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맛있어??
와이프는 술을 굉장히 좋아해요.
음... 어느 정도 냐면 매일 마셔요. 매일 맥주 한 캔이라도 아니면 소주 한, 두 병은 물처럼 마셔요.
그리고 저는 아주 어릴 때는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했지만 해외 출장 가서 가짜 술을 마시고
죽을뻔한 적이 있어서 그 뒤로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아요.
마시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한번 탈이 나면 거의 하루동안 계속 속이 울렁거리고 토하고
몸에 힘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자기 양 것 마시는 것은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둘이 연애를 할 때도 같이 술을 마신 기억이 거의 없어요.
뭐 결혼하고 나서도 제가 와이프한테 술을 따라주거나 같이 술을 마신 게 조금 과장하면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거 같아요.
마신다 해봐야 와이프는 자기 양껏 마시고 저는 맥주 한 병, 조금 컨디션이 좋으면 소주 한 병 정도
마시고 끝이니 게다가 술도 각자 따라 마시기 때문에 아마 저랑 술 마시는 건 재미가 없었을 것 같아요.
대신 저는 맛있는 집들을 많이 알고 있어서 술 마시기 좋은 집들을 데리고 가거나 제가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와이프가 좋아하는 안주들을 간단히 만들어 줬어요.
그리고 혼인신고를 하고 살림을 합치게 되니 매일 술을 마시는 여자를 보며 처음에는 신기했고
나중에는 이해가 안 됐어요.
'저 쓴 술이 뭐가 저렇게 좋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알콜 중독인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디 모임이나 술자리를 가면 술을 권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우리 와이프 술 엄청 잘 마셔!" 하며 와이프가 술을 마시고 전 안 마셔도 되니 편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제가 좀 나쁜 놈 같네요.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네요.
지금 우리 딸이 뱃속에 생긴 걸 알게 된 이틀 전 즈음 되었을 거요.
그날도 지인들 모임이 있어서 와이프와 함께 갔고 술 잘 마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
처음 소개받는 분들이 소주도 계속 따라주고 500잔에 소주를 잔뜩 넣고 소맥을 만들어 주시는 걸
홀짝홀짝 다 받아 마시고 왔는데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나와서 굉장히 좋다가 당황했던 기억이 있어요.
너무 걱정이 돼서 병원 가서도 이야기하니 선생님도 괜찮을 거라 하시고 아이도 잘 태어나서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아이도 생겼고 그냥 뱃속에 아이가 있으니 모든 걸 당연히 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병원에서 상담할 때도 흡연이나 음주가 너무 참기 힘들면 스트레스가 더 안 좋으니
조금씩 하는 게 더 낫다는 말도 들었었는데 다행히 흡연은 안 하고 있었으니 술이 문제였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가 생기고 나서 술 생각이 안 난다고 술을 전혀 찾지를 안더라고요.
제가 그냥 혼자 참는 거라 생각하고 무알콜 맥주를 사다 줬는데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는 마시지 않았어요.
한 가지 에피소드가 더 있는데 막 살림을 합쳤을 때 이야기예요.
친한 언니와 약속이 있다고 술을 마시고 온다 해서 제가 다 마시고 연락하면 데리러 간다고 했어요.
와이프가 운전을 하고 나가서 저는 택시를 타고 데리러 갔는데 그때 시간이 자정이 넘어서 12시 30분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소개해 주었던 양 갈비 집에 있다고 해서 갔는데 도착해서 전화를 하니 받지를 않는 거예요. 그래서 가게 쪽으로 들어가는데 가게에서 와이프가 나오고 있었고 술이 좀 취해 있어서 집에 가자고
주차는 어디 했냐고 물어봤지요.
그 음식점 건물에 주차를 했다고 해서 몇 층이냐 물으니 층수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키를 받아서 잠시 기다리라 하고 한 층씩 키를 누르며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지하 8층까지 있는 주차장을 하나하나 찾는데 끝까지 내려가도 차가 없는 거예요.
내가 잘못 찾았나 하고 왕복으로 3번을 더 찾아보고 와이프에게 차 여기 있는 거 맞냐고 물어보는데
술도 취하고 남편도 왔고 반 졸음 상태라 소통 자체가 잘 안되었어요.
저도 슬슬 짜증도 나고 잠깐 있어 보라하고 두세 번 더 왕복하며 찾아봐도 역시 없었습니다.
다시 와이프에게 가서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뭐라 했더니 저보고 "너 화낼 거면 집에 그냥 가!"라고 했어요.
그 집이 네 집이고 그 집이 내 집인데 같이 가야지 무슨 소린가 하며 그냥 택시를 불러서 집으로 갔어요.
그리고 다음날 술을 깬 와이프에게 차 어디 있냐고 물으니 역시 거기 있다고 말을 하길래
어제 상황을 좀 이야기해 보라고 했지요.
1차를 다른 데서 마시고 2차를 간 건데 그럼 차가 거기 있다면 음주 운전을 했다는 말이었어요.
