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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씨 Dec 30. 2023

밥 많이 먹는 남편과 밥 안먹는 남편

이게 내가 결혼 했던 사람인가?


저는 음식을 먹는 게 좀 많이 특이합니다.

식성이나 이런 것보다 몸을 많이 쓰거나 운동을 하면 굉장히 많이 먹어요.

그리고 몸을 안 쓰고 일을 시작하면 굉장히 적게 먹고요.


이 편차가 어느 정도냐 하면 운동을 하고 재활샵을 할 때는 하루 5끼 중간에

500ml 우유를 수시로 마시고 한끼당 3인분 정도(식당 기준 메뉴 3개 정도) 먹고

집에 들어가면 매일 고기를 1kg 정도 야채와 함께 먹고 잤습니다.


그런데 와이프는 처음 만났을 때는 한 끼에 견과류 3-5알 정도 먹고

밥도 시키면 쪼금 먹고 하더라고요.

전 처음 와이프 집에 갔을 때 유통기한 지난 라면과 치즈가 된 우유는 살면서

처음 봤어요. 그런 사람이다 보니 저랑 밥 먹으러 가면 잘 적응을 하지 못했었어요.

그리고 정식으로 만나고 1년 후 즘 아이가 생겼으니 점점 먹는 양이 늘기 시작했지요.

임신 후에도 맨날 제가 밤마다 들어오면 고기 굽고 하니 옆에서 같이 구워주는 고기 몇 점이랑

야채를 먹기 시작하니 이미 양이 제법 늘어 있었어요.


가장 신기한 건 우유와 라면을 안 먹던 사람이 우유를 마셔야 입덧이 멈추고

라면을 자꾸 찾아 먹기 시작했어요. 이 두 가지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이랍니다.

와이프는 1000ml 우유에 빨대를 꼽아 가지고 다니며 마셨습니다.


당시에 제가 직접 와이프의 산모 운동을 짜서 봐주고 있었는데 다른 수업이 있을 때면

와이프 혼자 제가 있던 샵의 1층에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과 삼각김밥 같은 것을 먹고 오곤 했어요.

당시에 전에 잘 먹던 몇 가지 음식들을 먹으면 입덧을 했는데 라면에 삼각 김밥은 편하게

잘 먹더라고요.

그래서 하루는 같이 가서 편의점 음식을 사고 제가 먹을 것도 고르고 있는데 편의점 아주머니가

갑자기 등짝을 한대 때리시면서 애 엄마를 이런 음식을 먹인다고 혼을 내셨어요.


걱정해 주시는 거니 고마웠지만 뱃속 아기가 찾는 음식이라 이걸 먹어야 입덧을 안 한다고 하니

다른 먹을 것들을 더 챙겨 주시더라고요. 임산부는 잘 먹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챙겨주시는데

요즘 들어 그때의 따듯한 사람들의 온정이 그립네요. 


그렇게 와이프는 몸무게가 절 만났을 때 보다 약 30kg 정도 불어 났고 배가 고플 때 먹지 않으면

예민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원래 하던 일을 다시 준비해서 사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일을 시작하니 식욕이 확 사라지더라고요. 그리고 운동을 못하면 배도 나오고 몸 관리가 힘드니

제가 다른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는 식사 루틴이 있어요.


아침은 아주 가볍게 혹은 간단한 음료, 점심은 원하는 대로, 저녁은 잠들기 6시간 이전에 그리고

그 이후는 거의 안 먹거나 견과류 몇 알 혹은 부피가 크지 않고 단단하지 않은 두부 아니면

차를 마셔요.

이렇게만 먹어도 체중이 유지되고 다시 운동을 하면 기존의 상태로 빠르게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이제는 와이프는 끼니 때가 되면 음식을 먹어야 하고 저녁이 되면 술을 좋아하니 맥주나 소맥과 함께

야식을 먹는 습관이 생겨 버린 거예요. 그런데 저는 처음에는 같이 먹어주다가 점점 줄어서

딱 제가 먹는 양만 먹고 안 먹고 집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도 안 좋아 해서 옆에서 같이 수다만

떨기 시작했죠. 전 집에서 술을 한 모금만 마셔도 밖에서 맛있던 술도 너무 맛이 없어 못 먹겠더라고요.


