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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씨 Feb 02. 2024

새벽부터 왜 깨우는 거야!!

우린 참 조용히 지나 갔네

이 책을 쓰며 아이가 뱃속에 있던 기간을 돌아 보니 참 사건 사고 없이 추억 없이

말 그대로 그냥 지나간 것 같네요.


정말 쥐어짜서 몇 가지 생각해 본 게

와이프의 식성이 바뀌어서 전혀 안 먹는 우유와 라면을 먹던 것 게다가 이건 제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메뉴여서 너무 신기했던 거예요.


그리고 아!! 딱 한 번 갑자기 베트남 쌀국수가 먹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새벽에 나가서 여기저기 다니다가 못 사고 다음날 포장을 해가고 먹고 싶다면 해주려고 잔뜩 사 가져갔는데 한 젓가락 먹고 안 먹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하나 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매일 배속에 아이와 이야기를 했어요. 한 10~30분씩 매일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한 6-7개월쯤 인가부터였던 거 같은데 제 목소리가 들리면 뱃속에 아이가 제 쪽으로 엄마 배를 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와이프 옆에서는 입을 꾹 닫고 있어야 했어요. 처음에는 신기하다고 좋아했었는데 너무 배속에서 절 따라오니 힘들다고 말하다가 욕을 참 많이 먹었어요.


뱃속에 있는 아이가 저에게 반응한다는 것에 너무 신기했고 어쩌면 이런 일들로 인해서 아이와의 교감이 더 강해졌던 거 같기도 합니다.


2017년 10월 14일 전날도 새벽까지 일하고 공부하고 잠들었는데 새벽 4시부터 자는 사람을 막 깨우는 겁니다. 잠결에 짜증이 살짝 나려 하다가 와이프의 말에 잠이 번쩍 깨버렸습니다.


"나 진통하는 거 같아 너무 아파."


'아니 뭐 어떻게 해야 하지', '병원에 가야 하나', ' 지금 병원이 하나', '얘는 왜 새벽에 아프지', ' 왜 깨우지' 막 이런 정신 나간 생각부터 오만 생각이 다 들어서 일단 병원에 가보자 하니 조금 진정이 되는지 조금 더 지켜보고 아침에 가자고 합니다. '안 아픈가? 왜 깨웠지?' 하고 전 다시 잤어요.


예정일도 아직 5일 더 남았고 19일 날 나오기로 했으니 전 당연히 그날 나오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조금 잠이 들만했는데 7시쯤 되니 또다시 절 깨웠어요.


"진짜 랑이가 나오려나 봐 진통이 계속 와."

(랑이는 우리 아이가 배속에 있을 때 태명이에요.)


이 이야기를 들으니 진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일단 대충 준비하고 와이프를 태우고 병원으로 출발했어요.

그런데 가는 도중 와이프가 밥을 먹고 가자고 했어요. 


"아프다며?"

"진통 오래 하면 힘들다고 밥 먹어야 힘낼 수 있을 거 같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전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아픈데 밥을 먹어야 한다니.

그런데 이런 부분은 제가 애를 배속에 품어보지 못해서 가는 길에 평소에 와이프와 배속에 아이와 자주 갔던 곰탕집에 가서 곰탕을 시켜 먹었습니다.


먹는 동안은 다행히 진통이 안 오고 잘 지난 갔어요. 아마도 배속에 아이도 밥을 같이 먹었는건지 신기하게 진통이 없었어요.


그리고 자주 가는 단골집이라 이모님들의 응원과 함께 나오자마자 길에서 주저앉았어요.

도저히 못 움직이겠다고 하는데 전 식당 앞 차도에서 아이가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어쩔 줄을 모르겠어서 일단 호흡을 좀 해보라 하고 부축을 하고 차로 데려가려 하는데 도저히 못 움직인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10분 정도를 길에서 호흡하고 한걸음 움직이고 하면서 겨우겨우 차로 이동해서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병원에 9시경 도착해서 접수하고 기다리는데 저기서 뭐 해야 하고 여기서 뭐 해야 하고 안내를 하는데

아이가 나올 거 같은데 뭘 자꾸 하라는건지 마음만 정말 바빴어요.


안내해 주시는 분들은 그래도 저 같은 사람이 많은지 아이 금방 안 나오고 자기들도 준비하고 있으니까 안심하라고 안내를 해주어서 처리하고 와이프는 한쪽 소파에 앉혀놓고 이러 저리 다니며 접수하고 물어보고 했던 거 같아요.


그렇게 병실 같은데 들어가고 와서 모니터를 보고 신호의 움직임에 따라 호흡을 시켜주라고 하는데

당시에는 제가 호흡을 강의를 하고 있던 차라 옆에서 아주 수업을 해주고 있었네요.


그냥 옆에서 보고 있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냥 옆에서 손잡아 주고 호흡해 주고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흐르니 나가서 좀 걸으라 하고 진통이 심해지니 무통주사를 놓는데 점점 초췌해지는 와이프의 모습에 제 속도 타들어 가고 정말 뭘 어째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었어요.


그리고 9시 넘어서 진통 주기가 짧아지고 간호사들이 들어왔다가 선생님도 오시니 이제 아이가 진짜 나오나 하는데 그렇게도 한 시간 넘게 안에서 호흡하고 뭐라 뭐라 하고 했는데 제가 기억나는 건 간호사 선생님이

베드에 올라가서 배를 막 누르는 거였어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저에게는.

배를 눌러서 아이를 나오게 한다는 게 첨 보는 광경이고 저게 저래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정말 멍 때리고 쳐다보고 있었던 거 같네요.


그렇게 10시 51분에 랑이가 태어났어요.

탯줄을 내가 잘랐는 건지 누가 잘랐는 건지 어쨌건 잘랐고 저는 그냥 너무 작은 아이가 신기해서 선생님이 울리는데 옆에 가서


"랑아 아빠야. 내가 아빠야"


이렇게 불렀는데 울던 아이가 울음을 그쳤어요.

다시 선생님이 엉덩이를 톡톡 치며 또 울리는데 전 옆에서 정신 나간 사람 마냥


"랑아 아빠야. 내가 아빠야"


이 말을 계속했어요.

그리고 아이는 제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울음을 그쳤어요.

그리고 저는 방에서 쫓겨났습니다.


아버님 잠시 나가 계시라고 해서 문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언제 들어갈지 기다리다 보니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라고 불러 주시더라고요.


와이프는 생전 처음 보는 지친 모습으로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데 뭔가 이상 했어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 느낌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에 '랑이'가 도착했습니다. 그 작고 연약한 생명이 이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저에게는 이제 부모라는 새로운 역할이 주어졌고, 와이프와 저 사이에는 더욱 깊은 사랑과 책임감이 싹트기 시작한 거 같아요.


뱃속에서부터 대화를 나누던 아이가 이제는 제 눈앞에 있었고 그 작은 눈이 저를 바라볼 때, 저는 약속을 하나 하게 되었습니다. '아빤 널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살게.'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 약속이 지금도 절 살게 해주고

저에게 힘을 주고 있어요.


이제 우리 가족은 다섯 명이 되었고 앞으로 많은 일들이 우리의 삶에 있을 테고 고난도 즐거움도 있겠지만

이 순간의 마음을 기억한다면 극복하고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랑이의 탄생은 단순히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 아닌 우리 가족이 한 걸음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삶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 더 진지하고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여정에 여러분들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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