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해가 안되!!!!!
저희는 아직 결혼식을 하지 못했어요. 2025년에 예정인데 결혼한 지 10년을 꽉
채운 날에 결혼식을 하기로 했어요.
전 사업을 하며 한국과 외국을 다니며 살다 보니 제 생일도 성인이 돼서는 챙긴 적이
거의 없었어요. 오히려 거래처에서 갑자기 케이크를 준다거나 거래처 분들이 술을
마시자고 해서 술을 마셨던 게 거의 대부분이에요.
어쩌다 보니 결혼기념일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리는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으니
저는 당연히 결혼기념일이라는 걸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와이프는 3월 1일을 결혼기념일로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봤지요.
"그게 무슨 날인데?"
"우리 처음 만난 날."
아.... 참 신기했어요. 이런 것도 기억하는구나 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그게 꼭 필요하면 그날 하라고 말을 하고 전 제 생각을 이야기했어요.
하루하루 매일 즐겁게 살면 매일이 기념일인데 평소에 잘 못하니 기념일을
만들어서 한 번 잘해주는 게 아니냐고 말했죠.
그래서 그러기로 했어요. 결혼기념일은 3월 1일로 하고 매일매일 기념일처럼 살기로요.
소소하게 집에 들어갈 때 챙기는 걸 좋아해서 회사 앞에 있는 꽃집에서 하루 한 송이씩 꽃도 사 가고
쉬는 날이 되면 집에서 요리도 해먹고 아무 곳이나 데이트도 하러 나가고 했지요.
물론 아이를 일찍 갖게 되어서 집에서 보내는 날이 더 많았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것도 문제가 있긴 하더라고요.
매일 기념일처럼 살다 보니 점점 콧대가 높아져 기대치가 자꾸 올라간다고 해야 할까요?
어지간한 건 성에 안 차게 되는 거예요.
게다가 생일 같은 것도 서로 대충 하다 보니 한동안은 그냥 말 그대로 살고 있는 게 되어 버렸던 것 같아요.
와이프 생일은 음력으로 하는데 그 날짜 챙기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제 생일도 안 챙기는 사람이 음력을 보고 있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그래서 와이프에게 이야기했죠.
"그래 이제부터 너 민증에 나온 날로 생일을 하자." 아주 좋았어요.
심플하고 기억하기도 좋고 물론 와이프도 동의했죠.
그런데 한 10년 조금 안되게 살다 보니 이런 동의들이 정말 동의였는지
아니면 저에게 맞춰 주었던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전 하나하나 다 물어보고 대화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와이프의 양보가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여자가 기념일 챙기고 뭔가 기대되는 날이 있는 것을 싫어하겠어요.
물론 평소에 사이좋고 잘 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복을 싫어하는 인간의 특성상 서로 강제하지만 않는다면 서로 무엇인가를
기념하고 의미를 두는 날이 소중할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그런 것들을 합리와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무시해왔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책도 더 보고 여러 사건을 겪어가며 그 감성이라는 것을 공부?? 하다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사실 지금도 전 머리로 이해하고 '아! 이래서 이렇구나.'라고 느껴야 하지만
경험과 시간은 그런 것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정말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기에는
훌륭한 선생님인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별거 아닌 여행과 사소한 배려, 장소에 대한 기억, 날짜에 대한 기억들이
아내에게는 참 소중하고 행복한 것들이었던 것을 제가 몰랐나 봐요.
한동안은 절 바라보는 눈 속에 하트가 날아다니던 눈이
어느샌가부터는 그냥 일반 눈으로 변해 버렸었어요.
그래서 그냥 아.. 오래 살다 보면 그냥 이렇게 익숙해지는구나 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바로 이 감성과 감정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부터
생겨났는데 점점 다시 와이프의 눈에 하트가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물론 아직은 왜 그런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조금은 이해가 되고 있어요.
아무리 내가 옳은 말을 하던 더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하던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동의가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걸 참 늦게 알게 된 것 같아요.
아마도 이런 내용을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제 인생도 인간관계도 더욱 지금보다는 풍성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기념일을 왜 챙기냐고요?
그리고 기념일을 챙기는 것도 스트레스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한번 물어보려고요.
결혼기념일을 우리 맘대로 우리가 하고 싶을 때 정해서
원하는 이벤트를 해보자고.
아무렴 어때요. 둘이 좋으면 그날이 기념일이지.
아! 물론 이제는 저만 좋은 게 아니고 정말 둘이 좋은 대로 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