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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씨 Jan 21. 2024

꽃을 든 남자

살아가며 지워진 사소 한 것들


결혼 초에는 주에 2-3회 정도 집에 갈 때 꽃을 사서 들어갔었어요.

그냥 보면 참 낭만 적일 지도 모르겠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희 부부는 결혼기념일도 없고 기념일들도 안 챙겨서

매일매일 기념일처럼 살아가자고 제가 와이프에게 말을 해놓은 게 있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쉬운 게 꽃을 사 가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전 꽃 다발이나 큰 바구니는 낭비라 생각을 했던지라

사무실 앞 꽃집에서 한 송이씩 조금 기분이 좋은 날에는 안개꽃이나 옆에

작은 꽃들을 몇 개 더 해서 아주 조금씩 사서 갔었습니다.

그런데 와이프는 참 좋아하더라고요.

좋아하니 저도 좋았어요. 쉽고 편했으니까요.

게다가 계절에 따라 나오는 꽃이 달라 선택도 쉬웠어요.

이런 말은 와이프에게 하진 않았습니다.

괜히 말해버리면 너무 무성의하게 보일까 봐요.


그렇게 해외로 나가고 일이 더 바빠지고 하다 보니 어느새 저도 흐지부지돼버렸습니다.

가끔 "요즘은 왜 꽃도 안 사 와?"라는 말을 가끔 하긴 했지만

더 큰집에 더 좋은 상황에 뭘 또 챙겨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냥 공항을 오갈 때 뭐라도 보이면 가끔 와이프가 쓰는 립스틱이나 예쁜 구두가 보이면

어쩌다 한 번씩 사다 준게 다였습니다.


전 항상 제가 와이프에게 아주 잘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어요.

사실 다 돌아보면 와이프가 그냥 저한테 대부분 다 맞춰주고 있었던 거 같아요.

상대가 표현하지 않으면 전 그냥 '좋아서 그런가 보다.'하고 생각해버리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와이프가 저한테 "요즘은 왜 예뻐해 주지 않느냐?"라고 하더라고요.

전 항상 예뻐해 주고 있고 잘 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뜸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서

"내가 그래?" 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전 속으로 '팔자가 편해 별생각을 다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그냥 계속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아서 알겠다고 하고 새벽에 혼자 사진첩을

결혼 초 사진부터 다시 한번 쭉 둘러봤어요.

사실 전 좀 분쟁이 생기면 사진을 다시 봅니다. 요즘에는 그 기록이 핸드폰에 그리고 클라우드에

너무 잘 남아 있어서 내 스스로도 내가 보고 있는 시야의 변화라던가

행동을 일부는 돌아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사진을 쭉 살펴보다 보니 결혼하고 아이가 빨리 생겨서 둘 사이는 항상 좋았던 거 같은데

제 모든 시야는 와이프에서 아이로 돌아간 후 계속 그 시야로 살아가고 있었나 봐요.

그리고 다음날 다시 이야기했어요.

와이프가 말하더군요. 아기만 이뻐하고 웃어주고 항상 양손에는 아이를 위한 선물만 가득하고

가끔은 딸아이가 질투도 나고 저한테 너무 서운하다고 했어요.


저는 와이프에게 "애는 언젠가 우리를 떠나서 살아갈 애고 우리는 같이 손잡고 죽을 사이인데

애가 조금 자기 시간을 갖게 되면 그때 우리 시간을 갖자."라고 했어요.

당연히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었고 아이와의 시간은 조금 더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전 아빠고 딸이다 보니 같이 할 수 있는 행동에 제약이 하나씩 늘어 갈 거였으니까요.


그런데 참 늦게 알았지 뭐예요.

저도 와이프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고 그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고만 살아가기에는

지금의 우리의 시간들을 포기하는 것과 같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한 송이를 사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활짝 웃는 와이프의 모습에서 바보 같고 어찌 보면 이기적이었던

제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 보게 되었어요.


전 어떻게 보면 저 멀리 있을지도 모르는 행복을 강요하며 지금을 희생시키고 있었나 봅니다.

이제는 순간순간 함께 있는 지금 순간들에 조금 더 집중해 보려 합니다.


뭐 이것도 정답은 아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 더 성숙한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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