제가 일하면 음식을 안 먹는 걸로 사건이 몇 가지 있었는데


한번은 와이프가 산 후 우울증이 오는 것 같아 아이를 며칠 맡겨 놓고 일본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저는 골동품이나 옛날 물건을 좋아해서 전통시장 같은 곳을 뒤지며 그런 것들을 보기도 하고 사고 있는데

와이프가 배가 고프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둘러보니 이제 한 2-3집만 더 보면 다 볼 것 같아서

"마저 보고 가서 밥 먹자."라고 말했는데 잠시 뒤에 와이프가 눈물을 글썽이며 저한테 소리를 빼액 질렀어요.

"내가 아까부터 배고프다고 계속 말했잖아."

들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바로 멈추고 밥을 먹으러 갔죠. 욕먹으면서 계속 쇼핑을 할 순 없잖아요.

지금도 종종 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한번은 직원들과 조금 오지로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고산 지대에 조금 강행군이기도 하고

워낙 넓은 지역을 돌아다녀야 해서 직원들이 힘들었나 봐요.

뭐 저야 항상 그렇게 다니니 아무 생각 없이 첫날 일정을 마치고 다음날 나왔는데

직원들마다 가방을 하나씩 메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가방이냐 물어보니

다들 가방 안에 물과 비상식량 등의 간식을 챙겨서 나온 거예요.

무겁게 뭐 하러 가지고 가냐 했는데, 이 가방이 없으면 자기들이 죽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까지도 유난 떤다고 생각을 했지 제가 안 먹고 다닌 다는 생각은 잘 안 했어요.

뭐 일 마치고 편하게 맛있는 거 먹으면 되잖아요?


그런데 결정적으로 딸아이가 3살? 4살? 즈음 되었을 때였던 것 같아요.

당시에 베트남에서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제 현지 사무실로 갈 일이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가 너무 우는 거예요. 그래서 졸린가 하고 안아도 줘보고 기저귀도 보고 다 했는데

그냥 계속 우는 거예요. 원래 잘 우는 아이가 아닌데 목소리도 큰 아이가 너무 우니까

누가 신고를 했는지 현지 공안이 왔었어요. 제가 아이를 학대한다고 신고가 들어왔다고 왔는데

상황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은지 아이를 이리저리 보고 뭐라 뭐라 하더라고요.


베트남은 보통 집마다 아이들이 넘쳐나니 잘 아는 건지 물을 가져와서 마시게 하니 아이가 잠잠해졌고

그 공안한테 한 10분가량 잔소리를 엄청 들었습니다. 

전 베트남 말도 잘 못하는데 이상하게 왜 혼나는지는 참 잘도 들리더라고요.


그리고 다음날 또 같이 나가야 할 상황이 되어 나가려니 아이가 쪼르르~ 자기 냉장고로 가더니

가슴에 물통을 한 개 안고 나가는 겁니다.

그때 느꼈어요.

'아... 내가 뭔가를 할 때는 정말 뭘 안 먹는구나. 다른 사람도 좀 신경 써야겠구나. 이 작은 것도 살겠다고

물통을 챙길 정도면..' 하고 말입니다.


지금은 시간이 흐르니 서로 먹는 시간대에 패턴 등도 비슷해져서 그날 더 편안했던 사람이 음식을 준비하고

둘 다 힘들면 시켜 먹고 어디 여행을 가던 나가면 물이나 차도 텀블러에 준비해서 나가니

전처럼 먹는 걸로 힘든 일은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전 그때나 지금이나 안 힘든데 저랑 같이 간 사람들이요)


상대방이 배고프다 하면 잘 들으려 신경 쓰는 남편 그리고 아빠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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