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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Jan 01. 2022

추운 날은 익숙한 곳에 가서 익숙한 것을 먹자


이 글은 목표가 있다. 잘 쓰는 것도 재미와 의미를 담는 것도 아니다. 오직 올해가 가기 전에 발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나는대로 쓰고 행갈이도 마음대로 할테다. 퇴고도 없다. 이것은 완성을 위한 글.

이유는 2021년을 뒤돌아보는 글이니까. 지금은 오후 6시 20분. 앞으로 다섯시간 반 정도 남았다.

지난 글에서 2021년을 마무리하고 2022년을 열기 위한 나만의 의식을 할 것이라고 적었다.

익선동 바에 가서 다이어리를 보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날이 너무 추워서 바로 집으로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추운 날은 익숙한 곳을 가고 익숙한 것을 먹자. 생소한 곳을 가고 생소한 것을 먹으면 마음까지 추워진다.

다이어리를 보는 대신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2021년의 무엇'을 선정해보기로 했다.

누구도 궁금해하진 않지만 기록용이다. 기록용(이지만 재밌게 봐주세요).


부문은 지금부터 생각나는대로 만들어서 선정을 할 계획이다. 양치하러 다녀오느라 6시 26분이 되었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양치하면서 첫 번째 선정 부문을 결정하였으니. 첫 번째 부문은 바로.


'2021년의 영화' 부문 _후보는 아래와 같습니다.


레 미제라블

모가디슈

분노의 질주-더 얼티메이트

소울

승리호


후보 선정 기준은 '2021년에 본 영화'입니다.

코로나19 영향이기도 하지만 올해처럼 영화를 안 본 해가 있을까싶다. 개인적으로 올해를 겪으면서 내가 진짜 영화를 좋아하긴 했나?라는 의심이 들었다. 영화를 안보면 또 안보는대로 살 수 있었다.


왓챠의 분석에 따르면 692개의 영화에 평점 평균 3.3을 주며 <평가에 상대적으로 깐깐한 '깐새우파'(새우라는 말에는 선뜻 동의할 순 없지만)>라는 악명을 떨치는 내가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영화를 향유할 수 없는데도 전혀 갈급하지 않다니. 나는 명절특선영화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을까(그러고보니 더빙영화를 전혀 거부감 없이 즐기는 것 같기도...).


아니지, 취향의 시작은 흥미일지라도 유지는 인내심이다. 이럴 때일수록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잊지말자(좋아한다 좋아한다).

자 그러면 내가 뽑은 '2021년의 영화' 선정작은.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파리를 열 번 정도 다녀왔다. 조금은 파리를 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기 전 이야기다.

파리를 안가봤다. 파리를 전혀 모른다. 임계점에 도달한 사람들의 분노와 그것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차이를 생각해본다.

이 영화를 본 후 이야기다.


벌써 7시 53분.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가족사진을 찍느라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이제 한 부문 발표했는데.

연말 연예대상 시상식이 왜 새벽에 끝나는지 알 것 같다.

서둘러 두 번째 부문을 공개합니다.


'2021년의 시 구절' 부문 _후보 없이 바로 발표합니다. 독보적으로 좋았기에.



우린 만난 적도 없는데

그해 여름은

우리가 가졌다


이 구절을 만나기 전에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느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확신.

OOOO년 OO월 OO일부터 △△△△년 △△월 △△일까지.

다른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그 시절은 내가 가졌다.

김현 시인의 시 「펜팔」2연이 내가 뽑은 '2021년의 시 구절' 이다.


세 번째 부문은 '2021년의 책'을 선정하려고 한다. 우선 내가 2021년에 어떤 책을 읽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8시 12분.

8시 16분. 지난 포스팅과 서가에 어지럽게 꽂혀있는 책들을 살펴본 결과, 역시 올해도 문학, 에세이 쪽을 많이 읽었다.

그래서 '2021년의 책'도 이 부문에서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2021년의 책' 부문 _의외의 결과!

어느 정도 규모와 역사를 갖춘 기업들은 10년 주기로 '사사(社史)'를 발간한다.

기업 사사는 전달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창업 후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었지만 창립자의 정신을 받들어 위기를 극복하고 뚜렷한 성과를 냈으며 새로운 미래를 향해 도약할 비전을 세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사사를 편찬하는 사람들이 많이 경계하겠지만 기업도 사람과 똑같다. 과거를 자꾸 미화시키려고 한다.

'배그'가 성공하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이 책은 편집자가 내내 '과거의 미화'와 사투를 벌인다.

