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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씨 Jan 29. 2024

얘가 내가 결혼한 사람이 맞아?

처음 보는 너에 모습들


아이가 생기고 세 식구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사실 뭔가 많이 달라진 것을 느끼진 못했습니다.


아이가 눈앞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딱히 티가 나는 부분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씩 지나다 보니 생각보다 작은 부분들에서 티가 나기 시작하더군요.


우선 새 모이처럼 먹던 와이프의 식성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먹는 양도 늘었지만 그중 가장 신기한 건 우유와 라면을 먹기 시작한 거예요.

원래 우유와 라면은 먹지 않던 사람인데 입덧을 일찍 시작하더니 우유를 자꾸 마시기 시작한 거예요.

이 당시에만 해도 직장에 출근을 하고 있던 때라 일하면서도 500미리 우유에

빨대를 꼽아서 들고 다니며 마시더라고요.


그리고 수시로 라면을 먹었어요.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을 집에 모아두던 사람인데

거의 매일 먹었던 거 같아요.

보통은 이러면 별로 안 좋아할지도 모르겠지만 전 좀 신기했어요.


'어?? 내가 어릴 때 먹던 그대로 먹네?'

이런 생각이 들었고

배속의 아이랑 나랑 식성이 비슷하니 너무 신기했어요.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뭔가 내 새끼 하는 유대감이 생겨버렸어요.


뭐 그 덕에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편의점 사장님이나 주변 분들한테 욕도 많이 먹었어요.

임산부한테 편의점 음식이랑 인스턴트 먹인다고.


그리고 주변 어른들이 고양이들을 다른 사람 주던지 내보내라고들 하셨어요.

아이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는 게 좋지 않다고 하셨는데,

나랑 와이프가 사는데 왜 외부에서 이런 말들을 하는 건지 전 잘 이해가 안 됐어요.

그래서 그냥 " 이 애들도 가족인데 어떻게 내보내요?" 하고 그냥 키웠습니다.

전 제가 이해를 못 하면 말도 잘 안 듣고 공감도 잘 못해서 주변 어른들은

제가 참 밉상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사실 좀 걱정도 되긴 했어요. 두 마리 고양이 중 까망이는 자폐 증상도 있고

처음 왔을 때 공격성도 좀 심해서 어른들이 걱정하는 부분도 이해가 되었지만

이 아이들도 이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이 엄마랑 떨어져 우리한테 왔는데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이 걱정에 또 다른 사람에게 주면 냥이들도 버림받는 거란

생각이 들어서 도무지 답을 낼 수가 없더라고요.


아마도 이런 마음은 제가 어릴 때 버림받았던 기억 때문이었을 거예요.

제가 8살이 되던 해에 자고 있는데 아버지가 리어카에 던져서 내보내진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모든 고민은 기우였었나 봐요.

까망이도 소룡이도 너무나 신기하게 아이가 나오고 나서 아이의 옆에 가까이

잘 오지도 않고 아이의 공간이나 이불에는 올라오지도 않았어요.

이불 밖에서 범퍼침대 밖에서 아이를 구경하고 아이가 다가오면 놀라 도망가고

나중에 하늘나라로 갈 때까지 가족으로 정말 잘 지냈습니다.


까망이 사진들을 보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자기 정신도 제정신이 아닌 아이가 왜 자기 동생의 공간에는 저렇게 선을 지켜주었을까요?

사람도 이해 못 하는데 고양이까지 이해하긴 너무 어렵습니다.


환경도 몇 번 바뀌고 해외로 나가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선천적으로 몸이 아픈 아이들이다 보니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처음 키워본 고양이의 추억이 너무 좋아 지금은 냥이들만 보면 눈길이 갑니다.


그런데 사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와이프의 감정 변화였던 거 같아요.

저는 안 그래도 공감력이 떨어지는 사람인데 제가 해보지도 않은 임산부의 감정 변화나

느낌을 알 수가 없는데 와이프가 굉장히 행복하다가도 갑자기 우울해하고 들쑥날쑥한

행동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와이프가 계속 짜증도 부리고 투덜투덜거린 적이 있었는데 전 보통 이러면

그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 이유를 알고 답을 찾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이런 생각도 안 할 때라 저도 모르게 "그럼 어쩌자는 거야?

애 생긴 거 후회한다는 거야? 낳지 말자는 거야?" 이 말 했다가 욕을 엄청 먹었습니다.

욕을 먹으면서도 '아니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뭐 사실 저도 아빠 첨 해봤잖아요.


한참 욕을 먹고 서로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뱃속에 아이를 원망하거나 후회를 하는 듯한 이야기는

서로 하지 말기로요. 그리고 그 이후로는 생각보다 감정의 변화로 싸우는 일이

없었는데 혹시 이것도 와이프가 그냥 참아온 건 아니겠지요?

어찌 보면 그냥 그냥 이런저런 속 이야기를 서로 다 한 게 도움이 되었지 않을까 합니다.


평생 같이 살아야 하는데 옆에 항상 있어도 참 어려운 사람 속마음입니다.

이런 제가 앞으로 나올 아이 그리고 30년 이상을 따로 살아온 와이프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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