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었다고 다 어른은 아닌가 보다.
우리 부부는 결혼식을 하지 못하고 결혼 생활을 시작했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사실 전 그게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가정을 이루고 살림을 합치고 오래되지 않아 아이도 생겨서
어떻게 보면 제가 원하던 것들이 이루어진 것과 같아서
다른 것들은 큰 의미가 없었거든요.
와이프가 저에게 참 많이 맞추어 주어서 전 와이프에게
제 생각을 이야기하고 와이프가 동의해 주면
와이프도 당연히 다 좋아서 그런 거라 생각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와이프가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했어요.
결혼 초에 저는 나도 와이프도 앞으로 생길 자식도 결국에는 다들 남이고
그 부분을 인정하고 살아야 서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라
여행을 가고 싶다니 잘 다녀오라고 했지요.
그때도 지금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로의 시간을 보낼 때는
서로 잘 연락을 안 합니다.
연락은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 쪽이 보통 하고 있어요.
우리 딸 돌잔치 때도 그런 거 뭐 하려 하냐고 가족 어른들만 모시고 하자고 했다가
욕을 엄청 먹었습니다. 사실 돌잔치 잡히니 와이프가 다이어트랑 운동을 시작하니
앞으로는 이런 거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아마도 결혼을 안 했고 아빠가 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도 많은 부분이 결핍되어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어린 시절 사춘기를 겪으며 세상에 당연하게 해야 하는 것들과
그 시기에 판이 깔려 있던 것들을 하는 것을 강요라 생각했고
일부로 모든 것을 반대로 하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시절은 제가 평생에 가장 후회하는 시절이고 그 시절에
놓친 것들이 제가 세상에서 위로 올라가려 할 때마다 제 발목을 잡기도 했습니다.
운동을 하던 시절에도 사업을 계속하면서도 기초와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하게 느끼고 나니 삶 속에서도 기본적인 것들과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들을
크기와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이유들도 조금씩 느끼고 있어요.
제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보다는 저도 점점 주변을 배려하는?
저 외에 주변 사람의 감정을 함께 생각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20살이 되어 성인이 되면 어른이 된다 생각했었지만 막상 한 해 한 해 살아가며
주변을 보고 경험이 쌓여가다 보니 성인이 되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게 나이가 먹고 오래 살았다고 모두 어른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저 역시도 아직은 부족한 어른이고 '내가 변하고 있는 모습들이 좋은 모습들 일까?' 하는
고민을 끊임없이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니 다음날 와이프가 돌아왔고 저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고 하더니
반지를 하나 끼워 주려고 했어요.
나무를 깎아서 만든 반지였는데 어찌나 작게 깎아 왔는지 네 번째 손가락에
끼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받아 새끼손가락에 끼워보니 그래도 잘 맞았어요.
전 나무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 검색을 해서
이 반지 깎는 걸 배우고 깎아오려고 회사에 연차를 내고
저에게는 여행을 간다고 하고 반지를 깎아 온 거예요.
보통은 그러면 결혼반지를 해야 하나 생각을 했을 텐데 그 와중에도 저는
'결혼반지가 생겼으니 결혼반지는 안 해도 되겠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뭐 정성이 가득한 예쁜 반지가 생겼으니 된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살아가다 코로나 겪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너무 안 좋아진 상황에도
불평하나 없이 옆에서 힘이 돼주는 와이프를 보고 있으니 너무 미안해서 어느 날
종로에 나갈 일이 있어서 반지를 하나 사서 주었습니다.
결혼반지라고 하기에는 아니 그냥 반지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그냥 별 볼일 없는
그런 반지를 하나 사서 주었던 거예요. 그냥 제 마음에 미안함을 달래기 위한...
하하... 그게 뭐라고 그렇게 좋아하고 항상 끼고 다니는지
전 정말 나쁜 놈이었나 봅니다.
제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니 상대도 그게 큰 의미 없는 거라 생각해 버리고
그걸 설득이라는 것을 해서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 거였나 봐요.
물론 좋은 걸 해주면 더 좋아하겠지요. 그건 물질을 좋아한다 아니다가 아닌
사람이라면 당연히 좋은 것을 비싼 것을 받는 걸 그 누가 싫어할까요?
그런데 그런 것을 떠나 내 마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은
하루가 그리고 삶의 풍요로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설득으로 무의미하게 만드는 게 아닌 서로 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을 풍요롭게 만든다면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직도 전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면 감정을 그리고 감성을
이해하는것이 어렵지만 그래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저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나 봅니다.
이제는 손때가 타고 색이 바래었지만 아직도 튼튼한 아내의 마음이 가득한 이 반지는
저에게는 보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