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 불씨 Jan 25. 2024

넌!! 손이 없냐?

쌈 안 싸먹는 남자

전 야채에 싸 먹는 쌈을 거의 먹질 않아요. 정말 어쩌다가 너무너무 한번 먹어보고 싶을 때

한 개 정도 먹어 볼까. 그 외에는 그냥 야채를 빼고 먹습니다.

야채를 싫어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쌈이 맛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에요.


제가 처음 사회에 나와서 사업을 베트남 시골에서 시작을 했고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일도 모르는 상황에 억지로 하게 된 사업이라

안 맞는 음식에 처음 겪어보는 환경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고 업무 확인하고

그러다 일이 좀 잘 되면서 저도 모르게 그런 일종에 정신병이 생겼나 봐요.


손에 뭐가 묻으면 바로 닦아 내야 하고 악수를 하면 바로 손을 닦아야 하고

쌈을 싸먹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어요.

손에 뭔가가 묻으면 손 껍질이 벗겨질 때까지 닦아내도 뭔가 불안했습니다.

물티슈는 거의 필 수 휴대 용품이 되어 버렸었어요.


이때 참 욕 많이 먹었어요.

악수하고 바로 손을 닦으니 그걸 일일이 또 설명해야 했고

이해해 주는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었지요.


저도 제가 의식해서 그런 게 아닌데 유난 떤다고 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왜 그러는지 저도 몰랐으니까요.


손 결벽증에 공황장애에 공감력도 떨어지고 저 멀리 미래만 보고 사는

어찌 보면 와이프는 하자 품을 골랐는 게 아닌가 싶네요.


같이 살기 시작한 당시에는 재활 샵을 운영하며 운동을 거의 매일 하고 있을 때라

매일 집에 가면 고기를 1KG씩 먹었었어요.

그런데 와이프가 물어보더라고요. 야채는 사 오는데 왜 먹질 않냐고.

마늘쫑만 불판에 구워 먹고 쌈채를 하나도 안 먹으니 이상 했나 봐요.

그래서 손에 뭐 묻는 게 싫어서 와이프는 쌈을 좋아하니 너 먹으라고 사 온다고 했더니

그 뒤로는 한 번씩 쌈을 싸주더라고요.


사실 시간이 지나고 손 결벽증은 거의 없어졌어요.

이게 아이가 태어나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이의 변을 손으로 만지다 보니

사라지더라고요. 그전부터 조금씩 괜찮아지긴 했지만 이때 거의 다 사라진 거 같아요.

처음에는 실신할 뻔했습니다. 정말 이악 물고 기저귀 갈았어요.


지금도 싸서 먹고 하는 건 귀찮아서 별로 먹고 싶지는 않지만

옆에서 싸주는 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와이프에게는 괜찮아졌다고 말을 안 했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싸먹는 것보다 옆에서 싸주는 게 더 좋은 거 같아요.

가끔 고기 먹을 때 쌈을 안 싸주면 굉장히 서운한데

그럴 때는 "왜 이제는 쌈 안 싸줘?" 하고 물어보면 바로 한 개 싸줍니다.


뭐 그래도 누나랑 결혼했는데 이 정도 혜택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겠지요? 


이전 10화 꽃을 든 남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