그렇지 않아도 책 내용이 정말 '배그'와 다를 바 없는 게임업계라는 전쟁터를 다루고 있는데

책 역시 '과거의 미화'와 전쟁을 한다. 그래서 '배그'의 성공에는 어떤 아름다움도 남아 있지 않다.

피, 땀, 눈물(어쩌면 알코올과 니코틴도)이 진하게 느껴진다.


10시 23분. 2021년 마지막 만찬을 먹고 '연애의 참견'을 보다 돌아왔다. 집에 티비가 없는 관계로

OTT로 예능프로그램을 본다. 그래서 정해봤다.

'2021년의 OTT콘텐츠' 부문 _예상대로.

우연히 <배달의 민족 cf - 너에게 밥을 보낸다https://www.youtube.com/watch?v=mZN7kPxs9Vs> 편을 보게 되었는데 한 배우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 다급하게 '밥 한번 먹자'고 약속하는 회사원 역할을 한 배우였는데

그 순간의 복잡한 마음을 너무 잘 연기했기 때문일까, 광고에 마음이 흔들려본건, 감동을 받아본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배우는 강길우님이었다.

강길우 배우님(이미지 출처 : 배달의 민족 유튜브)

그 후 강길우 배우님이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이상청)'에 출연하신다는 것을 알게 됐고

마침 웨이브를 구독하고 있던 참이어서 릴리즈 되자마자 감상을 시작했다.

딱 앞에 5분만 보고 알게 됐다. '아, 나 이거 되게 좋아하는 건데.'

'이상청'에 대한 감상평은 19번째 글에서 밝힌 바 있기에 여기에 다시 적진 않겠지만

이젠 '기묘한 이야기 시즌4'보다 '이상청 시즌2'를 더 고대하고 있다는 내 팬심을 그 감상평 위에 보태고 싶다.


10시 50분. 이제 슬슬 마지막 부문의 결과를 밝히고 가족들과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러 가야겠다.

마지막 부문은 이 글을 쓰기 시작할때부터 염두에 두었고 이 글도 이 부문 때문에 아니 이 부문의 선정작 때문에 굳이 쓰기로 결심한 것이다.

마지막 부문은 바로.


'2021년의 음악' 부문 _올해 발표된 건 아니지만 내가 올해 들었으니까.

선정작은 윤지영 님의 '언젠가 너와 나' 

https://www.youtube.com/watch?v=CiTbFgyxyHY

윤지영 님(이미지 출처 :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윤지영 님은 배순탁 작가가 쓴 칼럼에서 처음 접하고 호기심에 유튜브에서 찾아본 뮤지션이다.

(이 곡을 제일 먼저 듣게 된 건 피처링을 한 카더가든 님 때문).

이 노래를 처음 접한 이후로 하루에 한 번 이상 꼭 듣고 있다.

2019년에 발표된 곡이지만 2019년의 나는 이 곡을 좋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렇게 쓰고 멜론에서 감상 이력을 확인해보니 2020년 10월 17일에 처음 들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올해 처음 들은 줄 알았는데!)

2020년의 나는 이 곡을 듣고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나보다. 들은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니.

그렇지만 2021년의 나는 이 곡을 올해의 곡으로 꼽고 있다.

2020년의 나와 2021년의 나는 어떻게 다르기에 감상이 이렇게 달라질까.

올해 내가 이 곡을 좋아하게 된 것은 마지막 가사 때문이다.


오래 기억될 무얼 남겨줄게


'사랑한다'는 말을 조금 늘려야 한다면 '오래 기억될 무얼 남겨줄게'가 되지 않을까.

사랑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면 오래 기억될 무얼 남겨주려고 하면 되지 않을까.

그것이 연인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반대로 내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사람들은 내가 사랑한, 사랑했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도 괜찮겠다.


'2021년의 시 구절' 선정작과 '2021년의 음악' 선정작을 꼽으며

평이한 문장이 적확하게 쓰여졌을 때의 힘을 새삼 알게 됐다.

미사여구나 새로운 조어도 힘은 있지만 보통의 단어가 이룬 보통의 문장이 축적한 위력에 비할 바는 아니다.


평범한 말로 감동을 전하자고 다짐해보며 '2021년의 무엇' 선정을 마칩니다.

한 해 동안 제가 쓴 글, 그린 그림에 잠깐이라도 시간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 기억될 무얼 '누군가에게 남기는 새해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2022년을 가지실 거예요. 11시 32분. 이제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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