다시 한번 물어보니 잘 생각이 안 난다고 하길래 그냥 1차를 마셨다는 집에 가니 가게 앞에
견인 스티커와 함께 와이프 차 번호로 견인 안내문이 붙어 있더군요.
저녁에는 식당가라 주차가 되지만 아침까지 차가 계속 있어서 차가 견인 되었던 거예요.
음주 운전을 한건 아니라 다행기이고 했고 그것도 모르고 한밤중에 지하 8층을 6번가량 왕복을 했으니
어이가 없었어요. 이때 결혼하고 처음으로 와이프에게 화를 냈던 것 같고 이 뒤로는
술 마시고 실수하는 일이 없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이런 일도 있고 아이도 생겼으니 전 정말 궁금해서 와이프에게 물어봤어요.
"술을 왜 매일 마셔? 알콜 중독 같은 거야? 아니면 우울증이 아직도 있어? 아니면 술이 그렇게 맛있어?라고
물어봤었는데 답은 술이 너무 맛있데요.
저로서는 이해 불가능한 대답이었어요. 살면서 분위기가 좋아 술을 많이 마신적은 있어도
술이 맛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 사람이라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제가 맛이 없다고 상대방도 맛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우선 머리로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갈 때면 와이프가 좋아하는 맥주랑 가끔 소주도 사가지고 들어갑니다.
임신 중에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무알콜 맥주를 사 갔는데
한 모금 마시고 술 생각이 안 난다고 괜찮다고 했어요.
지금은 전처럼 매일 마시진 않아요. 그냥 자주 마시고 양도 굉장히 많이 줄어서 옆에서 보면 그냥
물 마시는 거 같아요. 와이프가 술을 마시면 전 옆에서 차를 마시고 찻잔과 술잔으로 가끔 건배도 하고
이제는 어린 딸도 합세해서 2찻잔 1술잔으로 건배하며 같이 마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 초에 처갓집에 놀러 가서 처갓집 식구들이 모두 술을 좋아해 저도 평소보다 더 마시고 올라가는 길에 와이프는 임신 중이라 술을 안 마셔서 운전을 하고 저는 보조석에 앉아서 편안하게 멀쩡한?? 정신으로
장모님이 주신 식혜를 마시다가 긴장이 확 풀렸었나 봐요. 계속 마셨던 술이 한에 취기가 다 오는지
정말 한 2-3초 만에 만취 상태가 되어버렸어요.
속은 울렁거리고 단 식혜까지 마셔서 목에는 자꾸 끈 쩍한 침이 고이고 창문을 열고 침을 뱉었는데
그건 취한 제 생각이고, 창문에다가 계속 침을 뱉으며 집까지 왔나 봐요.
와이프가 차를 좀 아끼는 사람인지라 이걸로 한참 동안 잔소리를 엄청 들었어요.
한 가지 더 사건이 있었는데 와이프 만삭 때 그날은 무슨 일인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그냥 술을 좀 마시고 있는 자리에 계속 일행이 늘어나며 새로운 사람들 술잔을 받다 보니
많이 취했던 것 같아요. 속이 너무 안 좋아서 겨우겨우 집에 다 와서 당시 새로 지은 빌라에
들어가서 살았는데 공용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올라가는 길에 긴장이 풀려 그런지 오바이트가
쏠리기 시작했어요. 참는다고 꾸역꾸역 올라가는데 조금씩 토해내며 올라와 버렸고 넘어올 때마다
그 와중에 치우기 쉽게 한다고 한쪽 구석에 모아가며 토하고 올라가서 자고 있던
만삭의 와이프를 깨웠습니다. "큰일 났어. 빨리 걸래 들고나가서 좀 치워. 나 더 이상 못 움직이겠어."
이 말을 하고 저는 화장실에서 변기를 안고 잠든 거 같아요.
당시에는 와이프가 정말 천사라 아무 말이 없이 웃고 지나갔는데 시간이 지나니
이 이야기를 가끔씩 하더라고요. 위에 차에 침 사건과 함께요.
사실 아무리 부부가 되었어도 서로 좋아하는 것까지 바꿔가며 사는 것보다는 서로 조절하며
맞추어 사는 게 맞는 것 같아 술도 사다 주고 안주도 해주고 와이프는 제가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고 온 날이면 숙취 해소제나 차를 끓여주고 하다 보니 이 사건 외에는 술로 문제가 되고
갈등을 겪은 일이 없었어요. 그리고 둘 다 밖에서 술을 잘 안 먹다 보니 어쩌다 한잔해도
집 근처에서 밥 먹을 때같이 마시는데 저는 맥주 한 컵 혹은 소주 한잔 그것도 아니면 소맥 한잔
그리고 남은 술은 와이프가 다 마셔요. 물론 더 시켜서 더 마셔요.
그러다 보니 서로 편하고 사이도 더 좋아지지 않았나 해요.
전 평생 술이 맛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녀는 술을 사랑하고 저를 존중하고
그런 여자를 저는 사랑하고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