위에 한가득 차려졌다. 모두들 젓가락질에 바빴던 것도 잠시, 그릇들이 비자마자 2차 코스 요리가 바로 등장했다. 순대, 떡볶이, 어묵ᆢ. 그마저 비어 갈 때 다시 나타난 것은 아이스크림 봉투와 술과 안주.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는 커다란 검은 봉투 안에서 브라보콘 하나를 집어 들었다. 몇 년 만에 먹어보는 콘 아이스크림인가? 달콤한 아이스크림 내용물과 바삭한 껍질 콘까지 모든 절제를 벗어던져 버리고 호강하는 미각이었다. 함포고복, 부른 배를 두드리며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시작했다.


 채워진 술잔을 마주치며 건배를 외쳤다. 구호는 남친여친사친~~!! 남은 친구가 여전한 친구이며 죽어서까지 친구라는 깊은 뜻.

 첫 게임이 시작되었다.

 "아이엠그라운드 이름 대기 짝짝~!"

 서울 친구는 부산 친구 이름을 부르고 호명된 부산 친구는 서울 친구 이름을 부르기. 일사불란하게 4박자로 이어졌지만 걸리는 이가 있기 마련. 성화에 못 이겨 벌칙으로 노래를 부르고 도저히 못 부른다는 친구는 엉덩이로 이름을 쓰고ᆢ.

 2024년 해운대 호텔의 한 공간은 1971 고교생 수학여행 여관방 풍경으로 되돌아갔다.

 마지막은 끼 있는 친구들의 독무대. 간드러지게 노래를 부르고 매끄럽게 춤을 추고 <단장의 미아리고개> 애달픈 노래에 맞추어 천연덕스럽게 애끓는 2인극을 해내었다. 방안을 웃음 도가니로 몰고 갔다. 어쩜 이 나이까지 그때 그 모습들을 잃지 않고 있는지. 

 직접 뜨개질한 설거지용 수세미를 티를 내지도 않고 한순간 재빠르게 나누어 주는 섬세함. 남은 몇 개를 눈에 띄는 대로 한 개씩 더 몰래 손에 쥐어 주며 "너에게만 주는 특별 보너스야!"라고 귓전에다 속삭이는 센스. 그 장면은 내 마음속에 오래 기억될 것이다. 나도 모르게 웃음 짓게 할 것이다.

 좀 더 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부산 모임. 고향을 떠나지 않고 뿌리내린 한 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만이 지니는 넉넉한 여유가 이런 것일까?


 이제는 이별을 할 시간. 마구 엉켜 돌아가며 서로를 껴안고 등을 토닥였다. 안녕을 기원하고 재회를 약속했다. 석별의 정을 나누는 훈훈한 덕담과 따뜻한 웃음들. 밤은 깊었고 부산 친구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하룻밤의 소박했지만 뜨거웠던 축제가 끝났다.

 부지런하고 헌신적인 친구들의 야무진 손길 아래 모든 일회용 식기들과 음료수 병들이 종류 종류 차곡차곡 분류되고 깔끔하게 씻겨서 완벽하게 재활용 처리되었다. 역시 똘똘이들이다.


 이튿날 아침 일찍 짝을 지어 동백섬을 돌고 해변을 걸었다. 7시 30분부터 문을 여는 카페의 창가 자리에서 아침 바다에 눈길을 던지고 담소들을 나누었다. 모닝커피랑 쿠키는 엄마 친구들이랑 쓰라고 줬다는 딸의 스벅상품권카드로 친구 P가 쏘았다.

 오전 9시, 부산 임원진들이 다시 찾아왔다. 근처 맛집으로 데려가 전복죽과 비빔밥으로 아침 식사를 대접해 주었다. 아침에 주문배달시켰다는 따끈한 영양떡 한 팩과 간장을 포함한 양념 세트, 미역국 팩 등이 선물로 안겨졌다.

 2박 3일에 걸친 부산 여행이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저장되었다.


 다음날, 서울 회장은 73명이 들어 있는 서울, 부산 동창 카톡방에 인사글을 올렸다.

 ㅡ부산 동기 친구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10대를 함께 보냈다는 이유 하나로 70이 되어서까지 이렇게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다는 게 꿈만 같네요. 사흘 친정 방문 기간 동안 부산 동기들이 보여준 환대,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남친여친사친의 구호처럼 오래오래 만나고 행복한 시간 많이 함께합시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不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